[뉴스락] 2~3%대 저성장 시대를 걷고 있는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원이자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꼽히고 있는 제약·바이오산업이 시작도 전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정부는 불법리베이트 근절 효과를 위해 혁신형제약사 선정 및 평가 기준을 강화했으며, 최근에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연구개발비를 자산에서 비용으로 회계처리 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주요 제약사들이 적자전환 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윤리경영·거래투명성 제고 등의 목적 하에 추진되고 있지만, 제약·바이오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던 정부의 외침과는 달리 탁상행정식으로 너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업계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태로 제약·바이오산업 전반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돌연 정부가 삼성 측과의 접촉 이후 일부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고 밝혀 ‘일관성 없는 정책’, ‘재벌 봐주기 정책’이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이 부회장은 반도체, 인공지능(AI), 5세대(5G), 바이오 등에서 엔진 역할을 맡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방송 일부 화면 캡쳐.

◆ 혁신형제약사 기준 강화, “윤리경영 제도화 찬성하지만, 기준과 대가 너무 가혹”

지난 4월 보건복지부는 제약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성 요건, 인증 취소 기준 등을 확대하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등에 관한 규정’ 고시를 개정 추진한다고 밝혔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신약개발 R&D 역량과 해외 진출 성과 등이 우수하다고 인증 받은 기업을 말한다.

이번 개정안에서 강화된 부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윤리성’ 기준이다. 현행 인증 취소 기준인 ‘과징금(500만원 이상~6억원)’을 ‘리베이트액(500만원 이상)’으로, 횟수는 3회에서 2회 이상으로 변경했다.

또한 기업 임원이 횡령·배임·주가조작 및 임직원에 대한 폭행·성범죄 등을 저질러 벌금형 이상을 선고 받았을 경우, 3년간 인증을 받지 못하게 하거나 인증을 취소하는 세부지표도 신설했다. 기존에는 허위 신청을 했을 경우에만 3년간 인증을 제한했다.

확정된 개정안으로 인해 지난 6월 혁신형제약사 31곳의 인증이 3년 연장된 가운데 일양약품, 한올바이오파마, 바이오니아 등 3개 기업은 재인증 평가에서 탈락했다.

업계에서는 강화된 윤리성 기준에 따라 앞서 불법 리베이트 건으로 각각 46개, 75개 품목에 대해 약값 인하 처분을 받았던 일양약품과 한올바이오파마가 탈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및 지원은 국민세금을 투입하는 공공지원 시스템이기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도 윤리경영을 제도화하는 취지에는 동의하는 분위기지만, 일각에서는 “회사 차원에서 윤리경영을 강조하더라도 전국 모든 지역의 영업사원의 일탈 행위까지 미리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리베이트 관련 항목 강화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리베이트 산정 ‘시점’에도 일부 기업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리베이트 적발 횟수는 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과 리베이트 행위에 대한 행정처분이 내려진 시점에 근거해 횟수가 산정되기 때문에, 기업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 금감원 “연구개발비, 자산 아닌 비용 처리” 줄줄이 적자전환…“임상 개발 조건 획일화 어려워” 볼멘소리

이와 더불어 지난 16일 금융감독원이 신약 개발 임상 1상, 2상에 사용한 연구개발비용을 자산이 아닌 비용으로 처리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일부 기업들은 갑작스런 적자전환에 당황한 모습이다.

금감원은 일부 바이오기업이 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인식하면서 당기 비용손실을 줄여 시장 불확실성을 증가시켰다고 판단하고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

대표적으로 메디포스트의 경우 지난해 영업손실 531만원에서 36억원으로 증가했으며, 올해 1분기 영업손실도 22억원에서 33억원으로 확대됐다.

차바이오텍은 지난해 영업이익 1억원에서 영업손실 67억원으로 수정, CMG제약은 영업이익 23억원에서 16억원으로 감소, 오스코텍과 이수앱지스는 영업손실이 각각 16억원에서 58억원, 47억원에서 80억원으로 확대됐다.

일양약품 역시 정정 공시를 통해 자기자본은 1분기 정정 전 2181억5157만원에서 정정 후 2154억3890만원(약 27억원 감소)으로, 연구개발비로 포함됐던 무형자산 역시 1분기 기준 460억3933만원에서 433억2666만원(약 27억원 감소)으로 감소했다.

1분기 자산총계는 4459억7530만원에서 4432억6263만원으로 감소했다. 다만 놀텍, 슈펙트 신약의 상용화 및 임상3상 성공 등 요인으로 순이익은 57억원에서 129억원으로 약 72억원(129%) 증가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줄줄이 적자전환을 맞은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번 금감원의 회계 지침으로 기업의 재무상황을 담은 지표가 나빠지면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화합물 의약품이나 생물학적 의약품, 제네릭, 바이오시밀러 등 다양한 의약품의 임상 개발 조건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임상3상 이전의 비용을 획일적으로 비용처리(손실)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임상3상 단계부터 자산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해당 단계부터 제품 상업화가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기세포 치료제는 임상2상 이후 임상3상을 조건으로 조건부 승인을 받을 수 있으며,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애초에 오리지널 생물의약품과 유사하게 만드는 만큼 임상2상을 별도로 진행하지 않고 1상과 3상을 병합 설계할 수 있어 예외가 발생한다.

아울러 더구나 자본이 많지 않은 신생 바이오기업에게 연구개발비용의 손실처리는 지속적인 적자경영을 야기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어 진입장벽이 더욱 높아진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기업들이 제도를 악용해 시장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이 같은 조치를 한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정부가 차세대 산업으로 제약·바이오산업을 강조하면서도 지원은커녕 규제만 강화되고 있어 ‘기업 옥죄기’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 삼성 요청에 제약·바이오 규제 완화 검토하는 정부, “일관성 없는 재벌 봐주기 정책” 비난 잇따라

지난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경기 평택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삼성의 미래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독려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논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제약·바이오 업계의 고충을 토로하며 대규모 투자 약속을 조건으로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삼성 측이 규제 완화를 요청한 내용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연구개발(R&D) 비용 세제 혜택(임상시험 비용 세액공제) ▲생산원료물질 등록·승인 기간 단축 ▲바이오의약품 가격결정 자율화를 비롯한 약가 정책 개선 등이다.

이에 김 부총리는 “어떤 것은 전향적으로 해결하고 어떤 것은 좀 더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완화를 주문하고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를 가로 막는 규제부터 과감히 혁신해 나가야 한다”며 국회에 관련 법률 통과를 촉구해 사실상 삼성 측의 요청을 수락했음을 암시했다.

문제는 이러한 대화가 오가는 시점이 분식회계 논란으로 국내외 큰 영향을 미쳤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가 종료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경제성장을 빌미로 한 재벌 봐주기 정책”이라는 비난과 동시에 “대기업의 요구에만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이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약가결정을 시장자율에 맡기자는 삼성의 요구는 사실상 오리지널 약가 인상을 유도해 바이오시밀러 가격의 동반성장을 통한 수익창출에 목적을 둔 셈법”이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삼성을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해당 사건을 잠재우겠다는 시도와 더불어 대기업의 독과점을 또다시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 부총리와 삼성 측의 대화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업계 전반의 규제 강화 기조 속에서 대기업 중심의 업계성장은 중소기업에게 진입장벽을 발생시켜 또다른 부정행위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정책 운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제약·바이오업계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발전해나가는 단계이다 보니 정부 정책의 흐름이나 방향 전체를 지적하기엔 이르다”면서도 “정책이 의도하는 부분이 업계 발전 및 개선 여지에 부합한다면 따라야 하고, 반대로 정부 의도와는 다르게 제약업계 전반의 발전이 저해되는 요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정부가 보완을 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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