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경제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건 문재인 정권이 집권 2년차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보다 급진적인 노동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에서부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정착, 노사 대화의 장 마련 등 시행하는 정책 하나 하나가 노동 시장의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이같은 정부의 노동자 위주 정책에 힘입어 그동안 숨죽여 왔던 대기업 내 노조의 탄생 소식이 여기저기 들린다. 오랜 기간 무노조 경영 원칙에서 최근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삼성과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경영진의 신생 노조 탄생을 와해시키려한 의혹도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뉴스락>은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노조와해 의혹 사례들을 토대로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목에 선 현주소를 짚어봤다. 

사진=금속노조 및 방송일부 화면 캡쳐.

◆ 3대째 이어온 '무노조 경영원칙' 삼성, 이재용 시대에서도 계속...당국 잇단 압박에도 '관리의 삼성 위용' 여전 

3대째 무노조 경영 원칙 고수해오고 있는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롯해 삼성에스원, 에버랜드 등 주요 계열사 전반에 걸쳐 노조와해 의혹을 사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웰스토리, 삼성SDI 등에서도 같은 의혹이 제기돼 사태가 확장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김수현 부장검사)는 지난달 27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과 관련해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28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목장균 전 삼성전자 노무담당 전무 등 4명을 구속기소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 삼성전자 법인과 삼성전자서비스 법인을 각각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파견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으로 근무한 이 의장은, 2013년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일명 ‘그린화 작업’으로 불리는 노조와해 전략을 그룹 차원에서 수립해 시행한 혐의를 받는다.

이 의장은 그린화 작업의 실현을 위해 협력사 4곳을 ‘기획폐업(위장폐업)’하고, 폐업에 동참한 협력업체 사장에게 수억원대 금품을 제공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삼성은 ▲노조활동이 활발한 협력업체 기획폐업과 조합원 재취업 방해 ▲‘심성관리’를 빙자한 개별면담 등으로 노조탈퇴 종용 ▲조합원 임금삭감 ▲단체교섭 지연·불응 등 수법으로 노조의 세력확산을 막고 고사시키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위해 협력업체를 동원해 수집한 조합원의 재산관계와 임신 여부, 정신병력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토대로 노조를 탈퇴하도록 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합원 염모씨의 장례가 노동조합장으로 치러지지 않도록 부친에게 6억800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특히 삼성은 과거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이 계열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음에 따라, 미래전략실 주도 하에 이뤄졌던 노조와해 의혹이 계열사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소속의 에버랜드는 2011년 7월 삼성지회 노조설립 직후부터 핵심 간부들을 징계 또는 해고하거나 이들을 상대로 각종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노조활동을 압박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에버랜드가 임직원들의 노동조합 가입을 막거나 이미 가입한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접수하고 지난 4월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후 검찰은 지난달 17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본사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노사관계 문건과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하고, 조장희 부지회장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하는 등 본격수사에 돌입했다.

에버랜드를 시작으로 계열사 전체로 노조와해 의혹은 2라운드를 맞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형사부(김수현 부장검사)가 최근 삼성전자서비스와 유사한 노조 와해 공작이 다른 곳에서도 반복됐다는 삼성 계열사 4개 노조의 고소장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이들 4개 노조(삼성웰스토리, 삼성CS모터스, 삼성에스원, 삼성SDI)는 고소장을 통해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 등에 담긴 노조와해 전략이 삼성전자서비스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에도 똑같이 적용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및 방송일부 화면 캡처.

◆ 30년 무노조 포스코, 노조 출범 하자마자 와해 의혹...노조와해 문건에서 댓글공작까지?

삼성과 더불어 무려 30여년 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온 포스코는 지난달 17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출범한 이후 사측에서 노조활동을 방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달 25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가 올해 들어 노무협력실 산하에 노사문화그룹을 신설했다”면서 “이 그룹이 추석 연휴 동안 노조와해 문건을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추 의원은 포스코가 노조의 강성 이미지를 부각하고 노조 반대여론을 자극하는 내용의 문건들을 작성했다며, ‘노조 대응 문건’과 ‘호소문’을 공개했다.

노조 대응 문건은 포스코가 현장 관리자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화해와 대화의 시대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강성노조’ 등 노조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다른 문건인 ‘포스코를 사랑하는 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드리는 호소문’은 포스코가 일반 직원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으로, 무명의 직원 명의로 노조 반대 여론을 자극하는 내용이다.

추 의원은 “이 문건을 논의한 회의 참석자들이 노트에 ‘우리가 만든 논리가 일반 직원들에게 전달되는지 시범 부서를 선정해 조직화해야 한다’, ‘행정부소장 또는 제철소장이 해야, 미션을 분명히 줘야 한다’ 등의 내용을 적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자유로운 노조활동을 보장하며 특정 노조에 대해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 처리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노조가 지난 4일 “포스코 측이 노조와해를 위한 댓글공작을 했다”며 증거물을 공개하면서 의혹은 쉽게 종식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지난 4일 오전 서울 정동 노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가 노무 담당자를 동원해 사내 익명게시판에 민주노총을 비방하는 댓글공작을 한 정황이 담긴 증거물을 공개했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사내 익명게시판에는 “민(주)노총에서 지령(을) 받아서 할 텐데 그쪽 대xx들이 돌대xx인지, 아님 원래 이렇게 무식하게 활동을 하는 건지”, “조금 있으면 빨간 띠에 죽창도 왔다 갔다 할 것”, “노조설립 기자회견에 정치인을 초대하는 금속노조는 절대로 안 된다”, “폭력 노조원들 민노 얼굴에 x칠을 한다” 등의 댓글이 올라왔는데, 노조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개발자모드를 통해 직원번호를 확인했더니 작성자들은 모두 포스코 노무협력실 소속이었다.

앞서 포스코는 1988년 6월 첫 노조를 설립할 당시에도 회사 직원들과 마찰을 빚다가 사태가 확산되자 당시 박태준 전 회장이 노조 설립 인정 담화문을 발표하며 설립된 바 있다. 하지만 1990년 노조 법제안전차장 서모 씨가 납품업자 송모 씨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되면서 2만여명에 달했던 노조는 9명까지 줄어 휴면노조로 전환됐다.

이후 납품업자 송모 씨는 자신의 행위가 포항제철의 사주를 받아 의도적으로 노조와해를 시도한 것이라고 밝혀 세간의 충격을 안겨줬다. 이처럼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노사 상생에 난항을 겪어온 포스코가 이번 포스코지회와의 상생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로펌 컨설팅까지…철저히 노조와해 계획한 AIG손해보험

삼성 노조와해 의혹이 세간의 화두로 떠오름과 동시에 AIG손해보험에서도 노조와해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은 대형 노무법인과 법무법인에게 컨설팅까지 받으면서 노조와해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유수 언론보도에 따르면 AIG손해보험은 ‘노무법인 동화’와 ‘법무법인 김앤장’로부터 각각 ‘AIG손해보험 노사관계 관리 전략 제안’, ‘노사협의회 설치 및 운영’이라는 두 건의 문서를 제공받았다.

2012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AIG손해보험 노사관계 관리 전략 제안’에서는 노조를 와해시키고 이를 대신할 기구로 ‘노사협의회’를 설립해야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를 위한 ‘노조와 노사협의회 공존→노사협의회 주도→노조 유명무실화’ 등 업무단계별 추진 일정 시나리오도 구성돼 있었다.

이밖에도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집행부 견제 세력 육성 ▲노조의 비민주적 운영에 대한 비판여론 형성 ▲노조 발언권 약화를 위한 인력 분리 ▲조합원 축소 ▲사측을 대변할 우수한 의원 확보 등 다양한 방법이 제시됐다.

‘노사협의회 설치 및 운영’ 문건에서는 노사협의회가 설립되는 과정에서 노조가 어떤 질문을 할 지, 노조의 질문에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 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었다. 이 문서에는 회사 개입에 대한 문제제기를 우려하고 있다는 점까지 적시돼 있다. 사측에서 노조와해 의혹이 불거질 것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의 공모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지만, AIG손해보험 측은 여전히 노조활동을 하는 직원에 대한 인사 불이익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IG손해보험 노조 관계자는 “임원 상당수가 아직도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조합 탈퇴를 강요하고 있다”면서 “노조원들은 인격적인 모독은 물론 업무지시나 인사발령에 있어서도 이해하기 힘든 대우를 많이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 "끝없는 노사간 다툼은 국가적 손실, 기업 인식 개선과 노조의 대화 의지 결합돼야"

문재인 정부 2년차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노동자 중심 정책에 힙입어 신생 노조의 탄생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노사간 합의에 의한 노조 탄생 소식은 좀 처럼 듣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 기업의 창업주들이 태초 기업을 키워갈 당시에는 국내 경제상황이 열악해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머리 위주로 즉, 오너 주도적으로 성장해왔다”면서 “노조의 단체행동과 단결권 행사가 당연한 권리이고 노동자들을 동반자로 봐야 하는데 노조가 설립되면 자신이 이뤄놓은 것을 감시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영권에 대한 유지·세습 의지 역시 노조를 견제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오너가 이뤄놓은 업적을 지속해서 유지하고 싶어 하거나 2세, 3세에게 물려주는 것이 국내 기업경영에서는 당연시 여겨져 왔다보니 욕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지난달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현 장융 CEO에게 회장직을 맡기고 2019년 은퇴할 것이며 그룹 소유권을 전부 포기하겠다”면서 “이는 심사숙고하고 기업경영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10년간 열심히 준비한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현군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위원장은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마 회장이 그룹 소유권을 포기한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압박 등 다양한 이유가 추측되고 있지만, 기업경영 및 유지를 위해 더 뛰어난 인재에 그룹을 맡기는 경영자의 모습 자체는 국내 기업 오너들이 일부 흡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문 위원장은 기업의 의식 개선, 근로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노동자들 역시 올바른 인식을 갖고 노조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업의 근로환경 개선, 인식 개선도 중요한 만큼 노동자들의 올바른 인식 고착도 중요하다”면서 “노조도 과거처럼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인식만 갖고 있으면 안 되며 기업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탄력적인 노조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 정권에서 노사관계가 변화해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수십 년간 관행이었던 것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기업과 노동자 모두 바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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