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산업계 기술유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기업의 보안시스템이 과거 대비 고도화 되고 있는 상황이라 더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이에 산업계는 물론이거니와 당국의 더욱 강화된 감시·관리 시스템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기술유출 증가는 국내 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의 재무적 손실·기술개발 위축 등 내부적 우려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서 우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높아지게 만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 등 유관기관에서는 각종 대책과 규제를 내세워 근절에 나서고 있지만, 이해당사자가 많아진 현 산업 시대에서 모든 유출 요소를 막아내기란 쉽지 않은 모양새다.

<뉴스락>은 기술의 발전과 동시에 고도화 되고 있는 기술유출 사례들을 살펴보고, 왜 막대한 보안비용을 투입하고도 이를 방지하기 어려운지 집중 조명해본다.

사진=KBS,TBS,KTV,SBS 방송화면 일부캡쳐(위에서 시계 방향순), 가운데 사진=특허청 제공.

◆ 결국 사람이 문제, 현실적 방안 마련돼야

국제 소송까지 가게 된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기술 침해 공방은 인력 이동으로 인한 기술유출 여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에서 핵심 인력 76명을 빼간 뒤 이들의 입사 과정에서 수행 프로젝트 내용 등을 기재하는 방법으로 배터리 핵심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은 정당한 채용방식이었다며 반박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상 4급 이상 공직자는 퇴직 전 5년간 소속됐던 기관과 업무 관련이 있는 회사에 퇴직 이후 3년간 취업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퇴직 간부가 부당하게 재취업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데에는 이 같은 법률이 적용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공직자윤리법처럼 아예 취업을 금지할 수 없는 사기업간의 인력 이동에서 기술유출 논란이 제기됐을 때 이를 증명할 명확한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

이동한 인력이 기술유출에 필요한 유형적 자산을 빼돌렸다면 처벌이 가능하지만, 해당 인력이 보유한 기술력 자체는 무형적 개념이라 어떠한 방식으로 유출됐는가에 대한 증명이 모호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소기업벤처부가 지난 2015년~2017년 사이 기술유출·탈취 피해 유형을 조사한 결과 ‘경쟁사로의 기술유출’이 42.0%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기술인력 빼가기’ 27.3%, ‘내부직원의 기술유출’ 25.0%가 뒤를 이었다.동시에 진행된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시급한 부분’에 대한 조사에서도 ‘인력관리’가 51.3%로, 2016년 52.4%, 2017년 51.3%에 이어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015~2017년 기술유출 및 탈취 피해 유형(위),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설문조사(아래)/사진=중소기업벤처부 제공(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정보 유출의 주요 원인은 결국 인력에 대한 부분인데, 중요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용자에 대한 관리적, 기술적, 물리적 통제를 설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조사 결과”라고 말했다.

미리 특약을 설정하는 등 현실적 방안을 마련해 보편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로 지난 1월 LG화학은 2017년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LG화학 직원 5명에 대한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는데, 이는 퇴사 후 2년간 전직을 하지 않기로 사전에 작성한 각서가 정당하다는 판결에서 나온 결과였다.

업계 관계자는 “사기업에서 동종업계 재취업을 아예 금지하는 것은 개인의 취업 보장 등 사유로 불가능한 만큼, 업종 특성을 고려해 사전적 인력관리 및 내부 보안시스템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 “대기업 압박에 울고”…기업 기술 보호 대책 시급

현대자동차는 자사 납품업체였던 BJC의 기술을 탈취한 혐의로 지난 2월 특허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BJC는 2004년부터 미생물을 활용해 현대차 도장 공장에서 나오는 페인트 냄새를 제거하는 제품을 납품해왔는데, 현대차가 BJC에 기술자료를 요구한 뒤 2015년 계약을 끊고 경북대와 협력해 비슷한 기술을 만들어 특허 등록했다.

국내 산업구조 특성상 대기업의 업무를 배당받아야 하는 중소기업은 특히 기술탈취 위험에 더욱 노출돼 있다. 단가를 낮출 목적으로 대기업이 기술자료를 요구했을 때 대기업의 업무배당이 곧 실적과 직결되는 중소기업으로서 이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4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상표권과 영업비밀에 대한 소유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인 가운데, 개정안은 특히 제2조 제1호 차목의 ‘아이디어 부정사용 행위(아이디어 탈취행위)’에 주목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중소기업 또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투자를 받거나 계약을 맺을 때 핵심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공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아이디어 또는 기술력에 대한 ‘비밀유지계약’을 제안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 이를 필수 조건으로 정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개정안 이후 현대차는 기술·아이디어 탈취와 관련해 첫 번째 위반 기업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그러나 구조상 지위를 이용한 기술탈취 행태는 아직까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지난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 업체의 기술을 유용한 혐의를 혐의로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기계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4억3100만원과 법인 및 관련 임원 고발 조치를 내렸다.

이들은 굴삭기 등 건설기계를 제조·판매하는 원사업자로, 부품의 납품가격을 낮출 목적으로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제3의 업체에게 전달해 납품가능성을 타진하고 납품견적을 받는 데 사용하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특히 현대건설기계는 공정위 조사 개시 이후인 지난해 4월에도 한 업체의 기술자료를 제3의 부품 제조업체에 전달해 공급처 변경에 대한 줄다리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현대중공업의 국가 핵심기술 ‘힘센엔진(HiMSEN’의 주요 부품 설계도면이 하청업체에 의해 외부로 유출될뻔한 사례처럼 중소기업이 매번 피해자의 입장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산업구조 특성상 을의 위치에 통상 놓여있다는 약점과 더불어, 대기업에 비해 보안 시스템을 강화할 만한 자본력이 부족해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사례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가 조사한 2017년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상 사이버공격이 2014년 2291건에서 2017년 3156건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사이버 침해사고 신고·조사건의 97%가 영세·중소기업으로 파악돼 자본력이 낮을수록 보안에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유출된 기술이 한 단계 거쳐 선의를 가진 제3자에게 전파되거나, 해외로 유출됐을 때 중소기업이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해질뿐더러 장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국제 소송을 이끌어갈 만한 자본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 100% 막기 어려운 기술탈취, 탄탄한 사전적·사후적 시스템 갖춰야

IT 기술의 성장에 따라 보안 기술과 해킹 기술은 동시에 발달한다. 때문에 모든 기술탈취 시도를 100%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기술탈취 시도를 최소화 하려는 사전적 노력(국가적 차원의 보안 인력 양성 등)과 동시에, 기술이 실제로 탈취됐을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사후적 노력(국가 차원의 사건 대응(TF)팀 강화, 중소기업 구제책 등) 즉, 탄탄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중소기업벤처부 관계자는 “단편적인 보안장치 도입만으로는 체계성을 갖고 전술적으로 접근하는 기술유출 행위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기술 보호 예산의 가시적인 확대를 전제로, 기술개발 과정에서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연구개발사업 대상의 보안제도 정립, 복잡한 형태의 기술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융합형(법+경영+심리+기술) 기술 보호 인력양성, 기술유출 징후를 선제적으로 탐지할 수 있는 데이터 분석 기반의 방첩시스템 개발 등 입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산업스파이 행위를 형사범죄로 규정하고 경제스파이법, 외국인투자 및 국가안보법 등 시행을 통해 벌금(50만 달러→500만 달러(약 60억원) 이하), 징역(15년→20년 이하) 등의 처벌조항을 강화했다.

일본 역시 내각관방정보보안센터(NISC) 주도로 ‘안전 일본 2010’ 계획을 지난 2010년 발표하고, 미국의 해외안보자문위원회(OSAC)를 벤치마킹해 지난 2013년 산업계와 함께 일본판 OSAC 협의체를 출범해 범국가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또, 일본은 지난 2015년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해 벌금을 개인 1000만엔→2000만엔(약 2억1500만원), 해외유출시 3000만엔, 법인 3억엔→5억엔(해외유출시 10억엔) 등으로 강화했다.

한국의 국가 핵심기술 유출 사고의 57%를 발생시키고 있는 중국(중소벤처기업부 조사 결과)마저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며 자국의 주요 핵심기술을 정부 통제 하에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한국 역시 지난해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을 통해 해석을 확대·강화하고 지난 1월 ‘산업기술 유출 근절대책’ 발표를 통해 국가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 1월 3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발표된 산업기술 유출 근절대책은 국가 핵심기술 보유기업 대상 해외 인수·합병 사전승인제를 도입하고, 기술유출시 손해액의 3배 이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거나 범죄수익환수 대상을 확대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몇몇 국가의 처벌 수준에 비해 국내 기술유출에 따른 처벌은 약하다는 평가가 많다”며 “이는 최근 있었던 판결과 처분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 핵심기술 ‘힘센엔진’을 유출하려 했던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 대표 A씨는 징역 1년 6개월, 법인 벌금 5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기계 역시 공정위 과징금 4억3100만원 처분을 받아 앞서 언급한 국가의 처벌 기준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관계자는 이어 “다만 국가적 차원의 기술유출 근절 대책이 최근 시동을 건 만큼, 엄중한 처벌 규정과 민·관 협력을 통해 증가하고 있는 기술유출 수치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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