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화장품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3년전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유커(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졌을 때 소위 ‘화장품 로드샵 1세대’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이후 지난해부터 유커의 유입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1세대 기업은 재건을, 신흥 세력들은 왕좌 쟁탈을 노리느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원한 1등도, 꼴등도 없는 과도기에 놓인 업계 상황에서 <뉴스락>은 화장품 업계 주요 기업의 현 실태와 이들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위한 움직임을 조명해봤다.

사진=각 사 제공.
사진=각 사 제공.

◆ 1세대 아모레퍼시픽·에이블씨엔씨…사드 후유증 극복 중

업계 1세대이자 국내 최대 규모 화장품 기업으로 불리는 아모레퍼시픽은 규모만큼이나 사드 보복 여파의 후유증을 아직까지 겪고 있는 모양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 4월말 공시를 통해 올해 1분기 매출액 1조6425억원, 영업이익 2048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 영업이익은 26%가 감소했다. 연간 영업이익률이 2016년 16.2%에서 2017년 12.1%, 지난해에는 9.0%로 꾸준히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사드 논란 이전에 비해 유커 유입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로드샵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로드샵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던 아모레퍼시픽의 주요 계열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 헤라, 프리메라 등 럭셔리 브랜드로 전년 동기 대비 1% 상승한 매출액 1조4513억원을 기록했지만, 면세와 온라인을 제외한 국내 채널의 약세로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21% 감소한 1866억원을 기록했다.

이니스프리의 1분기 영업이익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6% 감소했으며 에뛰드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23% 줄어든 501억원을 기록했다. 에뛰드는 적자폭이 58억원으로 더 확대된 상황이다.

문제는 실적 하락의 요인을 개선하기도 전에 업계 내 대기업 등 경쟁사의 유입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점이다.

설화수는 지난해와 올해 초 고전했던 아모레퍼시픽의 효자 노릇을 했던 럭셔리브랜드다. 하지만 설화수조차 LG생활건강의 럭셔리브랜드 ‘후’와 비교했을 때 지난해 면세점 매출 2배(후 1조665억원, 설화수 4397억원)가 부족한 상태다.

이와 동시에 로드샵 시대가 저물고 미용과 건강을 연결한 헬스앤뷰티(H&B) 스토어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롯데쇼핑(롭스), GS리테일(랄라블라), 이마트(부츠) 등 대기업이 우후죽순 업계로 뛰어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 부진의 시기에 체질 개선까지 해야 하는 아모레퍼시픽으로서는 재정비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대기업의 유입 때문에 채널을 재정비한다 하더라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데다가, 중국 로컬 브랜드의 성장으로 유커 수입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점도 악재”라고 말했다.

미샤 브랜드로 유명한 에이블씨엔씨는 창업주 서영필  전 회장이 국내에 이어 지난해  '미샤재팬' 경영권마저 완전히 물러나면서 현 최대주주인 '사모펀드(PEF)' 특유의 내실 다지기 강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PE)는 지난달 29일 공시를 통해 오는 11월 28일까지 100억원어치 자사주 매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적 하락으로 인해 주가가 떨어진 데 따른 보호 차원에서다.

에이블씨엔씨는 1분기 매출액 915억3800만원으로 전년 동기 778억3800만원 대비 17.6%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23억2500만원으로 전년 동기 –11억7700만원 대비 적자 폭이 97.54% 증가했다.

올해 초 출시한 ‘데어루즈’, ‘보랏빛 압축크림’ 등 신제품이 선전하면서 매출은 증가했지만, 신규 브랜드 ‘TR’ 론칭과 사드 여파의 후유증인 노후 점포 리모델링 비용 등 투자로 적자는 아직까지 면치 못한 상태다.

다만 에이블씨엔씨는 로드샵 몰락의 출구전략을 찾기 위해 지난해부터 ‘돼지코팩’으로 유명한 ‘미팩토리’를 324억원에 인수하고, 올해 초 색조 화장품 수입 전문 기업 ‘제아H&B’와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지엠홀딩스’를 1400억원에 인수하면서 채널을 넓히고 있다.

동시에 자체 브랜드인 미샤 매장을 올리브영과 같은 H&B 스토어 형태로 탈바꿈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채널을 가진 화장품업체를 인수하고 출시 상품의 선전으로 인해 장기적 관점으로는 실적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H&B 스토어 형태로의 변화, 기존 노후 점포 리모델링 등 막대한 투자 자금의 규모와, 동종업계 심화된 경쟁 구도 등 위험요소를 극복해내야 장기적인 흑자 반열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막강 유통 채널 보유한 신흥 강자의 등장…신세계인터내셔날·애경

로드샵 1세대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 동안 변화한 화장품 시장에는 신흥 강자가 등장했다.

신세계그룹의 자회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그룹의 백화점, 면세점 등 강력한 유통 채널을 기반으로 고가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히 해나가고 있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화장품 시장에 뛰어든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갭, 바나나리퍼블릭 등 실적이 부진한 중저가 브랜드이 점포수를 줄이고, 자체 브랜드인 비디비치와 시코르를 고가 브랜드로 리빌딩 하는 데 성공했다.

면세 채널을 핵심 사업부문으로 가져가 2017년 200억원에 불과했던 비디비치의 매출은 지난해 1200억원으로 확대됐다. 중국 소비자의 고가 브랜드 수요 확대에 따른 효과였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뷰티 편집샵으로 내세운 시코르는 지난 2017년 말 출시한 스킨케어 제품 컬렉션, 메이크업 제품 컬렉션 등 자체 PB 상품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화장품 연구개발 전문기업인 ‘코스맥스’와 협업해 전문성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비디비치와 시코르의 약진으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화장품 부문의 이익기여도는 2017년 22%에서 지난해 79%까지 상승했다. 올해 1분기 이익기여도는 83%로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1분기 매출 역시 화장품 사업 호조로 365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0.2% 상승했으며, 영업이익은 29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7.5% 증가, 순이익은 229억원으로 151.6% 증가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고가 브랜드 이미지가 주입된 중국 시장 진출을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뷰티 편집샵 시코르는 최근 서울 가로수길에 21번째 매장을 오픈했으며, 올해 15개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소비자에게 고가 브랜드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한 비디비치는 티몰, 샤오홍수 등 중국 내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는 상태다.

AK백화점이라는 유통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애경산업 역시 영업이익 상승의 호조를 맛보고 있다. 자체 브랜드 ‘AGE 20`s(에이지투웨니스)’의 팩트 제품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올 1분기 매출 1788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5.3% 증가한 230억원, 당기순이익은 6.5% 증가한 184억원을 기록했다.

이중 화장품 사업부문의 매출액은 89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8% 증가했으며, 연구개발 확대로 영업이익은 6.8% 감소한 182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동 기간 애경산업의 주력 사업이었던 생활용품 사업부문의 영업이익이 48억원임을 감안하면 화장품 사업부문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애경산업은 2014년 에이지투웨니스가 홈쇼핑을 통해 팩트 제품을 선보인 것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화장품 사업 매출이 지난해 처음으로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겼다.

그러나 모바일 유통시장의 확대로 인해 홈쇼핑만으로는 성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지난해 1분기 매출은 2017년 대비 49% 급증했지만, 올해 1분기는 9.8%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에 애경산업은 중국과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현재 중국 코스메틱 스토어 채널 3600개 매장에 입점 중인 애경산업은, 2017년 중국 법인 에이케이(상해)무역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인지도 있는 팩트 제품을 중심으로 중국 내 사업을 본격화 했다.

동시에 동남아 시장 공략을 위해 올해 초 태국 쇼핑몰에 입점했다. 사드 여파 이후 중국 시장에 올인(All-In)하는 것이 위험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수익 창구의 다양화를 모색한 것이다.

하지만 팩트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은 여전히 리스크다. 에이지투웨니스 팩트 제품의 높은 인지도에 비해 다른 종류의 화장품은 동종 기업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경산업은 지난 3월부터 전략부문을 신설하고 사업 카테고리 확대를 위한 인수합병(M&A), 신제품 개발 등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뷰티 패션가발 브랜드 ‘핑크에이지’와 MOU를 맺으면서 포트폴리오 확대에 나섰다.

◆ "두 번 실패는 없다"...로드샵 신화 1세대, 스킨푸드·토니모리·네이처리퍼블릭 '사활'

한편,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1세대 로드샵 신화를 썼던 로드샵 기업들은 재도약을 위해 몸집을 줄이는 등 자구책으로 분주하다.

극심한 적자로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던 스킨푸드는 STX중공업의 회생기업 신분을 청산했던 사모펀드(PEF) 운용사 ‘파인트리파트너스’에 의해 인수되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수대금은 약 177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푸드 코스메틱’ 컨셉의 화장품 로드샵으로 업계 3위의 자리까지 수성했던 스킨푸드는 노세일 정책, 단일 브랜드샵 등 흐름에 반하는 정책을 고수하다 2014년부터 실적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고, 사드 논란까지 겹치면서 적자의 폭은 감당할 수 없이 커졌다.

2013년 매출액 1746억원, 영업이익 32억원을 기록했던 스킨푸드는 2017년 매출액 1269억원, 영업이익 –98억원까지 곤두박질 쳤다. 중국법인과 미국법인 역시 2015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결국 지난해 10월 스킨푸드는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청산가치 200억원의 무려 8배에 가까운 인수대금을 제안한 파인트리파트너스 덕분에 스킨푸드의 회생절차는 무난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스킨푸드의 회생채무액 등 부채총계는 약 445억원, 파인트리파트너스의 인수대금이라면 부채와 더불어 직원들의 밀린 급여, 세금 등 공익채권까지 일시 변제해도 충분하다.

이에 지난 5월 중순 스킨푸드는 자사 홈페이지에 기업회생 절차를 마치고 경영 정상화를 알리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하며 재도약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회생 절차를 마친 스킨푸드지만 그 사이 업계 흐름이 급격히 변화했고, 이제는 다수의 대기업과 경쟁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대안을 마련해야만 화장품 시장 재진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1세대 로드샵 토니모리는 올해 1분기 14억원의 영업손실과 26억원의 당기순손실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7% 감소한 414억원을 기록했다.

토니모리의 영업적자는 7분기 연속 이어진 상태다. 이에 토니모리는 그동안 추구해온 단일 브랜드샵 형태에서 신규 메이크업 브랜드(컨시크, 닥터오킴스) 등을 신규 론칭하며 사업 다각화를 선언했다.

또, 자본잠식을 이어오던 중국법인 심양, 칭다오 법인을 칭다오 하나로 통합해 적자를 줄이고, 지난 3월 토니모리의 세컨드 브랜드 ‘아베뜨’를 중국 온라인 쇼핑몰 징동닷컴의 역직구 채널에 입점시켰다.

토니모리는 아베뜨를 올 하반기에 티몰, VIP 등 중국 주요 온라인 채널에 추가 입점시킨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토니모리의 자구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존 단일 브랜드에서 메이크업 브랜드 등 신규 브랜드를 론칭했지만, 영역의 확장일 뿐 뚜렷한 차별점이 없다는 분석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강력한 유통 채널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현재 흐름인 H&B 스토어나 특정한 형태로 체질 개선을 한 것도 아니다”라면서 “단순히 로드샵을 추가로 론칭해 몸집만 커진 것이어서 이전과 똑같은 리스크가 존재하는 상황”라고 말했다.

실제로 토니모리가 론칭한 컨시크, 닥터오킴스, 아베뜨 등 세컨드 브랜드는 론칭 1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지난해 인수한 그루밍랩, 에이투젠 역시 뚜렷한 성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 브랜드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찾기 어려워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태이기도 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당장 세컨드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토니모리의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로 분석되고 있다.

정운호 전 대표가 구속된 네이처리퍼블릭은 재도약을 꿈꾸고 있지만 악재를 거듭하는 탓에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사드 보복 여파를 정면으로 맞은 네이처리퍼블릭은 2015년까지 흑자를 보이다 2016년부터 1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 했다.

설상가상으로 정운호 전 대표가 2016년 원정도박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네이처리퍼블릭은 아모레퍼시픽 출신의 호종환 전 대표를 2016년 말 소방수로 영입했다.

호 전 대표는 2년째 지속되던 네이처리퍼블릭의 적자 상태를 지난해 3분기 매출액 1737억원, 영업이익 9억원을 기록하며 흑자로 간신히 돌려놓았다. 고강도 수축경영을 통한 소기의 성과였다.

그러나 실적 부진의 늪은 깊었고 호 전 대표는 올해 12월까지였던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올해 1월 사임했다. 호 전 대표의 뒤는 재무 출신인 곽석간 CFO가 맡았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당분간 수익성 강화를 위해 저효율 매장을 철수하는 한편, 신규 국가 진출을 계획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브랜드 자체의 차별점이 부족해 시장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과, 히트상품 등 해외 시장 점유율을 가져갈 만한 특징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허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1분기 네이처리퍼블릭은 매출액 469억원, 영업손실 30억원을 기록하며 여전히 적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지난달 중순 네이처리퍼블릭 본사와 계열사 두 곳(세계프라임개발, 에스케이월드)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진행하면서 사태는 악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세무조사가 네이처리퍼블릭에 대한 역외탈세 혐의, 정운호 전 대표의 혐의 등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네이처리퍼블릭 측은 해당 소식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년간 적자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체질 개선 등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뚜렷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정운호 전 대표이자 최대주주의 재판 리스크, 세무조사 리스크 등 법적인 문제까지 겹쳐 네이처리퍼블릭의 재도약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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