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최근 '오너 4세' 구광모 LG그룹 회장 체제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친 LG그룹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사 재정비에 나선 모양새다.
특히, 취임 직후 구광모 회장은 그간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빚어온 계열사 LG서브원, 판토스 등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현 정권 기조에 발맞추는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LG가 규모 대비 무난한 기업경영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백조’의 무리 속 ‘까마귀’가 유난히 눈에 띄듯, 구 회장의 노력에도 불구 각종 논란과 리스크로 인해 부각된 '말많고 탈많은' 계열사도 존재했다.
◆ ‘뜨거운 감자’ LG화학, 대기오염물질 조작부터 배터리 소송까지
LG의 수많은 계열사 중 연일 화두에 오르는 대표 기업은 LG화학이다.
LG화학은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에 있는 LG화학 여수화치공장에서 대기오염물질 측정업체와 공모하고 수년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조작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4월 중순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여수산단 235곳 사업장 중 대기오염 배출량 측정업체 4곳에 측정을 맡겼던 LG화학, 한화케미칼 등 업체의 공모 사실을 확인하고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에 기소의견 송치했다.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은 지난달 16일과 30일 각각 LG화학 여수화치공장 등에 수사관 100여명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번 조작 사태는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인데다가, 산단에 입주한 대부분의 유명 대기업이 연루돼 있어 범국가적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LG화학은 신학철 대표 명의로 “참담한 심정과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린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하고 여수화치공장을 폐쇄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동시에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과 국제 단위의 대규모 소송전에도 돌입한 상태다.
앞서 LG화학은 지난 4월 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인력을 빼돌려 2차전지 핵심기술 등을 유출시켰다며 제소했다.
사건의 계기는 지난해 11월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의 북미지역 전기차 배터리셀 공급업체 선정 과정에서 업계 3년차 신생 업체이자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로 꼽히는 SK이노베이션이 선정되는 변수가 발생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업계에서도 ‘저가 출혈수주’라며 과열경쟁을 지적했던 만큼 수주전의 갈등이 소송전까지 번지게 됐다.
초기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소송에 대해 “정당한 채용방식이었으며 LG화학의 조치에 대해 유감”이라는 반응만 내놨었다. 그러나 지난 10일 SK이노베이션 역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LG화학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영업비밀 침해가 없었다는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맞불로 번졌다.
업계에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업계가 최근 국내 기업 먹거리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시장을 무대로 한 국내 기업간 다툼은 국가산업 발전 전체에 손해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악재 때문일까. LG화학은 1분기 실적 부진이라는 리스크를 안게 됐다.
지난 4월 공시 기준 LG화학의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한 6조6391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무려 57.7% 감소한 2754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LG화학이 주력사업으로 내세운 전지사업부문의 계절적인 비수기와, 최근 잇따른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 처리 비용으로 1000억원 규모의 충당금을 설정한 탓에 영업이익이 크게 하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전지부문이 실적 개선의 주요 포인트”라면서 “민감한 시기에 놓여있는 LG화학으로서는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에서 승소해 배터리 전지 사업 1위 자리를 고수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LG화학은 최근 LG생활건강과 함께 각각 오창공장, 청주공장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을 받아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청주지방검찰청은 지난 13일 LG화학 청주 오창공장과 LG생활건강 청주공장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고 밝혔다.
청주지검은 충북 청주시 모 지역구 국회의원의 동생 A씨가 사업에 도움을 주겠다며 대출업체 대표 B씨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5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A씨를 구속기소한 바 있다.
검찰은 앞서 지난 4월 A씨의 개인 사무실과 B씨의 업체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이들의 금전거래 과정에서 모 지역구 국회의원에게도 자금이 흘러들어갔는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비리 사건이 LG화학, LG생활건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LG화학과 LG생활건강 측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각종 리스크를 안고 있는 LG화학으로서는 해당 사건에 연루된 상황이 껄끄러운 입장이다.
◆ OLED 사업 철수 LG디스플레이, 실적 부진·중국 추격 ‘악재’
LG전자가 국내 공장에서의 스마트폰 생산을 중단한 데 이어 패널을 제조하는 LG디스플레이 역시 일반 조명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사업을 철수했다. 구광모 체제의 ‘선택과 집중’ 테마에 따른 사업구조 재편임을 감안하더라도 내려놓는 사업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
LG디스플레이는 2017년 말 ‘루플렉스’라는 브랜드로 일반 조명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기존 LED(발광다이오드)와 저가인 LCD(액정표시장치)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을 장점으로 상쇄하지 못해 수익성이 점차 줄어들었다.
실제로 OLED 스탠드 가격은 최소 10만원대 후반이지만 보급형 LED 스탠드는 2만원대로 차이가 큰 편이다.
업게에서도 “OLED의 생산가 특성상 LG디스플레이가 국내에선 인건비 상승 등 복합적인 이유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다만 LG디스플레이는 차량용 OLED 조명 사업은 놓지 않는다. 차량용 라이트 시장은 과거 단순 디자인 및 기능 용도에서, 최근 IT 기술과 융합한 ‘지능형 조명’으로 흐름이 넘어옴에 따라 시장규모가 성장하고 있어서다.
국내 업황과 사업 축소 등 영향으로 LG디스플레이 역시 1분기 실적이 부진했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1분기 매출액 5조8788억원, 영업손실 1320억원, 당기순손실 626억원을 기록했다.
직전 분기(지난해 4분기) 대비 매출이 15% 감소(6조9478억원)했지만 전년 동기(지난해 1분기) 대비 4%(5조6752억원) 늘었다. 영업손실은 전년 동기 983억원 대비 하락했다.
LG디스플레이는 “1분기 중 대형 패널 판가 흐름은 안정세를 보였으나, 면적당 판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중소형 패널의 출하 감소에 따른 믹스효과로 면적당 판가가 전 분기 대비 하락하면서 영업손실 폭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중국 기업의 맹추격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올 1분기 전세계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 시장의 총 매출은 144억9200만 달러(약 17조2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7억7400만 달러보다 8.1% 감소했다.
전세계 출하량도 1억8228만개로 전년 동기 1억8309만개보다 감소했다. 이 같은 수축 기조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27.9%에서 26.1%로, 대만 기업은 33.4%에서 32.1%, 일본 기업은 5.7%에서 4.6%로 하락했지만, 중국 기업만큼은 시장 점유율을 33.0%에서 37.2%로 높여갔다.
IHS마킷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BOE, CSOT 등 중국의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10.5세대 LCD 생산라인 가동을 본격화해 글로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LG디스플레이와 BOE의 점유율 격차는 2017년 1분기 16.6%p에서 지난해 1분기 14.1%p, 올해 1분기에는 7.5%p로 급격히 좁혀지면서 중국의 맹추격을 허용하는 추세다.
◆ LG CNS 등 계열사 지분 해소 시급 ‘잔존하는 내부거래 이슈’
고(故) 구본무 회장의 자리를 물려받은 구광모 회장은 취임 직후 계열사 판토스 보유 지분 전량(19.9%)을 매각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해소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구 회장의 판토스 지분 매각으로 공정거래법상 총수일가 사익편취 혐의에 대한 논란은 일시적으로 해소됐다.
그러나 2017년 기준 판토스 내부거래 비중이 70%에 달하면서 주요 거래 계열사였던 LG전자(35.4%), LG화학(21.0%), LG상사(1.4%) 등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가 적용돼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LG그룹과 계열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부당지원 혐의에 대한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LG그룹이지만, 아직 이슈 해소가 되지 않은 또다른 계열사들이 기다리고 있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LG그룹은 지난 11일 지주사 ㈜LG가 보유한 LG CNS 지분 가운데 35%에 대한 매각을 추진하고 매각주관사를 JP모건으로 선정했다. ㈜LG는 LG CNS의 지분 85%를 보유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오너 일가가 지분 20% 이상 보유한 기업이 자회사 지분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일감 몰아주기 대상에 속한다.
구광모 회장 등 오너 일가는 ㈜LG의 지분 46.6%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 대상을 피하기 위해선 ㈜LG가 보유한 LG CNS의 지분(85%)을 50%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업계에서는 이번 지분 매각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LG CNS는 그룹의 시스템통합(SI)업체로 내부거래 비중이 60%에 달한다. 이미 여타 SI업체를 포함해 공정위의 조사를 받은 바 있어 지분 매각이 시급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계열사가 더 있다는 것이다.
㈜LG 100% 지분으로 설립된 임직원 교육, 컨설팅 등 공급업체 ‘LG경영개발원’은 지난해 총 매출액 869억원 중 99%에 달하는 860억원의 매출을 내부거래로 올렸다.
LG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계열사 ‘LG스포츠’ 역시 ㈜LG 100% 지분 출자로 설립된 회사로,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등 계열사로부터 광고료 등을 지급받았다. 지난해 총 매출액 605억원 중 41%에 달하는 247억원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업계 한 관계자는 “LG서브원의 MRO 사업부 물적분할, 판토스 오너 일가 지분 매각 등을 토대로 일감 몰아주기 해소의 의지를 드러낸 LG그룹이지만 아직까지 이슈가 해소되지 않은 계열사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면서 “문재인 정권 3년차에 접어든 공정위가 규제 단속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만큼, LG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은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