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1789년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던 사건들은 200여 년 동안 특권적인 역사적 지위를 점해 왔다. 프랑스혁명이 근대세계에 끼친 영향은, 그리스·로마가 르네상스와 그 유산에 끼친 영향에 비유할 수 있다. 행위와 사건, 열정과 투쟁, 의미와 상징들이 압축된 세계, 인간 행동의 본질·조건·가능성을 정치·문화·사회 과정과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시도 속에서 끊임없이 재고되고 다시 상상되는 세계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프랑스혁명은 지금도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확대되고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세계를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프랑스혁명은 근대세계를 낳은 이 비범한 변화의 본질의 이해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제공한다.

이 책은 혁명의 기원을 전적으로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으로 가정했다. 이에 몇몇 비판자들은 지나치게 관념적이라고 평했으며 모든 ‘실제’는 담론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언어로의 전환’에 고무된 책의 반열에 놓았다. 이와 달리, 문화 관행과 집단 표상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사상이나 이론, 원칙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지극히 사회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서술했다고 평했다.

혁명이 계몽사상을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도발적이며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물론 샤르티에는 중요한 역사적 현상으로서 계몽사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단지 혁명가들이 어떻게 혁명 이전에 몇몇 작가와 책을 혁명을 예견하고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해했는지를 보여 주고자 했을 따름이다.

혁명이 계몽사상에 시도한 작업은 크게 두 가지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사상사조차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부분으로, 계몽사상 세계는 아주 다양한 차이를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철학적인 활동과 지적인 세대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예로 급진적 유토피아주의자와 개혁사상가들 사이에, 또한 18세기 중반의 백과전서 세대와 1780년대의 ‘철학적 예언가’ 세대 사이에 대립이 있었다.

둘째 사실은 혁명가들이 과거와 맺고 있는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 혁명은 절대적인 시작으로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그 전조가 나타나 정당화되어야 하는 사건이기에 이것에는 역설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로제 샤르티에(Roger Chartier) 지음┃백인호 옮김┃454쪽┃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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