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연말 임원 인사 시즌을 맞아 10대 그룹은 저마다 어떤 인재들과 함께 내년을 준비할 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다.

빠른 준비를 위해 한 발 앞서 임원 인사를 단행한 그룹도 있는가 하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그룹도 있다. 그만큼 재계에서 연말 임원 인사는 같은 배를 타야 할 우수한 선원을 뽑아야 한다는 점에서 '경영 전략'에서 0순위로 꼽힌다. 

특히 올해는 오너 3∙4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대응이 중요해진 만큼 임원 인사에도 '젊은', '세대교체', '성과중심' 등 키워드가 그 어느때보다 뇌리에 각인되고 있다.  

과연 10대 그룹의 오너들은 2020년 어떤 경영 전략을 머릿속에 담았을까. <뉴스락>이 연말인사를 통해 짚어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뉴스락 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뉴스락 DB.

◆ ‘삼성’ 오너 등 줄줄이 재판, 밀리는 인사…‘유임’ 무게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이 연말 인사를 발표했거나 발표할 예정이지만, 재계 부동의 1위 기업 삼성만큼은 연말 임원 인사에 대한 기약이 없다. 오너 및 전·현직 임직원의 잇따른 재판 리스크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그룹의 수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이 내년까지 예정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016년 이른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게이트’에 연루돼 수사를 받을 당시 그 해 임원 인사를 이듬해인 2017년 5월로 미룬 바 있다.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전·현직 임직원들의 재판이 줄지어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앞서 지난 9일 삼성전자 재경팀 부사장 이모씨 등 임직원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소병석)는 이모 부사장에게 징역 2년을, 함께 기소된 삼성전자 사업지원 TF(태스크포스) 소속 김모 부사장과 인사팀 박모 부사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관련 임직원에게 실형 및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던 지난해 5월부터 대책 회의를 열고 내부 자료를 삭제하거나 숨기는 등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어 지난 13일에는 삼성 에버랜드 노조 와해 혐의를 받고 있는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 징역 1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강 부사장은 17일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로도 1심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같은 혐의(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로 이상훈 삼성전자 의장 역시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전·현직 임직원들이 줄줄이 재판을 받고 있는데다가 특히 11~12월에 집중적으로 선고 공판이 잡혀 있어 임원 인사가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며 “때문에 삼성 인사는 아무래도 올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삼성은 이달 16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되는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를 예정대로 실시한다.

매년 상,하반기 총 2회 실시되는 삼성의 글로벌 전략회의 중 통상 하반기 회의는 사장단 인사 후 새 멤버들과 함께 내년 경영 전략을 짜는 순서로 진행돼왔다.

이 부회장이 참석하지 않는 이번 회의는 김기남 DS부문(디바이스솔루션) 부회장, 김현석 CE부문(생활가전) 사장, 고동진 IM부문(IT·모바일) 사장 등 3명의 부문장이 주재한다.

삼성의 부문별 단기 과제부터 장기적인 사업방안 등 모든 현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재계에선 이미 삼성이 2017년 5월, 2018년 연말 인사를 통해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 대부분의 계열사 사장을 50대로 물갈이한데다가, 기존 멤버로 글로벌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유임’ 기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다만 이 부회장이 특별히 공들이고 있는 AI, 5G,전장산업,바이오시밀러 등 미래 신성장 동력 사업의 경우 급변하는 사업환경에 대비한 다채롭고 역량있는 인재를 새롭게 배치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사진 뉴스락 DB.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사진 뉴스락 DB.

◆ '럭비공 인사' 이어받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신상필벌 강화...기존 임원 승진 ‘전문성↑’·‘MK맨 우유철’ 용퇴

오너 3세 체제를 굳힌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기조를 이어 지난 5일 ‘럭비공 인사’를 단행했다.

연중 수시인사 체제인 만큼 이번 인사에선 전문성, 사업성과에 따른 ‘소규모’ 인사가 단행됐지만 선대 회장을 보필한 인사들이 용퇴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먼저 현대차 울산공장장 하언태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 국내생산담당을 겸직한다. 하 사장은 30년간 생산 분야에서 근무해 높은 전문성을 갖고 있다.

또, 기아차 미국 조지아 생산법인장 신장수 전무가 ‘텔루라이드’ 실적 상승 공헌을 인정받아 부사장으로, 현대기아차 홍보2실장 이영규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밖에도 현대기아차 정책지원팀 서경석 전무가 부사장으로, 현대모비스 경영지원본부장 정수경 전무와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장 윤영준 전무가 각각 부사장으로, 현대차 고객채널서비스사업부장 김민수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는 등 각 분야에서 수년 또는 수십 년간 전문성을 쌓아온 임원들이 대부분 승진했다.

이번 승진 인사는 비교적 소규모로 기존의 틀을 유지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다만 내년 어느 시점에라도 정의선 부회장이 실적에 따라 수시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신상필벌에 따른 인사가 수시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이 ‘세대교체’라는 큰 틀을 짜고 있는 가운데 올해가 지나더라도 '부회장단 인사'가 언제든 단행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대표적인 ‘MK맨(정몽구 측 사람)’으로 불렸던 우유철 현대로템 부회장은 지난 9일 용퇴를 결정했다.

우 부회장은 “후배 경영진 중심의 경영 혁신 추진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퇴임을 결심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우 부회장은 부회장직에서 물러나 고문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재계의 시선은 또다른 MK맨인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과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 윤여철 현대기아차 정책개발담당 부회장으로 쏠리고 있다.

다만 김용환 부회장과 정진행 부회장 등이 지난해 자리를 옮긴 만큼, 당장 이들이 세대교체의 대상이 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 SK 임원 인사 ‘안정 속 변화, 여성·글로벌 인사 확대’

지난 5일 이른 임원 인사를 단행한 SK그룹은 주력 계열사 CEO들을 유임하면서도 각 계열사별 부문장급 임원을 세대교체 하는 ‘안정 속 변화’를 꾀했다.

장동현 SK㈜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등이 유임됐다.

최태원 회장 측근인 이들은 LG화학과의 배터리 소송전(SK이노베이션), 중간지주사 전환(SK-SKT-SK하이닉스)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유임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SK C&C 사장에 박성하 수펙스 전략지원팀장이, SK루브리컨츠 사장에 차규탁 기유사업본부장이, SK브로드밴드 사장에 최진환 ADT캡스 사장이, SK머터리얼즈 사장에 이용욱 SK 투자2센터장이 내정되는 등 그룹 4개 계열사 CEO는 신규 선임됐다.

최 회장이 집중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그룹 컨트롤타워,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도 주요 인사이동이 있었다.

기존 7개 위원회 중 에너지·화학위원회 위원장에 유정준 SK E&S 사장 대신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을,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에 김준 사장 대신 장동현 SK 사장을 보임했다.

이밖에 SK그룹은 신규 선임 108명, 사장 승진 9명 등 총 117명의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 전무·부사장 승진이 사라졌으며 수펙스추구협의회 팀장 및 주요 관계사 부문장급 임원이 대폭 교체됐다.

눈에 띄는 것은 여성 임원 비중이다. SK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여성 임원 역대 최대인 7명을 신규 선임했다. 이로써 그룹 내 여성 임원은 20명에서 27명으로 증가했다.

또, 그룹 내 외국인 리더에 장웨이 중국사업개발 전문가와 에릭 데이비스(Eric Davis) AI 전문가를 임원으로 선임해 글로벌 환경 대응에 나섰다.

SK그룹 관계자는 “안정적 기조 유지 아래 신성장 관련 임원 및 여성·글로벌 임원이 확충됐다”면서 “이번 인사로 젊고 혁신적인 임원들이 대거 주요 포지션으로 전진 배치되고, 세대교체의 실질적인 속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 구광모 체제 LG, ‘성과주의’, ‘젊은’, ‘세대교체’ 키워드 부상

'42세 젊은' 구광모 회장 체제로 들어선 LG그룹의 이번 인사는 성과주의를 토대로 한 ‘최연소’, ‘젊은’, ‘세대교체’ 등 무수한 키워드가 쏟아졌다. 

우선 5인의 부회장단 중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 용퇴하고, 후임으로 50대인 권봉석 LG전자 MC사업본부장 겸 HE사업본부장 사장이 선임됐다.

조 전 부회장은 글로벌 시장 환경과 기술이 급변하는 시기에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스스로 용퇴를 결정했다. 구광모 회장의 세대교체 기조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권영수 LG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유임됐다.

LG유플러스 신임 사장직에는 황현식 PS부문장이 선임됐다. 황 신임 사장은 1999년 LG텔레콤 입사 후 2014년 LG유플러스에 재합류해 모바일 사업확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FC부문장을 맡았던 이상민 부사장을 신규 선임하고, 성과주의 또는 혁신·변화 잠재력을 지닌 전무 승진 4인, 상무 신규 선임 12인을 결정했다.

전무 승진 3인, 상무 승진 10인 인사를 실시한 LG생활건강에서는 30대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1981년생의 임이란 오휘마케팅 상무와 1985년생의 심미진 퍼스널케어 사업총괄 상무는 각각 2007년 그룹에 입사한 뒤 단기간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심미진 상무는 그룹 역사상 최연소 임원이다.

취임 후 두 번째 인사를 단행한 구 회장의 세대교체 기조는 확고하다. 첫 번째 인사였던 지난해와 올해 모두 부회장 승진은 없었다. 지난해와 올해 사장 승진은 각각 1명, 부사장 승진은 각각 17명으로 동일했다.

대신 젊은 인사 영입·승진에 공을 들였다. 지난해 전무 승진 33명에서 올해는 41명으로 증가했다. 경영 여건으로 인해 지난해 상무 신규 선임 134명 대비 올해는 106명으로 줄었으나, 성과주의에 입각해 최연소 임원이 탄생했으며 2년 동안 신규 선임된 상무 임원의 나이는 평균 48세 미만을 유지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려는 젊은 구광모 회장의 의지가 강하다”면서 “세대교체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며, 성과주의에 입각해 전무·부사장급 인사이동이 향후 잦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진단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 롯데, 유통부문 중심 칼바람 예상…“임원 4분의1 교체 전망도”

오너 리스크를 일부 해소한 롯데그룹이 오는 19일 연말 임원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유통계열사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인사 칼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면세점 특허 청탁 등 뇌물공여 및 업무상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 상태에 있다가 지난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의 원심 확정판결을 받으면서 극적으로 구속수감에서 풀려났다.

이후 신 회장은 ‘뉴롯데’ 재건에 나섰다. 신 회장의 의중이 온전히 담긴 이번 인사는 오는 19일 지주·계열사별로 이사회를 개최한 직후 발표될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이사회를 3일에 걸쳐 진행했다면 올해는 실적 악화의 심각성 등 상황을 고려해 하루에 모두 개최한다.

이번 인사에선 임원 608명 중 4분의1에 해당하는 140명 정도가 감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5년 임원 526명에서 올해 608명까지 증가한 추이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인 전망이다.

업계에선 롯데그룹의 핵심 사업부문인 유통부문에서 사드 여파, 소셜커머스 확대 등 시장 경쟁 심화, 일본 불매운동 등 영향으로 실적 악화를 기록한 것이 신 회장의 결단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롯데쇼핑은 올해 3분기 연결기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5.8% 감소한 4조4047억원을,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6% 감소한 876억원으로 실적 쇼크를 겪었다.

주류부문에서 일본 불매운동 영향을 받은 롯데칠성 역시 영업적자 210억원을, 롯데하이마트는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20% 감소한 648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부회장단 3인방(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이원준 유통BU(사업부문) 부회장, 송용덕 호텔·서비스BU 부회장) 중 이원준 부회장의 교체설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송용덕 부회장은 호텔롯데 상장작업을 주도해오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대규모 인력교체 바람에서 거취를 장담하기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룹의 미래 캐시카우로 부상 중인 화학부문의 롯데케미칼 역시 올해 3분기 영업이익 31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인사에서 이미 김교현 롯데케미칼 사장을 화학BU장으로 역임시킨 데다가, 신 회장의 신임을 받는 황각규 부회장 라인 핵심 인물이 바로 김 사장이어서 이번 인사에서 역풍을 맞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또, 향후 화학부문 강화를 꿈꾸는 신 회장이 화학부문 가속화 시점에서 그룹 내 잔뼈가 굵은 김 사장을 교체하기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호텔·서비스, 유통, 식품, 화학 등 4개 BU체제로 나눠져 있던 그룹 구조를 지주가 중심을 잡는 구조로 변경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만큼, 실적 악화 책임과 더불어 대대적인 임직원 교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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