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전 대법관 및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내정자가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최진호 기자
김지형 전 대법관 및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내정자가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최진호 기자

[뉴스락]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내정자로 지목된 김지형 전 대법원 대법관이 독립성·자율성을 지켜 삼성의 윤리경영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만 감시 역할 수행을 위한 세부 계획은 공식 출범 뒤 언급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김지형 위원장 내정자는 9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G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구성, 원칙, 향후 일정 등을 발표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국정농단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지난해 10월 첫 공판에서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외부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공정거래 분야 위반 행위(내부거래, 하도급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 부패행위 분야(뇌물수수, 부정청탁 등) 위반 행위뿐만 아니라 노조, 총수 승계 문제 등 삼성그룹의 전반적인 감시기구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김지형 내정자는 이 자리에서 “처음 위원장 제안을 받았을 땐 위원회가 총수의 재판에서 유리한 양형사유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의심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스스로가 이토록 커다란 일을 감당할 만한 역량이 되는지 의문이 들어 완곡하게 거절했었다”면서 “그러나 위원회 구성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율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확답을 받았고, 삼성의 변화가 기업 전반의 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위해 우리 시대, 우리 사회가 함께 해주리라 판단해 고심 끝에 수락했다”고 밝혔다.

1월말 출범 예정인 위원회는 총 7인으로 구성되며 법조, 시민사회(언론), 학계 등에서 6인, 김 위원장이 지정한 삼성그룹 내 1인으로 구성된다. 삼성에선 MBC 보도국 부국장 출신이자 삼성 커뮤니케이션 팀장(사장)직을 맡았던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이 내정됐다.

위원회는 삼성의 주요 계열사 7개사(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와 협약을 체결하고 이사회 결의를 거친 후 위원회 활동을 시작한다.

주요 계열사를 대상으로 초기 준범감시 활동을 진행한 뒤, 성과에 따라 추후 활동범위를 삼성그룹 계열사 전반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 내정자는 “이사회 결의를 거친다고 해서 이사회 산하 등 내부에 속한 기구가 아니며, 회사 외부에 독립돼 설치되는 기구로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생명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계열사 이사회나 경영위원회의 주요 의결이나 심의사항에 법 위반 리스크가 없는지 사전 모니터링 또는 사후 검토를 실시, 위험요인을 인지하게 될 경우 적절한 방식으로 조사 및 보고를 시행하게 된다.

조사에 따라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시정 및 제재 요구 등 조치를 강구하고, 재발 방지 방안까지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김 내정자는 “예방→대응→회복의 각 단계가 정상적으로 실시될 수 있게 필요한 범위 내에서 계열사에 자료제출 및 조치를 요구하고, 개선에 관해 이사회의 직접 권고 및 이행점검을 지속하겠다”면서 “이것이 제대로 수용되지 않을 경우 권고를 넘어 통보, 위원회 홈페이지 게시 등 방법으로 공표하는 방안이 마련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내정자. 사진 김재민 기자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내정자. 사진 김재민 기자

위원회는 때에 따라 법 위반 사안을 직접 조사하거나 신고를 받는 체계를 만들 예정이다. 김 내정자 역시 “그동안 준법감시인 활동이 있었지만 위원회가 직접 신고를 받고 조사에 나서는 것은 유사 사례를 찾기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필요에 따라 직접 고발 등 형사처벌 조치까지 돌입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 김 내정자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순 없고, 사안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번 위원회 출범 계기가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노조 와해 등 과거 사건 때문인 만큼, 위원회가 다룰 사안의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해 김 내정자는 “출범 후 사안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정확한 것은 내부 논의를 거친 뒤 밝히겠다”고 답변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출범 전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경우 전례가 없게 되기 때문에 위원회의 설립 목적이 퇴색된다”며 “시간상 위원회 출범 뒤 이 부회장의 재판 결과가 나오게 될텐데, 유죄가 나오더라도 (출범 전 사안이기 때문에)다루지 않는다는 것인지 애매하다”고 말했다.

위원회 조사 및 자료 수집 과정에서 회사가 제공하는 자료의 형평성·정확성에 대해 김 내정자는 “별도 사무국을 설치해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답변했으며,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내용이기도 한 국정농단 사태 등 외부 압박에 대해선 “위원회의 핵심 해결문제이며, 제도 미비점 등을 분석·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법조계 재직 시절, 각종 노사 사건에서 사측 대리인을 맡아온 김 내정자가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직에 위임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이날 오전 9시경 기자간담회가 열리기 전 KT&G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삼성의 3새 세습 범죄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람이 김지형 전 대법관”이라며 “변호사 개업 후에도 현재까지 유성기업 변호인단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고, 현대위아 불법파견, 기아차 근로자지위확인 등 노동 관련 소송에서 사측 변호를 맡은 바 있는 만큼(노조 승소) 김 전 대법관이 기업의 준법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금속노조의 주장에 대해 김 내정자는 “유성기업은 담당 변호사 지정을 철회했으며, 대법원 계류 중인 기아차 등 노동 문제에 대해서도 숙고해보겠다”면서 “그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면 모두 제 잘못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내정자는 “노조가 위원장 내정을 ‘규탄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준법감시 업무에 대한 본분을 절대 잊지 말라는 뜻으로 여기고, 이들이 요구하는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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