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이달 5일 공식 출범하고 첫 회의를 진행했다.

국정농단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지난해 10월 첫 공판에서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지시한 데 따라 설립된 준법감시위원회는, 외부 인사들로 구성돼 삼성그룹의 전반적인 감시기구 역할을 할 예정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위원회가 이재용 부회장의 '감형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도 그럴것이 앞서 오너리스크를 가진 일부 기업에서도 준법감시위원회 및 기구를 설치했으나 이것이 오너 재판의 감형 요소로만 작용하고, 기대한 순기능의 역할은 제대로 하지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유착'으로 점철된 1세대가 완전히 물러난 재계에서 젊은 2~4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준법감시위원회 및 기구' 출범이 재벌기업의 투명성 확보에 주춧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뉴스락>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을 비롯해 재벌기업이 설치한 준법감시기구의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봤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 각 사 제공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 각 사 제공

◆ 태광·롯데 등 삼성보다 먼저 준법감시기구 둔 재벌기업들...결국엔

현재 기업 감시기구를 두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은 태광, 부영, 롯데, 한화, 한진 등이다.

태광그룹은 지난 2018년 12월, 임수빈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태광그룹 ‘정도경영위원회’를 출범했다. 태광그룹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는 동안 기업신뢰도 및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전 회장은 약 8년5개월가량 재판을 받는 동안 대법원 상고심만 3차례를 받았다. 간암 등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보석 결정이 돼 약 7년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지만, 언론을 통해 버젓이 음주·흡연을 하고 외출을 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이른바 ‘황제 보석’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태광그룹은 그룹 쇄신에 나섰다. 2016년 말부터 지배구조 개선, 이 전 회장 등이 소유한 계열사 지분 무상증여 등 사전 작업을 진행하고, 임수빈 전 부장검사, 황신용 전 SK하이닉스 상무 등 외부 인사 8인으로 구성된 정도경영위원회를 출범했다.

출범 1년을 맞은 정도경영위원회의 임수빈 위원장은 “출범 첫해 동안 정도경영의 기본토대를 만들었다면, 올해는 정도경영을 실천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신 개혁과 기업 쇄신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방안들을 제시하고, 이행 및 사전·사후 점검을 강화해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정한 변화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부영그룹 역시 이중근 회장의 재판 과정에서 준법감시기구를 설치했다.

앞서 이 회장은 임대아파트 분양 전환 가격을 부풀려 부당이득을 챙기고, 조세를 포탈하는 등 총 43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이 회장은 2018년 5월 부영그룹에 준법감시실을 신설하고 2020년 1월 준법감시 강화를 위해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이 회장은 지난 1월 22일,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1월 1심 선고 형량인 징역 5년에서 절반이 줄었다.

검찰 공소사실에서 일부 혐의가 무죄로 판단됐고, 이 회장이 피해액을 모두 변제하는 등 주된 양형 사유가 있었으나, 준법감시실 설치 역시 양형 사유에 포함되면서 감형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재판 과정에서 롯데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설치했다.

박근혜·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면세점 특혜 의혹, 경영비리 혐의 등으로 2016년 11월부터 검찰 조사를 받게 된 신 회장은 2018년 1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2018년 10월 진행된 항소심에서 신 회장은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구속 234일 만에 풀려났다.

재판 리스크를 안은 롯데그룹은 2017년 초 준법경영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동시에 같은 해 4월 롯데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출범했다. 위원장은 민형기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맡았다.

위원회는 그룹 및 계열사 법률 자문, 계열사 준법경영 실태 점검 및 개선작업, 임직원 교육과 모니터링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2018년 5월, 이홍훈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한화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사외 독립기구로 출범시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부실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로 2014년 2월, 서울고법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김 회장의 3남 김동선씨가 2017년 두 차례 폭행 사건에 가담하는 등 오너 일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자 김 회장이 ‘윤리경영’에 대한 의지로 내세운 극단의 조치였다.

한화컴플라이언스위원회는 출범 초기부터 그룹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던 경영기획실(삼성 미래전략실과 유사) 폐지를 권고, 김 회장이 이를 수용하고, 법규 관련 가이드라인을 적극 마련해 배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출범 2년째를 맞는 한화컴플라이언스위원회는 그룹 전체 컴플라이언스 정책을 수립하고, 각 계열사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한편, 준법경영을 위한 업무를 자문·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김 회장 역시 올해 신년사에서 “수년에 걸쳐 정도경영의 전사적 실천을 강조해왔다”면서 “정도경영은 이제 저의 신념을 넘어 한화인 모두의 확고한 신조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해 한화컴플라이언스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진그룹이 고(故) 조양호 회장 체제였던 지난 2018년 4월, 한진은 목영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준법위원회를 출범했다.

당시 한진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논란으로 시작된 오너 일가 갑질 경영 및 탈세 혐의로 몸살을 앓을 시기였고, 고 조양호 회장은 사과문과 함께 자율성이 보장된 준법위원회를 구성해 그룹 내 준법경영을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한진 준법위원회는 각 계열사별 준법지원 조직 구축을 돕고, 상법·공정거래법·노동법 등의 그룹 차원의 감사 업무, 각종 위법사항 사전점검 등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아울러 지난해 4월 조양호 회장이 별세하면서 준법위원회의 역할은 대중에게서 점차 잊혀졌다.

조양호 회장의 장남 조원태 회장 체제의 한진은 지난해 11월, 기업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를 위해 거버넌스위원회와 보상위원회를 신설키로 결의했다.

거버넌스위원회는 회사 경영 사항 중 주주 가치에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타당성을 사전 검토하고 계열회사 간 내부거래 활동의 적법성을 심사하는 기능을 담당하며, 보상위원회는 이사 보수 결정과정의 객관성·투명성 강화를 위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돼 움직인다.

그러나 조현아 전 부사장이 조원태 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조원태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오는 3월 주주총회를 통해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악용 우려”vs“결국 필요”...걸음마 뗀 준법감시기구를 바라보는 엇갈린 두 시선

기업의 도덕성과 투명성이 그 어느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준법감시기구 설립은 더 이상 특이 행보가 아니다.

다만, 전사적 교육으로 인한 그룹 구성원의 인식 개선, 그로 인한 준법경영 실천이 무형적 가치를 띠고 있어 활동 결과를 수치상으로 명확히 도출하기 어려운데다가, 오너 재판 과정에서 준법감시기구 설립이 감형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은 당분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등은 자신의 재판 과정 중 그룹에 준법감시기구를 설치했다. 한진그룹은 오너 일가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쇄신 목적으로 준법감시기구를 설치했다.

그 중에서도 이중근 부영 회장은 준법감시기구 설치가 양형 사유로 적용돼 실제로 감형을 받기도 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설치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감형에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2월 14일로 예정돼 있던 공판준비기일을 무기한 연기했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 측에 ‘준법감시위원회 운영의 양형 반영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라’고 요청함에 따라,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물론 오너 일가가 재판을 받거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반성과 쇄신의 자세로 기구를 설치하는 부분은 이해가 되나, 논란이 불거진 뒤에야 기구를 설립하는 형태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형태로 비춰질 수 있다”면서 “특히 기구 설립이 양형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해 대중의 부정적 인식이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반면,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기업의 이같은 움직임이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지난 1월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명예회장)가 별세하면서 격동의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창업 1세대가 저물었다.

참혹했던 6.25전쟁이 끝나고 난 뒤인 1962년, 정부는 경제 성장 실천을 위해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선포하고 국내 기업들을 토대로 국가기간산업 중심의 재건에 나섰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같은 군인 출신의 박태준 회장에게 철강산업을 맡긴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태준 회장은 포스코건설의 모태기업 포항제철의 창업주다.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 역시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전자산업을 국가적으로 키우자고 제안,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국가를 급격히 재건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기업이 정부의 도움을 받고, 정부가 기업에 지원을 하는 것은 당시엔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 그것이 악용된 사례도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문제는 국가가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오른 뒤였다. 창업 1세대가 급성장을 이뤄놓은 20세기 말~21세기 초 대한민국에선 정경유착 부조리 문제가 수도 없이 발생했다.

이러한 부분은 창업 1세대를 넘어 2세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소위 경제적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중견·중소기업 및 국민들은 재벌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시대가 2세대로 넘어옴에 따라 현재의 오너들 역시 ‘기업 투명성 확보’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도 최근에는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업 내부의 전사적 감시 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과거 어두웠던 면을 끊어내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의 오너들은 시대가 변해 소비자·국민들로부터 투명성을 확보해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면서 “각종 우려와 단점들로 인해 초기 준법감시기구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제도가 자리 잡는다면 많은 순기능이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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