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마지막 퍼즐이 어긋나고 있다.

리조트-면세-항공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레저 체인벨트’ 구축의 종착역인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돌발 변수로 인해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확산세가 멈출 줄 모르고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건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와 동시에 HDC의 주력 분야인 건설 사업마저 코로나19 등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올해 초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일정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며 호기롭게 장담하던 정 회장은 결국 기존 유상증자 일정을 무기한 늦추는 결정을 내렸다. 채권단인 산업은행 측에 차입금 관련 지원과 추가 협상 요청을 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승자의 저주’가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 회장은 과연 아버지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의 꿈이었던 하늘길을 열 수 있을까.

정몽규 회장. 뉴스락DB
정몽규 회장. 뉴스락DB
◆ 하늘길 통해 ‘레저 체인벨트’ 완성하고픈 정몽규의 꿈, 난기류 만나

현대산업개발 시절인 1999년, 아버지 고 정세영 명예회장(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넷째 동생)의 뒤를 이어 회장직을 맡게 된 정몽규 회장은 취임 이후 영창악기 인수, 현대아이파크몰 론칭 등을 통해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2015년에는 호텔신라와 손잡고 용산에 HDC신라면세점(합작법인)을 설립해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2017년 계열사 HDC아이서비스를 통해 금호리조트가 보유하고 있던 충남 아산에 위치한 금호산업 소유의 ‘아산스파비스’를 400억원에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한솔오크밸리를 인수해 HDC리조트로 출범시켰다. 그 사이 호텔사업부문을 영위하는 호텔HDC와 PCE사업부문을 영위하는 HDC현대PCE를 인적분할 형태로 자회사로 놓고, 지주사 체제전환까지 마무리하면서 산업 전 분야로 영역을 확장해 종합 기업으로의 도약을 시작했다.

HDC신라면세점이 개점 2년 만인 지난 2017년부터 흑자로 전환하고, 호텔HDC가 글로벌 럭셔리 호텔 브랜드 ‘안다즈 서울 강남’을 지난해 9월 위탁운영 형태로 오픈하는 등 실적이 나타나자 업계에서도 정 회장의 행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정 회장은 리조트-면세-항공으로 이어지는 ‘레저 체인벨트’ 정립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인수 필요자금 약 2조원대의 대형 M&A 매물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특히 항공산업은 자동차산업과 더불어 정 회장과 정 회장의 아버지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꿈이기도 했다. 현대차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두 부자(父子)는 고 정주영 그룹 명예회장이 현대차 경영권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승계하자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긴 바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자 입찰에는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 외에도 애경·스톤브릿지 컨소시엄, KCGI·뱅커스트릿 컨소시엄 등이 있었지만,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무난하게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선정 당시에도 몇 가지 우려점은 있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800%에 달했던 데다가, 2013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영업손실 4274억원을 기록하는 등 매각대상의 재무구조가 좋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 불매운동의 영향도 항공업계에 타격을 가했다.

이에 정 회장은 자산규모 10조원대, 부채비율 119%의 HDC현대산업개발의 재무안정성을 앞세워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 3월에는 주주배정 유상증자 청약금 3207억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난 3일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건을 승인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일본 불매운동 대비 상상할 수 없는 역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 예상 못한 코로나 변수, 안팎 역대급 불황 재무부담 가중…포기설 ‘솔솔’

이미 LCC(저비용항공사) 증가로 인한 경쟁 심화와 업황 불황 등으로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4274억원의 영업손실과 함께 당기순손실도 1960억원에서 8378억원으로 1년 새 3배가 증가한 상태였다. 부채비율도 1386%까지 뛰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월,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발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한민국 등 아시아를 넘어 미국·유럽 등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항공업계 전체가 사실상 ‘셧다운’ 됐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올해 전 세계 항공업계 피해액이 309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중 국내 항공사 상반기 매출 손실만 6조원대가 넘을 것이란 비관적 관망이 나오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아시아나항공이 이대로 갈 경우 2년 내 파산할 수도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전국 공항 이용 국제선 여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91.5% 감소한 64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확산 중이던 2월과 비교해도 46.6%가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사 모두가 임직원 급여 반납,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코로나19가 전 세계 확산세를 보이면서 항공업계의 역대급 불황은 당분간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정 회장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라는 ‘역대급’ 항공업계 위기로 인해 HDC현대산업개발은 당초 지난 7일로 예정됐던 유상증자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정 회장이 지난달 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차입금 상환 유예, 납입일 조정 등 조건 변경을 요구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러나 산은 역시 앞서 수은과 함께 아시아나항공 영구채 인수 등 총 1조6000억원을 지원한데다가 두산중공업, 쌍용자동차, LCC 등 맡고 있는 구조조정 건이 많아 인수주체도, 금융권도 모두 진퇴양난에 빠진 난처한 상황이 됐다.

한편, 이 가운데 재무부담을 떠안을 ‘본진’ HDC현대산업개발의 상황 역시 넉넉하지는 않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지난해는 주택시장 침체 및 부동산 규제 강화 기조에도 불구하고 무난했다. 별도 기준 매출액 4조2111억원, 영업이익 5484억원으로 전년比 각각 50.7%, 74% 성장한 것.

그러나 올해는 심상치 않다. 올해 1월 청약을 받은 당진 아이파크는 173세대를 모집했지만 2순위까지 공급물량의 40% 가량인 69세대가 미달됐다. 지난달 모집한 속초2차 아이파크 역시 578세대 중 2개 평형에서 134세대가 미달로 남았다. 대형건설사 중 1분기 분양사업에서 미분양을 기록한 브랜드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가 유일하다.

지난해 분양 물량도 2018년 1만2000가구보다 크게 줄어든 6392가구에 불과해 올해 1분기 실적 전망치가 밝지 않다.

지난달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HDC현대산업개발의 1분기 매출액이 8566억원, 영업이익은 88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77%, 13.34% 감소하는 셈이다. 직전 분기인 작년 4분기 영업익 1604억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HDC현대산업개발 자체의 실적이 호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건까지 있어 재무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 가중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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