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코로나19 사태로 산업 전반에 대위기가 닥치자 전국 산업 노조들은 위기극복에 동참, 춘투(봄철 노동계 투쟁) 없는 올 상반기를 보냈다. 매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엔 수만명이 집결했던 대규모 행사 역시 취소됐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임단협(임금단체협상), 고용 불안, 구조조정 해소 등 코로나19 여파로 남은 과제들이 아직까지 산적해 있다. 한 마디로 코로나19 타격으로 인한 기저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상황.

때문에 하반기에는 하투(여름철 노동계 투쟁)를 시작으로 노사 갈등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1대 국회 당선인 중 노동계출신 의원만 13명이어서 정치권의 지원사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악조건, 코로나19 기저효과 등 상황으로 이른바 ‘역대급’ 하투가 예상되는 가운데 노사 의견은 원만히 조율될 수 있을까. <뉴스락>이 들여다봤다. 

사진 각 사 노조 제공.
사진 각 사 노조 제공.
◆ 코로나19 위기극복 동참했던 각 산업 노조, 하투 앞두고 협상 촉구 움직임

코로나19로 인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지난 5월 1일 노동절까지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노동절 당일 역시 소규모 기자회견 및 공동행동,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정도에 그쳤으며, 전체 임단협 시기를 연기하기도 했다. 전레없는 사태에 노사가 위기극복을 위해 힘을 합친 것.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대부분의 기업이 적자를 면치 못했으며, 1분기 경제성장률(GDP)은 –1.3%로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4분기(-3.3%) 이후 11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기업의 손해는 곧 근로자들의 생계 위협으로 이어졌다. 대규모 구조조정 등 극단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산업 침체기가 장기화되자 월급 및 연봉으로 생활을 지탱해야 하는 노동자들 역시 한계치에 도달했고, 임단협 등 미뤄왔던 협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양대 노총은 지난달 26일 ‘코로나 대응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동의 과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현행 근로기준법 개정을 요구한 데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및 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민주노총이 개최한 이날 대회엔 민주노총 가맹산하 확대간부 및 조합원 1000여 명이 참석해 근래 보기 드문 규모를 보였다. 이들은 코로나19로 고용불안, 구조조정, 해고 및 임금삭감을 감내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생계 해결 촉구에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오는 7월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재벌체제 전환 등을 요구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예상 참가인원만 10만 여명으로 추산돼 본격적인 하투가 시작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투를 이끌어온 주요 산업 노조 역시 미뤘던 임단협 테이블을 다시 꺼내드는 모양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이달 2일 노사협의회를 통해 이달 말까지 요구안 확정 후 다음달부터 본격 교섭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 등 리스크에 노사가 공감해 임단협을 2011년 이후 8년 만에 무분규로 종료했고, 당시 집행부가 올해도 유사 기조를 보이고 있어 2년 연속 무파업 타결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 노조는 사측에 임금 등에 대한 문제는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있지 않다. 다만 노조가 고용 안정과 공장간 물량 불균형 문제 개선을 촉구하고,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된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고 있어 분쟁의 소지는 다분하다.

기아차 노조 역시 의견수렴을 진행하면서 코로나19 위기극복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사측이 코로나19 핑계로 복지 등을 축소해선 안 된다”고 말해 고용 안정 관련 협상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한국GM과 르노삼성 노조 역시 이달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한다. 특히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 2년 연속 기본급 동결을 받아들여 올해는 기본급 7만1687원(정률 4.69%) 인상 및 격려금 지급을 주장하고 있어 노사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조선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1년 넘게 2019년도 임금협상 타결 등을 요구하며 파업하고 있다.

회사 물적분할이 있었던 지난해 5월, 현대중공업은 임단협 타결, 물적분할 파업 해고자 복직, 안전사고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협상 테이블을 펼쳤지만 좀처럼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올해부터 꾸준히 간부파업을 진행해왔으며 6월 4일 임금협상 제59차 교섭에서 똑같은 제시안을 또다시 요구할 예정이나 현대중공업지주가 코로나19 여파로 1분기 영업손실 4872억원을 기록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가운데 현대중공업 노조는 물적분할 이후 그룹사 전체 노동조건 개선 등을 위한 교섭 단위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 전체 그룹사 공동교섭 보장을 사측에 요구했다.

공동교섭 요구안이 수용될 경우 노조 규모는 현대중공업 노조 1만여명에서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노조 2000여명이 추가돼 노조 세력이 더욱 커진다.

코로나19 실적 타격을 가장 크게 맞은 항공업계에선 대부분의 노사가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데 뜻을 모은 가운데, 제주항공-이스타항공 인수 과정을 놓고 이스타항공 노조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해온 제주항공은 올해 3월초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545억원(이스타항공 지분 51.17%)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조건에 구조조정 계획을 담았다.

이에 이스타항공은 자회사 이스타포트 계약 해지, 희망퇴직, 인력 구조조정 등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올해 1분기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부터 임직원 급여를 지급하지 못해왔다. 결국 희망은 제주항공에 피인수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제주항공이 지난 4월말 태국·베트남 기업결합심사 지연을 이유로 인수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4월말까지 지급되기로 한 계약금 제외 425억5000만원 역시 지급되지 않았다.

업계에선 기업결함심사 지연을 이유로 인수 무기한 연기라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제주항공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1분기 영업손실 657억원을 기록한 점을 꼽았다.

주머니 사정이 매우 악화된 제주항공은 인수 무기한 연기 결정 이후 지난달 20일 추가 조건으로 이스타항공에 임금 관련 200억원 상당의 대주주 사재출연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스타항공과 현재까지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 노동자들의 절규는 더욱 커졌다. 지난달 21일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는 집회를 통해 “지난 3월부터 무일푼으로 시간을 보내온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아랑곳없이 서로 책임전가만 하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사측은 반성하라”며 “항공업 정상재개 및 노동자 생존권 보장이 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 노조는 5일 집회를 비롯해 향후 집회를 지속해나갈 예정이다.

◆ 코로나19 기저효과로 ‘역대급’ 하투 예상, 노사 양보·신속 협의 필요

이처럼 업계를 막론하고 대대적인 하투의 움직임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지만 많은 근로자들 역시 당장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등 한계점에 도달했다”면서 “코로나19로 구조조정, 임금 삭감 등 비상경영을 해온 후유증이 뒤늦게 밀려오면서 노사 모두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말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권고사직이나 해고·계약해지를 경험한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은 14.3%로, 전체 평균인 5.5%를 크게 웃돌고 있다.

지난달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4월 사업체노동조사’ 자료에서도 4월말 기준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종사자 수는 1822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36만3000명(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종사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선 3월(-22만5000명·-1.2%)에 이어 2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한 것이다. 종사자 감소수·감소율만 보면 역대 최고치다.

고용 안정과 채용 재개가 시급한 시점이나, 아직 회복은커녕 급한 불끄기도 하지 못한 기업 입장에서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당장의 손실을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 임금 삭감 등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취한 가운데, 채용을 재개할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던 코로나19 사태가 이태원 및 쿠팡 물류센터 등을 통해 재점화되면서 기지개를 펴려했던 기업들의 움직임이 다시 수축됐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들을 중심으로는 미뤄왔던 공개채용이 다시 재개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말 삼성과 SK, 이달 초 롯데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항공업계와 조선업계 등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채용재개는 고사하고 희망퇴직조차 마무리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상반기 대부분의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 버티는 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였다”면서 “코로나19 타격이 2분기를 넘어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노사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노사간 양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코로나19 관련해 (좋지 못한 현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총파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해 올해는 최대한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교섭을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말 노사민정협의회를 출범한 청주시의 한범덕 청주시장 역시 “전례 없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소통과 상생의 노사관계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노·사·민·정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우리시가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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