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실적 출혈 장기화를 막기 위해 기업들은 일찌감치 해외 투자에 다시 뛰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가 회복 불가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미국·유럽 등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자국 중심의 리쇼어링(re-shoring: 제조업의 본국 회귀)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어 녹록치 않은 상황.

문재인 정부 역시 '한국판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기업들에게 리쇼어링을 적극 추진·권장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재계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뉴스락>은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 권장을 두고 국내와 해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기업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이 정책의 장단을 조명해본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10대 기업의 전사적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뉴스락 DB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재계는 전사적 경영 전략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왼쪽부터)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뉴스락 DB
◆ 정부, 리쇼어링 주문에 주요 기업들 응답 '제각각'

삼성전자(부회장 이재용)는 지난 3~4월 사이 중단됐던 인도 노이다 스마트폰 공장과 미국, 브라질 등 주요 현지공장을 활발히 가동 중이다. 현지 코로나19 사태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나 각국 공장이 주요 생산기지로서 역할이 막중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은 국내를 넘어 해외 현장경영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중국 시안 반도체사업장을 직접 찾아 “새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선 거대한 변화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고 격려했으며, 지난 22일에는 폴란드 마스크 제조업체 ‘프탁(PTAK)’에 설비·제조전문가들을 파견해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을 해외 처음으로 확대했다.

해외 각국에 주요 생산설비를 이미 구축해놓은 삼성으로서는 리쇼어링 정책에 유연하게 반응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지난달 말 평택사업장에 극자외선(EUV) 활용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라인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최첨단 반도체 공정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사업 특성상 국외가 아닌 국내, 그 중에서도 수도권 입지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이 방문했던 중국 시안 반도체사업장은 약 10조원의 자금을 들여 2단계 시설을 짓고 있어 해외 투자 확대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대차그룹(부회장 정의선) 자동차 공장을 토대로 해외 신시장 개척에 선제적으로 나선 기업 중 하나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 총 자동차 생산 대수 948만대 중 국내 생산은 338만대로 35.6%에 불과했다. 중국, 북미, 유럽, 인도, 브라질 등 해외 생산 물량이 월등히 많다.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을 추구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체제에서 해외 투자 기조는 더욱 확실하다.

지난해 3월 현대차는 기아차와 함께 해외 기업 투자 가운데 최대 규모인 3억 달러(약 3400억원)를 인도 차량공유업체 ‘올라’에 투자했다.

같은 해 상반기에는 AI 및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등 해외 스타트업 6곳에 779억원을 출자했으며, 스웨덴·이스라엘·스위스 등 수소생산·저장 부문 해외 혁신기술기업과 수소전기차 관련 협약을 맺었다.

지난해 9월에는 케빈 클락 앱티브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미국 자율주행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총 20억 달러(약 2조4000억원) 투입 계약을 체결하는 등 해외 투자에 방점을 찍었다.

올해 역시 지난 24일 해외 주요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전기차와 수소차 전략을 알리는 기업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해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연속된 해외 대규모 투자로 인해 내수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규제 강화, 규모 차이 등 국내 시장이 해외 시장에 비해 불리한 조건인 것은 일부 맞지만, 현대차가 2017년부터 2년간 자율주행·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기술 확보에 쓴 3조8000억원 중 99%에 달하는 3조7500억원이 해외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차그룹의 핵심 계열사 현대모비스가 3000억원을 투자해 울산 공장에서 친환경차·전기차 부품을 생산하면서 대기업 중에선 유턴 기업 1호가 됐다.

울산 공장은 2021년부터 친환경차 핵심 부품을 생산하며 연간 10만 대에 달하는 전기차 부품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 추산 울산 공장의 직간접 고용 일자리 창출은 1000여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회장 최태원)은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SK이노베이션 창저우 배터리 공장이 재가동과 함께, 지난 4월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제2공장 설립을 위해 8900억원 출자를 결의했다.

지난해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 SK하이닉스 등 그룹 차원으로 베트남 재계 서열 1위 빈그룹(Vingroup)의 지주사 지분 6.1%를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에 인수해 2대주주에 오르고, 베트남 시총 2위 마산그룹에 5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베트남 시장의 미래를 보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에는 제약 분야에서 항체의약품 혁신기술 선점을 위해 싱가포르 바이오벤처 허밍버드바이오사이언스에 80억원을 투자했다. 이 분야에선 지난해 10월 중국 바이오벤처 허버바이오메드 투자에 이은 투자로, SK 측은 바이오·제약 혁신기술 확보를 위해 ‘개방형 혁신’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동시에 리쇼어링 정책에도 어느 정도 응답하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는 최태원 SK 회장의 오랜 꿈인 ‘종합 반도체기업’ 실현을 위해 경기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 반도체 클러스터 생산라인을 조성한다.

SK하이닉스는 이 일대 448만㎡ 부지에 2022년부터 10년간 무려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라인 4기를 건설할 방침이다. 국내외 소재·장비·부품 협력사 50개사 이상이 이곳에 함께 입주한다.

충남 천안과 경북 구미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수도권 시장 접근성을 택했다. 정부는 용인 클러스터 조성으로 10년간 신규 일자리 1만7000여개와 약 188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도 SK는 SK머티리얼즈가 지난해 일본 수출 규제 품목이었던 고순도 불화수소의 국산화를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LG그룹(회장 구광모)은 생존을 위해 ‘오프쇼어링’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LG전자는 지난달 20일 구미사업장 TV 생산라인 일부를 인도네시아로 연내 이전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구미 공장은 앞으로 롤러블TV와 월페이어 등 일부 프리미엄 제품만 생산하고, OLED TV 등 아시아 시장에 공급하는 주력 제품의 생산은 인도네시아로 넘어가게 된다.

LG전자가 이 같은 결정을 한 데에는 구미사업장 6개 TV 생산라인 가운데 이전하는 2개 라인이 바로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과 싸워야 하는 일반 TV 생산라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휴대폰 국내 생산을 중단하고 베트남으로 거점을 이동한 이유도 인건비, 가격경쟁력 등을 고려한 이번 결정과 유사하다.

다만 LG화학이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구미형 일자리’ 투자는 내수 진작의 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LG화학은 2024년까지 경북 구미에 5000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공장을 신설할 계획인데 여기에 정부와 구미시가 대거 지원을 약속했다.

롯데그룹(회장 신동빈)은 석유화학 부문의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해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5월, 3조6000억원을 들여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에탄 크래커 공장을 준공했다. 대규모 투자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동빈 롯데 회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에서 리쇼어링 정책을 권장하고 있었기에 롯데케미칼의 행보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화학 부문 매출 증대를 모색하고 있는 롯데그룹 입장에선 더 큰 시장 진출이 절실했다.

현재 발목을 잡고 있는 국내 규제 역시 롯데의 결정에 한 몫 했다.

롯데칠성음료 광주공장의 경우 잉여생산품을 보관할 공간과 제품 수요 변화에 따른 제조라인 증설이 필요하지만, 개정되지 않은 수도권 입지 규제로 증축이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롯데칠성음료는 일부 생산량을 경기 안성으로 이전, 현재까지 약 4년간 연 물류비용 3억여원씩을 추가로 투입해야 했다.

미국의 리쇼어링 촉진역할을 하는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의 해리 모저(Harry Moser) 회장은 지난해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이 유턴기업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는 ▲유턴 실적에 대한 투명하고 신뢰도 높은 DB관리 ▲국내기업의 해외공장 문제점 조사·기록 ▲숙련된 제조업 노동인력 관리 ▲제조업체에 TCO 산출 서비스 제공 등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리쇼어링 필요성↑, 현실성·제도 미비점 등 ‘볼멘소리’ 가중

이처럼 재계 전반에선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리쇼어링 정책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실행에 옮기느냐 마느냐에 대해선 입장이 나뉘고 있다.

눈앞의 장단이 극명히 대비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7~8년 전부터 추진해온 리쇼어링 정책에 대한 재계 반응이 지지부진하자 최근 당근이 들어간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지난달 정부는 유턴기업 종합지원 명목의 각종 세제 혜택과 고용 보조금 지원 확대를 약속했다.

유턴기업이 최대 100%까지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인 ‘해외사업장 생산량 50% 이상 감축’ 조건을 폐지하고, 지방 유턴기업에 최대 보조금 200억원(기존 100억원), 수도권 유텁기업에 최대 150억원까지 보조금을 확대했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와 공공기관, 각 시·도에서 일자리 창출에 따른 고용창출장려금까지 지원하는 등 효율성 때문에 해외로 나간 기업이 돌아오기엔 좋은 시점이다. 내수 진작에 따른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전파하는 효과도 얻는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속 불안한 해외 환경보다 대한민국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역시스템이 구축된 나라에 속하는 부분도 기업이 회귀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주는 대목이다.

기업들도 리쇼어링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2월, 현대차가 차량 내부에서 전기·전자적 신호 체계를 전달하는 전선 뭉치 ‘와이어링 하네스’를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해오다 생산중단 사태를 맞는 등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5월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재계 5대 그룹 총수들과 회동해 정책 활성화에 대한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외 시장 규모의 차이와 국내판 리쇼어링 정책의 실효성을 고려하면 기업의 마음을 완전히 돌리기엔 아직 부족한 면이 존재한다.

우선 환경적으로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의 규모 차이가 크다. 특히 유형적 생산·판매활동에 해당하는 제조업의 경우 좁은 영토와 인구 감소 추세인 대한민국보다, 해외 시장의 예비수요에 더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각종 노동 규제 강화도 리쇼어링의 발목을 잡는다. 일례로 석유화학, 제조업 등 일감이 몰리는 시기가 존재하는 업종의 경우 주 52시간 제도를 준수했을 때 업무처리량이 미달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계에서 탄력근로제 기간·규모 확대를 주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강성 노조, 최저임금의 상승 등 기업이 국내판 리쇼어링 정책의 단기적 지원책만 바라보고 회귀하기엔 일차원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여건들이 해소되지 않았다.

리쇼어링 정책 개선안의 미비점도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 공장 총량 범위 내에서 유턴기업을 우선 배정하는 등 개선안을 마련했지만, 수도권 입지 규제 완화책 자체는 고려하지 않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도권 쏠림 현상, 환경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하는 데에는 동의하나, 대부분의 기업이 회귀를 고려할 때 인천공항, 서울 등에 인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단계적·부분적인 완화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규모 대비 법인세율 또한 높다. 정부가 법인세 혜택 확대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이미 지난해 3000억원 초과 구간의 과세표준을 신설하는 등 한국의 법인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실제로 OECD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지방세분 포함)은 27.5%로, OECD 36개국 중 9위에 기록됐다. 10년 전인 2010년(24.2%, 22위)보다 크게 뛴 수치다.

이미 평균 대비 높은 법인세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혜택이 강화되더라도 법인세가 감면되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미미해 굳이 기업이 들어와서 사업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리쇼어링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먼저 ‘법인세율 인하’ 카드를 꺼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오랜 기간 해외 시장에 자리잡고 있었던 기업들을 회귀시키기 위해 모든 조건을 완화한다면 노동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2% 담지 못한 정책으로 인해 주체인 기업들의 참여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국,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소유한 중소기업 200개사를 대상으로 중소기업 리쇼어링 관련 의견을 조사한 결과, 리쇼어링 의향이 있다고 답한 기업은 8.0%에 불과했다.

대기업 중에서도 표면적으로 리쇼어링 정책에 응답하는 기업은 현대모비스, SK하이닉스 정도에 불과하다.

현행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고려대상이다.

강기윤 미래통합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유턴기업 지원정책이 시행된 지난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유턴기업 71개사 중 토지매입 및 설비투자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은 곳은 전체의 14.1%인 10개사에 불과했다. 상시고용인원 20명, 지자체-한국산업단지공단-산업통상자원부 심의 등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유턴기업 71개사 중 ‘고용보조금’을 지원받은 기업 역시 15.5%인 11개사(31억10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특성상 산업부의 고용보조금 대신 고용노동부의 고용창출장려금이 지급되고 있는데다가, 고용창출장려금을 지급받으려면 신규 채용을 해야 해 막대한 투자비용에 이은 채용 투자를 포기한다는 것이 강기윤 의원의 설명이다.

강 의원은 “해외진출기업들이 국내 복귀를 원하지 않는 제일 큰 이유가 ‘생산비용 상승’이기 때문에 유턴시 국가가 초기투자비용을 과감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업 유턴을 촉진하고 제도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조금 상향과 지원절차 간소화를 위한 법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이어 “유턴기업법 시행령상 고용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지원기준 등에 대한 고시 등 하위 위임 행정규칙이 부재한 실정이라 산업부 소관 유턴기업법 행정규칙이 아닌 고용부 소관 고용보험법상의 고용창출장려금 행정규칙으로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초기투자비용 등 많은 리스크를 가지고 국내에 복귀하는 유턴기업들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영세한 기업들은 국내 경영이 연착륙될 때까지 신규 채용을 하지 않아도 한시적으로 고용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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