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탐사팀 김재민 기자.
재계탐사팀 김재민 기자.

[뉴스락] 제조사 스스로가 상품을 인증해서 판매하고, 그것을 산 소비자가 결함으로 환불을 요청하니 중재위원으로 제조사 이해관계자가 나온다면 이 때 소비자의 심정은 어떨까.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현대자동차 쏘나타를 구입한 차주 A씨는 구입 3주 만에 엔진 소음이 발생해 두 차례 수리를 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자, 지난 2월 국토교통부 자동차 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교환·환불을 위한 중재를 요청했다.

중재위원회에는 신청인·피신청인이 각각 선정한 2명과, 양측 협의로 선정한 1명 등 총 3명이 참가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씨의 요청은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제조사 과실이 아니었다는 맥락으로 기각됐다.

그런데 A씨는 “피신청인이 선정한 현대차 측 위원뿐 아니라, 현대차 A/S 협력업체인 ‘블루핸즈’의 지정공업사 대표 B씨가 중재위원장으로 나왔다”면서 공정성을 지적했다.

사실상 현대차와 이해관계가 있는 위원들이 현대차의 하자 상태를 파악해 결정을 내린 셈.

국토교통부는 “블루핸즈 지정공업사 대표가 참여한 것은 맞지만, 블루핸즈는 현대차와 계약관계일 뿐 소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없다”면서 “동일차량 비교 및 지하실 소음 측정 등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판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국토부 장관이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임명한 자동차·법률·소비자 분야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된 중재위원 중에는 자동차 관련 기업 임원 출신들이 있다. 국내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다보니 국내 자동차 대기업과 연관이 없는 이를 찾기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인 부분을 이해하더라도 현대차의 하자를 판단하는 중재위원 3명 중 2명이 이해관계자라는 점은 공정성에 있어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위원들이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꼼꼼하게 판단한 내용일지라도 이번 사례처럼 이해관계자라는 프레임으로 인해 왜곡·퇴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 사건에 대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지 않는 ‘제척(除斥) 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약 1년 넘게 차량 문제로 고통받다 정부기관에 SOS를 요청한 한 소비자는 찜찜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식’의 구조적 문제는 교환·환불 과정뿐만 아니라 제조 과정에서도 꾸준히 지적돼 왔다.

우리나라는 2003년 이후 기업의 강력한 요구로 기존 형식인증제도에서 자기인증제도를 도입했다.

한 마디로 자동차를 제조·판매·수입하는 기업이 차량의 안전기준이 적합한 지 스스로 인증하는 제도인데, 이는 늦어지는 인증 과정으로 인해 신차 시장에서 경쟁력이 뒤쳐진 기업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십수 년이 지난 현 시점, 신차 결함 문제가 잇따라 제기되면서 이 제도가 오히려 소비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토부가 자기인증 적합성을 수시로 체크하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2019년 미국의 소비자 보호법인 ‘레몬법’을 시행했지만, 입증 주최가 소비자인데다 환불 인정 기간이 1년이라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국 소비자는 제조사가 셀프로 인증한 차량을 몰다 결함이 발생하면 국가 기관 등을 통해 결함을 입증해야 하는데, 자동차심의위의 공정성까지 지적받으면서 믿고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부분은 국토부 자체도 인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지난 24일 박용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강북을)은 지난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보충질의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에게 “아파트를 하나 지을 때도 시공이 잘 됐는지 감리를 하는데,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를 건설사가 직접 감리하진 않지 않느냐”면서 “국토부가 제작사에게 결함문제를 떠넘겨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현미 장관은 “자기인증제도가 보다 철저하게 될 수 있도록 좀 더 제작사하고 긴밀하게 이야기하겠다”고 답변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글로벌 업황 불황을 맞게 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내수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내수 시장 선점을 위해선 판매량에 앞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쌓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국가’라는 타이틀도 결국 탄탄한 내수가 받침이 돼야 유지할 수 있으며, 이는 기업과 국가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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