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현대차그룹 제공 [뉴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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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락]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며 현대차그룹의 총수가 20년 만에 바뀌었다.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4차 산업혁명 대처라는 과제를 받은 그는,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변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젊은 피 수혈을 통한 보수적 조직문화 탈피, 업종간 초협력, 기술혁신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정 회장에 대해 재계 안팎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만 2년 만에 회장직에 오르게 된 것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결함 등 품질 논란과 노조 문제, 지배구조 개편 등 부정적 평가도 산적해 있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나온다.

코로나19라는 악조건 속에서 회장으로 취임한 그에게 올해는 소위 ‘2년차 징크스’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뉴스락>은 2년을 넘긴 정의선 체제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어보며 ‘명과 암’을 조명한다.

정의선 현대차 총괄 수석부회장. 뉴스락DB
정의선 현대차 회장. 뉴스락DB
◆ 한 발 앞선 전기·수소차 개발, 글로벌 선도

정의선 회장은 2018년 9월 총괄 수석부회장 승진 이후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맡으며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예고했다.

2025년까지 60조원 이상을 투자해 미래차(수소, 전기, 하이브리드, 자율주행) 개발과 플랫폼을 구축하는 거시적 비전 ‘2025전략’을 선포했다. 현대차는 총 44종의 친환경차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분야에선 아이오닉, 코나EV로 이어지는 전기차 라인업을 토대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엔 자체 개발 플랫폼을 탑재한 아이오닉 새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며, 기존 일정을 앞당겨 현대차, 제네시스에서만 2년간 9종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2018년 4만대에 불과했던 전기차 판매량은 올 상반기 23.3%(글로벌 5위 규모)까지 상승했으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2018년 3.1%에서 상반기 7.4%로 상승했다.

2025년까지 전기차 판매 100만대를 달성해 세계 시장점유율 10% 이상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다.

수소 분야에선 세계 최초 수소전기차를 양산한 기업으로서 수소전기차 보급과 수소충전 인프라 구축, 수소연료전지시스템 확대 적용 등 글로벌 수소생태계 조성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초 수소 분야 세계 최고경영자(CEO) 협의체 ‘수소위원회’ 공동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지난 2월 현대모비스, 현대건설기계와 수소연료전지 건설기계를 공동 개발했으며, 3월에는 서울시와 함께 수소전기차 보급 활성화 사업을 시작했다.

5월에는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수소상용차·수소택시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며, 6월엔 국방부 등과 함께 국군 내 수소전기차 및 충전소 보급에 나섰다. 지난 12일에는 국회 내 수소전기버스를 공급하기도 했다.

올해 세계 최초 수소전기트럭을 양산해 수출하면서 2025년까지 유럽 1600대 수출 계획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미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미국, 호주, 스위스 등 글로벌 기업들과 수소 관련 협약을 맺으며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적극 행보로 인해 대한민국은 2019년 승용부문 수소전기차 보급 대수 4194대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수소, 전기 등 자동차 기반 혁신과 함께 함께 로봇, 개인용 비행체(PAV)를 기반으로 한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등 폭넓은 영역에서 인간 중심의 스마트 이동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개발과 사업도 적극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현대기아차 디자인센터(남양기술연구소) 전경. 사진 현대차 제공 [뉴스락]
현대기아차 디자인센터(남양기술연구소) 전경. 사진 현대차 제공 [뉴스락]
◆ 수입차 공세 대비한 디자인 혁신·고급화 전략, 국내외 통했다

2009년 77.1%까지 도달했던 현대기아차의 내수 시장점유율은 2015년 68.1%까지 떨어졌다.

수입차 공세가 강력했던 데다가, 품질경영을 앞세웠던 현대기아차 차량에서 결함 등 문제가 연이어 발생해 ‘흉기차’라는 오명을 얻으며 소비자 이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쇄신과 혁신이 필요했다. 이에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 취임 이후 미래차 개발과 더불어 추진했던 완성차 사업방향은 디자인 혁신 등 고급화 전략이었다.

벤틀리 출신의 루크 동커볼케 현대·기아차 디자인총괄담당 부사장(사임)과, GM·벤틀리 출신의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 전무, 폭스바겐 출신 사이먼 로스비 현대스타일링담당 상무, GM·BMW 출신 서주호 현대디자인이노베이션 상무 등 거물급 인사 카드를 모두 디자인 분야에 사용했다.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에는 알파 로메오, 람보르기니 등에서 디자인 개발을 주도해온 필리포 페리니(Filippo Perini) 디자이너를 유럽제네시스선행디자인스튜디오 총책임자 상무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영입을 토대로 현대차는 소나타 DN8(센슈어스), 올 뉴 그랜져, 올 뉴 아반떼 등과 제네시스 G90, GV80, 신형 G80 등 과거와 다른 느낌의 신차들을 줄줄이 출시했다.

그 결과 올해 3분기(1~9월)까지 현대차 판매량은 누적 58만3664대를 달성, 전년 동기 대비 6.6% 증가했다. 잇따라 신차를 내놓은 제네시스 판매량은 7만7357대로 전년 동기 대비 73.6%나 성장했다.

바뀐 디자인을 적용해 페이스리프트한 아반떼, 쏘렌토(기아차)는 각각 3분기 누적 6만3570대, 6만2622대가 팔리며 올해 국내 출시한 신차 중 최다 판매량 1,2위를 기록했다.

결국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내수 시장점유율 79.9%를 기록, 소위 ‘잘 나갈 때’였던 2009년(77.1%)때보다 더 성장한 ‘V자 반등’을 이뤄냈다. 고급화 전략을 토대로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6~8월 기준 점유율 8.9%를 달성해 10% 고지를 눈앞에 뒀다(현대기아차 합산).

정 회장의 ‘신차 매직’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16일 사전계약을 진행한 신형 투싼(투싼 NX4)은 첫날 계약 1만842대를 기록하며 현대차 SUV 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제네시스에서 연내 출시될 ‘GV70’과 ‘더 뉴 G70’ 역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대차가 친환경차 관련 무료 교육과정인 ‘H-모빌리티 클래스’를 실시한다. 사진 현대차 제공 [뉴스락]
현대차가 친환경차 관련 무료 교육과정인 ‘H-모빌리티 클래스’를 실시한다. 사진 현대차 제공 [뉴스락]
◆ 조직문화 개선 등 ‘젊은 기업’ 만들다, 기술혁신으로 이어져

정 회장 취임 후 위와 같은 기술혁신은 내부 기업환경 개선이 선행됐기에 가능하다는 평가다.

자동차 제조업 특성상 다소 보수적인 조직문화였던 현대차의 변화를 위해 정 회장은 소위 ‘현대차맨’에 치중했던 순혈주의 인사를 타파했다.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사장급 임원은 2년 전 5명에서 10명으로 증가했다. 이 중 외국인 사장은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 본부장(사장),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경영담당 사장, 호세 무뇨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미주 권역 담당 사장까지 3명으로 늘었다.

삼성전자 출신의 지영조 현대차 전략기술본부장(사장),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 신재원 현대차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부장(부사장), 윤경림 현대차 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장(부사장) 등 외부 인재도 다수 영입했다.

젊은 피를 수혈함과 동시에 내부 조직문화 개선에도 나섰다.

기존 정장 대신 자율복장을 도입하고, 본인 먼저 자유로운 복장으로 직원들을 만나고 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으로 구분됐던 기존 직급체계를 매니저(사원~대리), 책임매니저(과장~부장)로 간소화했다.

정 회장이 직접 유튜브 등 대외소통창구를 활용하거나, 사내 타운홀 미팅을 열고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젊은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오랜 기간 내부에 자리잡은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순혈주의 인사를 깨고 외부 인재를 영입해 효과를 거두자 내부에서도 점차 신뢰가 생겨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7일 충남 서산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에서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된 '니로EV'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SK·현대차 제공 [뉴스락]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충남 서산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에서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된 '니로EV'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SK·현대차 제공 [뉴스락]
◆ 보수적 문화 탈피, 총수 회동 적극 행보…업종간 초협력

내부 기업환경 개선·인적 쇄신과 더불어 대외적인 행보 역시 과거 대비 유연하게 넓어졌다.

자동차 제조·판매가 주 사업이었던 정몽구 명예회장 체제에선 정부 행사를 제외하면 대기업 총수간 개별 회동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서로를 견제하며 선의의 경쟁상대로 여겼던 것.

그러나 3~4세 경영으로 넘어온 상황에서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기업의 업종간 초협력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정 회장의 행보는 매우 적극적이다.

지난 5월 정 회장이 삼성SDI 천안사업장에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회동했을 당시에만 해도 재계 관계자 대부분이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정 회장은 6월 LG화학 오창공장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나고, 7월 SK이노베이션 서산 배터리 공장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는 등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보여왔다.

4대 기업 총수 전원이 식사를 겸해 종종 모임을 가지는 등 전기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업종간 초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 정세 및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국제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수출·수입 등 무역을 줄이고 자국민과 자국기업에 투자를 집중하는 ‘리쇼어링’ 정책을 펼쳤다.

아울러 일본 불매운동 여파, 자본을 중심으로 한 중국기업의 무서운 성장세 등 동북아시아 정세에도 혼란이 오자 국내 기업들 역시 ‘제조업의 국산화’를 추진하게 된 것.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업황이 호황이 아닌데다가 점차 자국중심의 정책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기술혁신·기업간 협력 등 변화를 꾀해왔던 정 회장이 회장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 선점을 위한 적극·파격 행보를 보이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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