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실손의료보험은 질병과 상해를 보장하기 위해 2009년 처음 출시된 이래 세 차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비를 보장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린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실손보험 가입자는 전체 인구수 대비 5명 중 1명꼴에 해당하는 약 3800만명에 달한다. 

최근 금융당국은 실손보험의 고질적인 문제인 일부 가입자의 과다한 의료이용, 비급여 과잉 진료 등을 개선하기 위해 내년 7월경 '4세대 실손보험'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보험료 인하와 형평성 제고기대를 나타낸다.

하지만 일각에선 4세대 실손보험이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는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며 우려를 나타낸다.

<뉴스락>이 꼼꼼히 짚어봤다. 

KBS일부화면캡쳐 [뉴스락]
KBS방송 일부화면캡쳐 [뉴스락]

 

◆실손보험의 고질병...의료쇼핑·비급여 과잉 진료

"다행히 5년 동안 건강해 혜택은 전혀 못 봤습니다만 5년 전 2만원대였던 월 보험료가 4만원대까지 올랐어요. 3만 8000원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4만원대로 오르니 이걸 들고 있어야 하나, 해지하고 옮겨야 하나 싶습니다."

-A 온라인 커뮤니니게시판에 올라온 글 일부. 

이처럼 많은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보험료 인상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는 소수의 불필요한 의료이용 비급여 진료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가입자의 과다한 의료이용이 대다수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 7일 발표한 ‘실손의료보험 청구 특징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 이용량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의 56.8%를 지급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이용량 상위 10%의 ‘의료쇼핑’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보험연구원에 보고된 사례를 보면 한 실손보험 가입자는 위염, 두통 등 경미한 질환을 이유로 한 해 동안 많게는 800회 이상 통원 치료를 받았다.

자료 금융위원회 제공 [뉴스락]
생·손보 전체 실손의료보험(표준화 실손) 보험금 지급현황. 자료 금융위원회 제공 [뉴스락]

동네병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 증가도 문제로 떠오른다.

도수치료, MRI, 주사료 등 비급여 진료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로 비필수 의료가 비일비재하다.

올해 상반기 동네의원의 실손보험 비급여 진료 청구금액은 1조 1530억원 규모로 2017년 상반기 6417억원보다 무려 79.7% 증가했다.

이는 상급종합병원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높은 수치다.

상급종합병원의 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보장성 강화정책에 따라 최근 3년간 4.3% 감소했고, 청구 의료비에서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상반기 19.9%에서 2020년 상반기 14.4%로 줄었다.

결국 소수의 의료 쇼핑과 비급여 과잉 진료는 실손보험의 손해율을 악화시킨다. 

손해율이란 보험 가입자에게 받은 보험료 대비 보험사가 지급한 돈의 비율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손보험 손해율은 2019년 134%로, 2016년 131.3%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3분기 손해율은 130%로, 코로나19 등으로 발생 손해액 증가율은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계속되는 손해율 증가는 보험회사의 적자 누적으로 이어져 실손보험 판매 중지에 기인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7~2020년 실손보험 누적 적자는 6조 2000억원에 달해, 기존 실손보험 판매 회사 30개사 중 11개사가 실손보험 상품 판매를 중지했다.

또한, 소수의 불필요한 과다 의료이용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부담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보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해 동안 통원 진료일수 상위 10명이 납입한 국민건강보험료는 1218만원에 불과하지만, 이들에게 투입된 건강보험 재정은 20배가 넘는 총 3억 5624만원으로 집계됐다.

정성희 보험연구원은 “일부 가입자의 과다한 의료이용은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부담으로도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실손보험 제도의 형평성 및 지속성을 제고하고,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의 효과를 증대하기 위해서는 비급여 이용량을 반영한 할인할증 방식의 보험료 차등제 도입과 비급여 관리를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내년 4세대 실손보험, 뭐가 달라지나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이용한 만큼 보험료를 내는 4세대 실손보험을 내년 7월 선보일 계획이다.

개편되는 실손보험은 △비급여 항목을 특약으로 분리 △보험료 차등제 도입 △보장금액 변경 및 자기부담금 상승 △저렴해지는 보험료 △재가입 주기 단축 등이 골자다.

먼저, 보험료 상승의 주요 원인인 비급여 항목을 특약으로 분리한다.

현행 실손보험은 급여와 비급여를 주계약으로 도수치료, MRI, 주사료 등 특정 비급여를 특약으로 지정했다.

개편안에는 급여를 주계약으로 비급여를 특약으로 분리해 비급여 보장 영역 관리를 위한 체계가 마련된다.

또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해 가입자 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한다.

자동차보험처럼 보험금 지급 이력이 없는 고객은 보험료를 할인해 주고, 지급 이력이 있는 고객은 보험료를 할증하는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도입될 보험료 차등제는 비급여 지급보험금 정도에 따라 가입자를 5등급으로 나눈다. 지급 이력이 없는 1등급은 보험료를 할인해 주고, 100만원 미만으로 보험금을 지급받은 2등급은 현 보험료를 유지, 그 이상을 지급받은 3~5등급은 보험료를 할증을 하는 구조다.

자료 금융위 제공 [뉴스락]
5단계 보험료 차등제. 자료 금융위 제공 [뉴스락]

예를 들어 1년 동안 비급여 치료를 300만원 이상 받게 된다면 보험료가 그 전년도에 비해 4배가량 상승하는 것이다.

이러한 할인·할증 제도는 상품 출시 후 3년 뒤인 2024년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단, 지속적이고 충분한 치료가 필요한 의료취약계층에는 적용을 제외키로 했다.

더불어 보장금액이 변경되고 자기부담금이 상승한다.

현 실손보험은 입원 의료비 5000만원, 통원 의료비는 하루 30만원을 보장해주는데,

4세대 실손보험에서는 입원 의료비와 통원 의료비를 합산해 연 5000만원까지 보장해 주고 통원 의료비는 회당 20만원으로 제한이 생겼다.

자기부담금 및 통원 공제금액이 지금에 비해 늘어난다.

통원 시 현재는 병원 등급에 따라 1만원, 1만 5000원, 2만원의 최소 본인 부담금이 있는데, 4세대 실손보험에서는 급여는 1만원,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2만원이고 비급여는 3만원까지 자기부담금이 커진다.

통원 공제금액의 경우 급여는 기존 10%에서 20%로, 비급여는 기존 20%에서 30%로 늘어난다.

반면, 보험료는 저렴해진다.

보험료는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 보다 약 70%, 표준화 실손보험 보다 약 50%, 착한 실손 보험보다 약 10% 감소한다.

예를 들어 착한 실손보험을 가입한 40세 남자 기준 보험료가 12184원이라면 4세대 실손보험으로 변경한 뒤 10929원으로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의료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재가입 주기가 단축된다.

현재 실손보험은 15년에 한 번씩 상품 내용이 개정되고 100세까지 보장을 받는 형태인데, 이 개정 주기를 15년에서 5년으로 줄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비급여 특약 분리 및 보험료 차등제 도입, 자기부담률 조정 등으로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낮아질 것”이라며 “가입자 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이 제고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국민건강보험과의 연계성 강화 등으로 국민건강보험을 보완하는 사적(私的) 사회 안전망 기능을 지속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 4세대 실손보험 실효성 논란...기대 속 우려 

4세대 실손보험에 대한 기대와 함께 실효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는 4세대 실손보험이 손해율 악화와 보험료 인상의 주범인 비급여 과잉 진료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7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인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확대되자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허위 진료를 일삼고 있다.

치료 전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묻고, 가입된 환자에겐 치료에 불필요한 고액의 비급여 진료를 권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는 의료기관이 자유롭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어 통제가 어렵다. 이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비급여 진료비 정보 분석' 자료에 따르면 도수치료의 경우 최저금액은 2000원, 최고 금액은 50만원으로 500배의 차이가 났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확대되자 비급여였던 진료가 급여화되면서 의료 신기술 도입을 이유로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만들기도 했다.

김순례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 의료기관은 지난해 2월 비뇨기계 초음파가 급여화되자, 치료재료 명목으로 10만원짜리 비급여를 끼워 넣는 등 부위별 초음파를 급여화할 때마다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만들어내는 행태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세헌 보험소비자원 국장은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비급여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서는 비급여 항목의 표준 코드 사용 의무화, 비급여 진료비의 표준가격 제도 도입은 물론 모든 의료기관에게 비급여 진료비 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험료 인하와 가입자 간 형평성 제고 등도 빠른 시간 내 효과를 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4세대 실손보험은 새로운 가입자에게만 적용될 뿐 기존 가입자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아 그 효과가 미지수다. 따라서 의료 사용량 상위 10%가 새로운 실손보험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한, 4세대 실손보험에 보험료 차등제가 도입되긴 하지만 충분한 통계 확보 등을 위해 3년 뒤부터 적용된다.

오세헌 보험소비자원 국장은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실손보험의 주요 문제인 ‘마구잡이 의료 쇼핑’과‘비급여 과잉 진료’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기대한 보험사 적자 해소와 보험료 인하도 사실상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며 “금융당국과 보건복지부, 의료업계가 협조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단기적으로 봤을 땐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효과를 내긴 힘들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4세대 실손보험이 출시되면서 가입자와 병원에 경각심을 줄 수 있고, 실손보험이 정상화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추가적으로 비급여를 관리를 강화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거듭되는 실손보험 개편에 기존 가입자들도 혼란스럽다.

이에 전문가들은 가입된 보험료 인상 속도, 본인의 의료 이용횟수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전 상품들이 출시될 실손보험보다 보장은 좋지만 보험료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다만, 비급여 항목에 대한 수요가 낮고 자기 부담금이 조금 있더라도 보험료 절감이 더 중요하다면 변경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봤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구 실손 보험료를 감당할 여력이 있다면 계속 사용해도 된다”며 “합리적인 보험료와 본인이 쓴 만큼 할인을 받고 싶다면 새로운 실손으로 갈아타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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