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전 세계적으로 ‘내연기관 퇴출’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리나라 역시 ‘2050 탄소중립’ 이행계획에 따라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 완전중단을 목표로 전기차 보급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기차는 누적 13만7636대로 2017년 대비 5.5배나 증가했다.

출시 예정인 현대차 전기차 아이오닉5는 사전예약 첫 날 역대 최고기록인 2만3760대를 기록했다. 기아 EV6 등 기대작들이 뒤를 이을 예정이어서 전기차 보급률은 급격히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 대비 지난해 전국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수는 2017년 대비 4.3배 증가한 6만4188대에 그쳤다. 충전기 확충 계획과 관련 법안이 줄이어 나오고 있지만 많은 충전시간, 주차난 문제 등 근본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제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주차·충전 문제 외에도 전기차 관련 교육·인식 부재, 보조금 고갈 등 우려점도 지적되고 있어 차량 보급률 대비 유·무형적 인프라 확충은 아직까지 더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스락>이 점검해봤다. 

국회 앞 전기차 충전기. 사진 김재민 기자 [뉴스락]
국회 앞 전기차 충전기. 사진 김재민 기자 [뉴스락]
◆ 주거 특성 ‘공용주택·소규모가구 多’, 주차·충전 문제 해결 난관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국내 전기차 충전기 수는 중국의 0.8%, 미국의 1.4%, 일본의 10.1% 수준이다. 전기 자동차 수는 빠르게 늘어나는데 충전기 개수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급증하는 전기차 충전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환경부는 수소 충전기 180기 이상, 휴게소·주유소 등 이동거점을 포함한 전기차 급속 충전기 1만2000대, 완속 충전기 8만4000대 등을 도입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지난달 25일 ‘제5차 혁신성장 BIG3 추진회의’를 통해 의무설치 대상을 대형마트·백화점·대기업 소유건물·100세대 이상 아파트로 규정하고, 신축건물 의무설치 비율 현행 0.5%→2022년 5%, 기건축물 2022년 공공건물을 시작으로 2023년부터 민간건물에도 2% 설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의무설치 대상이 아닌 연립·주택 등 세대는 공공 충전시설 개방 의무화를 통해 충전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노외주차장에 친환경차 전용주차구획을 전체의 5% 이상 설치하거나, 완속 충전시설의 충전시간을 12시간으로 상한하는 등 주차·충전 전반의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공간’이라는 한정적이고도 현실적인 제약이 곳곳에서 발목을 잡는다.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의 61%가 아파트 형태의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보편적인 형태인 민간 아파트는 전기차 충전기 도입을 위해 입주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전기차 차주들이 거주 단지에 충전기 설치 또는 투표를 요청하고 있지만, 이미 주차난이 심각한 가운데 특히 내연기관 차량을 사용하고 있는 입주민 입장에선 부족한 공간을 만들어 조성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로 인한 갈등도 증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충전 중인 전기차 모습(왼쪽), 전기차 충전기 부족을 호소하는 사용자 게시글 캡쳐(오른쪽). [뉴스락]
충전 중인 전기차 모습(왼쪽), 전기차 충전기 부족을 호소하는 사용자 게시글 캡쳐(오른쪽) [뉴스락]

또, 소규모 가구,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다수의 세대가 밀집한 다세대·연립주택 등 주택가에서는 관련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다. 부지 확보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서다.

지난 2월 기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내 인구 대비 세대수가 가장 많은 신림동(2만1859명 중 세대수 1만7338세대/세대당인구 1.26)에는 관할구역 내 전기차 충전기가 단 1대 존재한다. 해당 충전기가 사용 중이라면 인근 다른 동을 찾아가야 한다.

물론 세대당 인구 기준으로 전기차 사용자를 추산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소규모 가구 밀집지역에서 충전기 부지 확보는커녕 주차 문제가 이미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데다, 이들을 향후 전기차 예비사용자로 가정했을 때 세대당 수용해야 할 충전기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국가 차원의 계획이 곧바로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반응이 잇따른다.

관악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는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밀집한 동네에선 세대당 최소 주차공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워 골목골목 차량이 주차돼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면서 “이 같은 조건에서 전기차 수요를 충족할 만큼의 충전기 개수나 관련 부지를 설치·확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급속 충전기 기준으로도 완충이 30~60분, 완속 충전기로는 약 6~9시간이 소요돼 사용자간 갈등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에 지난해 1~6월 사이 접수된 전기차 충전 관련 민원 건수는 월평균 228건으로 전년동기 월평균 153건 대비 50%가량 증가했다.

이에 지난달 21일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모든 전기차 충전시설에서 충전구역에 주차한 일반 차량에 과태료 10만원을 부과(기존 의무설치 내 구역에서만 적용)하는 방안이 담긴 ‘친환경자동차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충전구역에 차량을 주차하고 연락이 안 되거나, 충전완료 후 이동주차를 하지 않는 민원이 실제로 가장 많이 접수된다”며 “피치 못하게 주차를 하더라도 꼭 연락처를 남겨 빠른 대응이 가능토록 해야겠고, 충전이 완료된 전기차는 2시간 이내 이동주차를 하는 등 다른 운전자를 배려하는 부분에 대한 계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다만 점검반 단속 강화로 지난 한 해 서울시 월평균 137건, 올해 1~2월 월평균 106건 등 민원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민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사무총장은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최근 몇 년 전부터 전기차 보급이 본격 확산되면서 인프라 구축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보급률 상승을 위해선 떼려야 뗄 수 없는 ‘충전’ 문제가 빨리 해소돼야 한다”면서 “공공장소 중심의 확대가 아닌 소위 ‘집밥’을 먹을 수 있는, 아파트나 주거지역 인근 설치에 조금 더 세부적인 정책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정부의 거시적인 목표가 달성되려면, 민간 아파트 충전기 도입 촉진을 위한 세부 권장 방안, 충전기 부지 확보 문제, 충전기술 고급화 등 여러 쟁점의 해결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근 전기차 충전기 현황. 사진 저공해차 통합누리집 [뉴스락]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근 전기차 충전기 현황. 사진 저공해차 통합누리집 [뉴스락]
◆ 교육·인력 확보 부족, 무형적 인프라 구축 병행돼야

이처럼 전기차 보급률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보들이 정리·보편화돼 있지 않아 관련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연기관 차량의 연료탱크 대신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는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필요없으며, 모터 발전기 내 인버터를 통해 배터리에서 발생한 직류전류를 제어하기 편한 교류로 바꿔 모터를 회전시키는 방식으로 가동된다. 이로 인해 기존 내연기관 차량 대비 부품수도 30%밖에 되지 않는다.

구조가 단순해져 고장률이 낮다는 평을 받지만 아직까지 안전성 등 유의할 점이 많다.

현재 가장 보편화돼 있는 리튬이온배터리는 화재 발생시 열폭주 현상(과전류로 인한 스파크 현상)이 발생해 일반 ABC 분말 소화기로는 진압할 수 없고, 수분이 없는 고운 입자의 모래 성분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 소비자는 물론 관련 소방시설 인프라도 갖춰진 곳이 드물다.

전기차 화재 진압을 위한 소방교육 또한 그동안 각 지방청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해오다 2019년에 들어서야 중앙본부차원에서 고전압차량 사고 대응 훈련이 실시되는 등 뒤늦은 발돋움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화재가 발생한 테슬라 전기차의 전력이 끊겨 소방관들이 일찍 도착하고도 문을 열지 못해 사고 발생 25분 만에 동승자를 차량 밖으로 빼내는 일도 발생했다. 이후에야 테슬라코리아 등의 협조로 중앙소방학교에서 테슬라 전기차 화재 관련 교육이 진행됐다.

업계 내에선 테슬라뿐만 아니라 최근 완성차 업계에서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 등 자체 플랫폼을 적용한 전용 전기차가 줄줄이 출시되고 있는 만큼, 충전구 위치·화재 대응 등 기초적인 매뉴얼뿐만 아니라 전기차 모델에 대한 소방교육 등도 지속 업데이트돼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아울러 전기차 정비 관련 인력 양성도 이제 걸음을 뗀 단계다. 2019년부터 자동차정비기능사 등 국가기술자격증에 전기차 관련 항목이 추가됐다. 정부 차원의 전기차 보급이 이뤄진지 7년만의 일이다.

독일의 차량 정기 검사 협회 TUV(Technischer Uberwachungsverein)는 전기차 위험성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고전압 차량 안전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정비사는 전기차를 다룰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민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사무총장은 “기존 내연기관 정비 인력이 전기차 정비 자격을 확보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특히 전기차가 고압 전기를 다루기 때문에 전기협회 등 각 협회들이 힘을 모아 자격 취득 프로세스나 인력 양성 프로그램에 대한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전기차 부문에서 세계 최고가 되려면 배터리 안전성 확보는 물론, 선진국의 사례를 토대로 교육 또는 전문 인력 양성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선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소비자가 안전하게 전기차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정부와 완성차업체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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