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순위 31위를 기록한 중견건설사 제일건설은 최근 벌떼입찰 의혹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비상등이 켜졌다. 

제일건설은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와 정부의 잦은 부동산 정책 변경 등으로 인해 2018년 매출 1조원을 달성했던 것과 비교해 실적은 다소 감소했지만, 2014년 대비 영업이익만 505% 상승해 단기간에 업계 도급순위 상위권으로 진입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띠고 있다.  

사실 지금의 제일건설은 모태 제일건설이 아니다. 창업주 유경열 회장은 2007년 제일건설의 시공부문을 분할해 풍경채라는 회사를 만들어 장남 유재훈 사장에게 넘겼고, 사세를 확대한 풍경채에게 제일건설 상호를 내주면서 승계 작업을 굳혔다.

이렇게 계열사를 키워 급성장했지만 최근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쏘아올린 벌떼입찰 의혹들과 안전사고, 하자 논란 등 각종 이슈들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중견을 넘어 대형건설사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이 같은 악재들을 해소하고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뉴스락>이 짚어봤다. 

제일건설 광주 본사 및 창업주 유경열 회장. 사진 네이버 거리뷰 캡쳐, 제일건설 홈페이지 캡쳐 [뉴스락]
제일건설 광주 본사 및 창업주 유경열 회장. 사진 네이버 거리뷰 캡쳐, 제일건설 홈페이지 캡쳐 [뉴스락]
◆ 계열사 키워 승계 마친 제일건설, 10여 년 만에 30위권 건설사 도약

창업주 유경열 회장은 1978년 전남 광주에서 제일주택건설을 설립하고 호남지역 내 주택공사를 맡으며 성장했다. 오늘날 제일건설그룹의 모태 기업이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건축, 토목건축공사, 조경공사업 등 각종 면허를 취득하고 1992년 상호를 제일건설로 변경하며 사업 영역을 차츰 넓혀갔다.

사세를 확장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유 회장에겐 승계라는 고민이 생겼다. 장남 유재훈 사장에게 가업을 물려줘야 하는데 당시 유 사장의 제일건설 지분이 3.75%에 불과해 지분 매입 방식을 택하기엔 많은 자금이 필요했던 것.

이에 유 회장은 계열사를 키우는 방식으로 우회 승계를 추진했다. 2007년 유 회장은 제일건설의 시공부문을 분할해 이를 특수관계사 풍경채에 넘겼다. 풍경채는 유 사장이 맡은 회사였다.

시공부문을 받은 유 사장의 풍경채가 그룹 내 주력 회사로 발돋움하자 유 회장은 아예 제일건설의 상호를 풍경채에 넘기고, 기존 제일건설은 제일풍경채로 이름을 바꾼 뒤 최대주주로만 남으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상호를 물려받은 현재의 제일건설은 가장 최근 공시인 2012년 기준(비상장사로 공시 의무 없음) 최대주주 유 사장(41.80%), 유 회장(11.14%), 3세 유승헌씨(17.57%), 유 사장의 부인 박현해씨(14.93%) 등 오너 일가가 85.44%를 보유하며 2세 경영 체제의 자리를 잡았다.

시공부문을 떼어준 제일풍경채(옛 제일건설)는 2008년 매출액 24억원을 시작으로 내리막을 걷다 2013년에는 매출액이 발생하지 않았다.

2014년 현 제일건설 주택분양 증대 낙수효과 등으로 매출액 282억원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영업이익은 적자였다. 2017년에도 매출액이 발생하지 않는 등 들쑥날쑥한 실적 행보를 보였다.

반면 모태 기업의 지원과 관계사의 일감을 수주하며 성장한 현재의 제일건설은, 2016년 매출액 1조원을 달성하며 중견건설사로 성장했다.

2017년 창사 이래 최대 매출액 1조1904억원을 기록한 뒤 2018년 1조4억원, 2019년 971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매출액이 1조원 안팎을 웃도는 상황에서 유 사장은 돌연 모태 기업인 제일풍경채 대표로 자리를 옮겨갔다. 제일건설 대표직은 제일건설 전무를 역임했던 박현만 대표가 맡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모태 기업을 살려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와 함께, 이른 감이 있지만 3세 경영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을 진행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 하자 논란·안전사고 이어 벌떼입찰 의혹…“성장세만큼 품질 향상돼야”

1조 클럽을 웃돌 만큼 성장한 제일건설이지만 각종 하자 논란, 안전사고 등 기업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데 이어, 최근 LH 공공택지 입찰에서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동원, 이른바 ‘벌떼입찰’의 중심에 서 있다. 

2019년 11월 입주한 고덕국제신도시 제일풍경채센트럴에선 도배 불량, 타일 깨짐 등 하자가 발생해 지난해 초 하자 보수 요청이 잇따랐다. 한 세대는 반년이 지나서야 처리가 됐다며 하자 대응 태도를 지적했다.

지난해 1월 입주한 의정부 제일풍경채센텀에선 아파트 주차장에서 물이 새고, 공사 과정서 버려진 건설폐기물들이 입주 후에도 방치돼 입주자들이 집단 민원을 수차례 제기한 끝에 수개월 뒤 처리되기도 했다.

제일건설의 2019년 하자보수비는 85억1387만원으로,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순위 26위이자 같은 호남 건설사인 우미건설 하자보수비 9억6758만원 대비 많다.

물론 제일건설의 2019년 매출액이 1000억원 이상 더 많은 점, 수주량 차이 등을 고려하면 절대적 수치에 따른 비교는 어려우나, 매출 대비 하자보수와 관련된 비용이 유사한 규모의 건설사와 비교했을 때 다소 큰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올해의 경우 1분기가 채 끝나기 전에 안전사고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달 17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강G트리타워(제일건설 시공)’ 건설현장에서 60대 노동자 A씨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A씨는 지하 1층 환기구 주변에서 공사 경과 확인 등 작업을 하다 지하 4층으로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 지하 2층에서 A씨의 아들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찰 등은 현장 안전 조처 관리, 안전수칙준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본격 발효됨에 따라 안전사고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 시공사 책임론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모습. 사진 송언석 의원실 제공 [뉴스락]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모습. 사진 송언석 의원실 제공 [뉴스락]

여기에 LH 사태로 재조명된 이른바 ‘벌떼입찰’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지난달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2008~2018년 LH 아파트 용지 입찰 참여 및 당첨업체 현황’ 자료에 따르면, 호반건설 등 5개 중견건설사는 단순 추첨제로 진행된 LH 아파트 용지 전체 473필지 중 142필지(약 30%)를 따냈다.

송언석 의원은 이들이 공공택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벌떼입찰을 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 기준 제일건설은 세종화건설 등 10개 종속기업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5곳이 매출액 0원으로 입찰 참여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공공택지 입찰을 하려면 토지 대금의 10%를 준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제일건설을 포함한 벌떼입찰 의혹을 받고 있는 중견건설사들은 매출이 전무한 종속기업들을 포함해 단기 대여금 명목으로 입찰준비금을 빌려줘 입찰 경쟁에 참여시켰다.

제일건설의 경우 2013년 23억원에 불과했던 단기 대여금이 2019년 2569억원으로 100배 이상 증가했다.

송 의원은 “신도시 공공택지 분양 과정에서 일부 건설사가 자회사들을 대거 동원해 편법으로 택지를 낙찰받아 간 것이 확인됐다”며 “공공사업의 취지를 심각히 훼손한 만큼 국토교통부가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고 조속히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러한 벌떼입찰 논란에 따라 정부가 공공택지 공급방식을 기존 추첨제가 아닌 평가제로 전환하고 사회적 기여도 등을 평가한다는 내용의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적용하면서 중견건설사에게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견·중소건설업계 사이에선 대형건설사를 상대로 규모 면에서 밀릴 뿐더러, 친환경 등 사회적 기여도에 대한 평가 조건 역시 갖추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이번 개정안이 벌떼입찰로 인해 꾸준히 제기된 제도 개선 필요성에 따른 후속 조치인 만큼, 중견건설사들 역시 자성의 기회로 삼고 품질로 승부를 봐야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제일건설이 주창하는 ‘공정한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고 대형건설사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실적·규모 등 외형 성장뿐만 아니라 품질 등 내실 기반을 더욱 잘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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