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정부가 건설사를 대상으로 공공택지 건설용지를 공급하는 입찰 제도(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 개정안)를 37년 만에 재정비한다. 

기존 추첨제에서 평가제로 바뀌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대형건설사와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중견·중소건설사의 볼멘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자업자득’이라는 자성과 함께 비판도 나온다. 입찰 형평성·가격 상승 방지 등을 이유로 추첨제를 유지해왔으나 최근 중견건설사를 중심으로 이른바 ‘벌떼 입찰(다수의 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에 참여)’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다만 새로 도입된 평가제 역시 독과점 등 우려와 허점이 존재해 정부가 제도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스락>이 새로 시행되는 공공택지 입찰제도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진단해봤다. 

뉴스락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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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찰가 국민 부담 막기 위해 ‘추첨제’로 시작

공공택지 입찰 추첨 제도는 지난 1984년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발효와 함께 도입됐다.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제13조의2에선, 판매시설용지 등 영리를 목적으로 사용될 택지,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특정시설용지(학교시설용지·의료시설용지 등), 공공기관 공급용 수의계약을 제외한 국민주택규모의 주택건설용지는 추첨의 방법으로 분양 또는 임대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책 사업의 일환이거나 기업의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면 가격 경쟁을 통한 경쟁 입찰이 가능하지만, 국민주택 공급을 위한 입찰을 경쟁 방식으로 할 경우 입찰가 상승으로 인한 원가 부담(분양가)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중견·중소건설사의 입장에서도 추첨제가 이점으로 작용했다. 기본 조건만 갖추면 상대적으로 몸집이 큰 대형건설사와 경쟁하지 않더라도 추첨을 통해 입찰을 따내 시공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1기 신도시 계획으로 당시 중견건설사이자 지역건설사였던 청구, 우방, 건영 등이 분당, 판교, 일산 등 수도권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또, 최근 10년간(2008~2018)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급한 473개 필지 중 호반건설 등 5개 중견건설사가 142개 필지(30%)를 낙찰 받아 몸집을 키웠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순위 12위를 기록, 대형건설사에 견줄 만큼 성장했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규제 강화로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사업이 위축된 가운데, 이러한 신도시 개발 등 공공택지사업 낙찰은 건설사 전체 수익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울러 대형건설사 중심의 성장이 아닌 중견건설사의 성장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아파트 선택의 폭을 넓혀 제공하고, 업계 내 선의의 경쟁 또는 견제로 주택 품질 상승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을 동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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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퍼컴퍼니 동원 ‘벌떼입찰’ 지적, 제도 개선 촉구

그러나 수년 전부터 공공택지 입찰 추첨제의 단점이 지적돼 왔다. 제도 허점을 이용한 입찰 방식 때문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공급 필지 중 30%를 낙찰 받은 중견건설사들의 비결은 ‘벌떼 입찰’이라고 지적한다.

벌떼 입찰은 하나의 건설사가 공공택지를 낙찰 받기 위해 다수의 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계열사 중에선 시공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른바 페이퍼컴퍼니가 대다수 존재한다.

송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10년간 LH 공급 필지 473개 중 9.3%에 해당하는 44개 필지를 낙찰 받았는데, 여기에 평균 11.5개의 계열사가 동원됐다. 전체 계열사 43개 중 최대 34개 계열사가 동원되기도 했다.

중흥건설 등 타 중견건설사들 역시 평균 20~30개의 건설사를 동원해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계열사 중에는 소속 임직원이 1명이거나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회사가 다수 존재했다.

건설사가 단기 대여금 등 형태로 계열사에 입찰준비금을 지원한 뒤, 계열사가 낙찰을 받으면 해당 건설사에 다시 전매하거나 소유권 이전, 시공계약 체결 등으로 넘기는 방식이다.

이러한 벌떼 입찰은 입찰 참가 자격의 낮은 진입 장벽과,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제13조3(택지의 전매행위 제한의 특례)의 특례가 악용된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기존 공공·민간 공동 택지개발사업 입찰 참가 자격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종합공사를 시공하는 업종(건축공사업 또는 토목건축공사업으로 한정)의 등록을 한 자에게 주어졌다.

공공사업인 만큼 소규모 건설사에게도 입찰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진입 장벽 자체가 낮았다.

여기서 낙찰 받은 택지는 원칙적으로 전매가 불가능했지만, 사업자 부도, 공급가 이하로 전매하는 경우, 신탁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등 불가피한 상황을 대비한 특례에 따라 예외적으로 전매 또는 이전 행위가 가능했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전매·이전에 대한 특례 조항을 구축할 때 계열관계에 있는 회사와의 거래를 막는 등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 또는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한 규제가 마련됐어야 했다”면서 “제도 허점을 파고 든 벌떼입찰 사례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송 의원이 2018년 이후 추가 조사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앞서 언급된 중견건설사들은 2019~2021년 사이에도 다수의 계열사를 동원해 LH가 공급한 필지 83개 중 30개를 낙찰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송 의원은 “지난 2019년 국정감사에서 벌떼입찰에 대한 지적이 나왔지만, 이후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벌떼 입찰 현상의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시공능력을 갖추지 못한 건설사가 낙찰을 받을 경우 품질 면에 있어 논란이 우려될 뿐만 아니라, 과도한 벌떼 입찰로 인해 기존 제도의 취지와 달리 특정 건설사가 독점하는 형태를 띄어 입주희망자들의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 37년 만의 개정, 나뉘는 평가 속 허점 여전…“꼼수 막아야”

공공택지 건설용지 공급 입찰 추첨 제도에 대한 허점은 수년 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최근 벌떼입찰 논란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된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공공택지공급제도 개선방안에 따른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3월 23일부터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개정안은 기존 입찰 방식을 추첨제에서 평가제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토지의 용도, 공급대상자, 토지가격의 안정성 등을 고려해 기존 추첨원칙에서 탈피하고 경쟁방식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아울러 민간분양용지에 건설되는 주택의 일부를 임대주택으로 건설하는 계획을 평가해 주택용지를 공급, 민간분양주택과 동일한 수준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에게도 공공개발사업 투자 기회를 제공해 건설사 등 소수가 공공개발사업으로 이익을 취하는 형태를 줄이는 방안 등을 담았다.

평가제에 따른 경쟁 입찰에서 정부는 건설사의 주택 품질, 임대주택 건설계획 등을 평가한다.

나아가 공공개발사업 이익공유 정도, 주거복지정책 참여도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수도 평가한다.

경쟁 입찰 물량을 제외한 일부 추첨 방식에서도 입찰 참가 건설사의 하자 판정 건수, 주민 만족도 등을 따지고, 친환경 설계 여부를 평가하는 등 페이퍼컴퍼니 참여 방지를 위해 문턱을 높였다.

이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다만 제도 허점에 대한 보완 및 변화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우선적으로 페이퍼컴퍼니의 입찰 참여를 방지하고, 국민의 주거 문제가 달린 공공택지 입찰 평가 기준을 정함으로써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건설사를 추려낼 수 있다는 장점이 꼽히고 있다.

아울러 중견·중소건설사 역시 ESG에 투자를 하게 됨으로써 사회적 가치의 동반 상승을 모색할 수도 있다.

반면, 제도 적용 당사자인 중견·중소건설사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갖춰야 할 자격이 많아져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 다시 중견·중소건설사에 대한 차별이 생기고, 이는 대형건설사 독과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 측은 “개정안에 따라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업체가 전체 주택사업자의 2~3% 밖에 안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비율은 줄어든 여지가 크다”면서 “결국 사실상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 역시 “입찰 참여 조건을 갖추지 못해 실적이 줄어든 중소건설사의 경우 ESG에 투자할 자금마저 갈수록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며 “택지규모에 따라 자격요건 등을 차등 적용하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도 자체의 허점도 지적되고 있다.

정작 전매 금지에 대한 특례가 크게 보완되지 않아 여전히 악용 우려를 남기고 있으며, 낙찰 기업이 시행을 맡고 모기업을 시공사로 선정하는 우회 방법 역시 아직까지 열려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경쟁 입찰 방식 도입도 중요하지만,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계열사 꼼수 전매, 꼼수 계약을 하는 사례를 엄벌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근본적으로는 페이퍼컴퍼니 적발에 적극 나서야 하며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원천적으로 책임을 물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 [뉴스락 미니인터뷰]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
 

"공공택지개발의 근본적인 전면 쇄신이 필요하다."

 

Q.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바뀐 공급기준 및 입찰 방식에 대한 의견은.

A. 강제 수용한 택지를 건설사에 매각하는 형태는 공기업·건설업계에 사실상 불로소득을 제공하는 모양새다. 이를 일부 건설사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한 벌떼입찰이 지속돼 왔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근본적으로 공공주택용지 민간매각을 중단하고, 전량 공공이 보유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어쩔 수 없이 민간매각을 해야 한다면 상업업무용지 등의 사례처럼 경쟁입찰을 해야 할 것이다.

개정안으로 경쟁입찰, 수의계약 등 공급기준을 다양화한다고 했지만, 추첨제나 수의계약제는 오히려 불법·편법 입·낙찰을 부추길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또, 경쟁입찰은 기본적으로 가격경쟁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만큼, 입찰 참여 건설사의 임대주택계획을 평가한다는 기준은 논리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공택지 임대주택 30년 임대나 영구 임대 등 토지를 팔지 않고 공공보유하는, 저렴한 임대가 공급돼야 한다.

이 같은 몇몇 허점들로 인해 이번 개정안이 벌떼입찰 등 불공정 입찰을 개선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다.

Q. 전매 제한 특례나 모기업 시공계약 체결 등 허점에 대한 지적도 나오는데.

A. 택지 전매 제한은 예외 없이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택지낙찰자가 여러 사유로 일정기간 동안 사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 당연히 정부가 환수하고 낙찰자에게 차후 일정기간 입찰제한 등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5년 공공택지 전매 금지가 도입됐음에도 신탁·프로젝트 금융투자(PFV) 방식으로 사업을 시행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전매를 허용하는 등 현행 전매 제한의 특례가 계열사를 동원한 벌떼입찰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Q. 문제의 근본 원인인 페이퍼컴퍼니 참여 방지를 위해서 어떤 보완이 필요할까.

A. 택지 매입 후(낙찰) 직접 시행하지 않고 전매하면 입찰 참가를 제한하는 등 규제를 엄격히 하고, 반드시 토지 매입 건설사의 직접시행, 직접시공을 의무화해야 한다.

Q. LH 사태와 일부 건설사 벌떼입찰 논란으로 공공주택사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떨어져 있다. 이들 이해관계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면.

A. 공공택지사업은 주거안정을 위해 국민들의 논과 밭, 임야 등을 수용해 추진하는 공공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땅 장사, 바가지 분양 등 문제로 공기업과 일부 건설사, 투기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면서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집값 안정에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부당이득을 취하기 위한 벌떼입찰, 분양 원가 부풀리기 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 만큼 공공택지개발의 근본적인 전면 쇄신이 필요하다.

우선 토지를 건설사에 매각하는 것을 중단하고, 토지는 보유하되 건물만 분양하거나 장기임대하는 공공주택으로 전량 공급해야 하며, 원가 공개를 거부해 분양가를 부풀려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도록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해 거품 없는 공공주택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그간 일부 건설사들도 브로커 역할로 쉽게 부당이득을 취해 왔다. 지금이라도 건설기술 개발, 직접시공능력 탑재 등을 통해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건전한 공공주택사업 발전에 이바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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