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가상화폐(암호화폐)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거세다. 코인으로 대변되는 가상화폐 시장은 세계 각국 정부의 규제 방침에도 불구하고 규모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당초 우리 정부도 가상화폐는 금융투자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보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최근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신고 등을 통해 제도권 내 진입한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서는 보호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선 듯한 모습이다.   

이처럼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행태에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불만에 찬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일반 투자자의 가상화폐 투자는 막으면서 정작 정부 산하 공공기관들의 투자 행태에 대해서는 먼 산 불구경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야권에서는 “정부가 가상자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같은 모순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며 정부를 향한 비난의 수위를 높인다.

무엇보다 가상화폐의 제도권 진입을 통해 투명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려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산하 공공기관들이 '혈세'로 투자한 가상화폐를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하는 담당 주무기관은 부재여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뉴스락>이 정부 공공기관의 가상화폐 투자 실태와 함께 이를 둘러싼 정치권 목소리를 들어봤다. 

사진 픽사베이 제공 [뉴스락]
사진 픽사베이 제공 [뉴스락]
◆“금융투자 자산 아냐”라던 정부…가상화폐 펀드에 수백억원 투자

당초 정부는 가상화폐를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4월 22일 국회에서 가상화폐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니고 가격이 너무 급변동해 위험하다는 것을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싶다”라며 “많이 투자한다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가상자산을 자본시장육성법에서 정한 금융투자자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위의 의견”이라며 “그래서 자본법상 규제나 보호의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하며 은 위원장의 의견에 힘을 실어 줬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기조와는 정부 공공기관들이 가상화폐 관련 펀드에 간접적으로 투자한 금액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기관별 투자금액을 취합한 결과 5개 공공기관에서만 총 500억원 규모의 가상화폐 관련 투자가 이뤄졌다. 

윤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가 343억원으로 가장 많이 가상화폐에 투자를 하고 있었으며, 뒤를 이어 산업은행 117억 7000만원, 국민연금공단 34억 6600만원, 우정사업본부 4억 9000만원, 중소기업은행 1억 8900만원 순이었다. 

이들 기관은 대부분 직접 투자가 아닌 펀드 등을 통한 간접 투자 행태로 이뤄졌다. 해당 펀드들은 업비트, 빗썸 등 가상화폐 거래소에 투자됐다. 

방식은 정부 공공기관이 모태출자펀드에 자금을 출자하면, 모태출자펀드가 각종 벤처펀드를 만들어 이를 벤처캐피탈 회사가 운용하는 구조다.

이 중 투자 금액이 가장 큰 중기부의 경우를 살펴보면, 투자시기 및 연도별 액수는 2017년 193억원, 2018년 28억원, 2019년 92억원, 2020년 6억원이었으며 올해는 지난 3월까지 24억원이 투자됐다.

중기부가 출자한 자금은 2017년부터 올해 3월까지 모태출자펀드에서 4개 기업에, 총 343억원이 투자됐으며 모태출자펀드 투자, 관리 등 업무는 관련법에 따라 벤처캐피탈(창업투자회사 등)인 업무진행조합원이 진행했다.

다만, 중기부는 출자 운용된 펀드의 손이익 등 이해득실과 관련해서는 관련법상 외부에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어디와 거래했으며 어떻게 수익을 얻었고, 누가 투자를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금융실명법상 공개를 못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중기부 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 역시 같은 태도를 보였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관련 내용은 기본적으로 금융정보 내용이기 때문에 외부에 오픈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아직은 수익을 논하기는 이르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해당 건은 간접투자 출자한 펀드의 운용사가 비상장기업에 지분 투자를 한 건”이라며 “비상장주식이기 때문에 회수가 되지 않으면 수익률을 나타낼 수가 없으며, 회수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수익률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기운용본부처럼 국민 혈세로 투자되는 만큼 공공기관의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서 규모와 이해득실 등을 일정부분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7년 1월~2021년 3월까지 기관별 가상화폐 관련 간접투자한 금액의 규모. 자료 윤창현 의원실 제공 [뉴스락 편집]
2017년 1월~2021년 3월까지 기관별 가상화폐 관련 간접투자한 금액의 규모. 자료 윤창현 의원실 제공 [뉴스락 편집]
◆야권, ‘내로남불 끝판왕’…“가상자산 인식 바꾸지 않으면 모순 반복될 것”

특히 야권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행태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며 날을 세운다.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지난달 6일 논평에서 “내로남불의 끝판왕임을 여실히 증명한 정부”라며 맹비난했다. 

이날 안 대변인은 “가상화폐는 금융상품이나 법정화폐와 같은 자산이 될 수 없다던 정부가 가상화폐 관련 상품에 수백억원 규모의 투자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정작 자신들은 가상화폐 시장에서 기웃거리며 투자한 상황에서 국민에게는 투자자 보호 따윈 없다며 시장을 온통 다 흔들어 놓은 최근의 일은 내로남불의 역대급 사례로 손꼽힐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상화폐는 금융자산이 아닌 그저 ‘도박’이라는 정부의 인식은 사회에 여러 혼란 야기하고 수많은 피해자만 양산시켰다”며 “민생 경제에 탈출구가 없어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든 젊은이들을 투기꾼으로 몰아 위기의식을 조장한 정부도 문제이나 이와 관계없이 전혀 모순된 행보를 보인 공공기관의 투자는 국민들께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되물었다.

안 대변인은 “정부는 무지를 엄포로만 가릴 것이 아니라 가상화폐에 대한 명확한 미래 시각을 예측하고 이를 대비해 제도화시켜야 한다”며 “이미 수십 조로 커져버린 시장에 기 참여한 국민들을 어찌 보호해야 할 것인지 전략적인 방안 등을 즉시 마련함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라고 지적했다.

같은당 윤창현 의원 역시 “암호화폐가 ‘도박’이라면 공공기관의 거래소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며 “정부가 가상자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같은 모순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주무부처는 ‘금융위’로?…입법조사처, “컨트롤 타워 조속히 마련해야”

문제는 또 있다. 

가상화폐 시장 확대와 함께 투자자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정부는 주무부처조차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것.

관련 당정청 논의도 최근에서야 처음으로 이뤄졌다. 지난달 16일 비공개로 진행된 당정청 논의에서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부겸 국무총리,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연이어 발의되고 있는 가상화폐 관련 법안을 통해 주무부처를 ‘금융위원회’로 두고 있는 분위기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대표 발의한 ‘가상자산 거래에 관한 법률안’은 가상자산거래에 대한 정부의 감독역할을 규정했다.

해당 법안에는 금융감독원이 사업자에 대해 명령의 준수 여부를 감독하고 금융위원회는 이용자에게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경우 시정명령, 주의, 경고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금융위원회와 관계 중앙행정기관이 정책협의회를 구성하고 실태조사를 할 수 있는 근거 조항도 포함됐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 또한, 전자금융거래법에 △가상자산과 가상자산사업자의 정의 △가산자산 발행 시 금융위 심사와 승인 △가상자산사업자 불법행위 규제와 의무부과 △가상자산예치금 예치 의무 부과로 피해보상책 마련 △가상자산사업자의 해킹사고와 전산 마비 등에 대한 배상 책임 부여 등의 내용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준비 중이다.

정희용 의원은 “가상화폐 관련 논의는 2018년부터 이어져 왔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가상화폐 관련 주무부처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고 가상화폐 투자자에 대한 해킹이나 투자사기에 대한 보호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법안 발의를 통해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와 규정을 신설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2030세대의 혼란과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가상자산과 관련해 컨트롤 타워 구축 등을 통해 가상자산 투기 및 범죄 피해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10일 ‘가상자산 관련 투기 억제 및 범죄 피해자 보호 방안’ 보고서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는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가 불분명하고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기 때문에 가상자산의 성격과 위험성을 명확히 인지한 ‘투자’가 어렵고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도 미흡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의 기존 인식은 가상자산을 화폐, 통화나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내 핀테크 현황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산자산을 포함시킨 바 있다.

타 국가의 경우 미국은 연방차원에서 가상자산이 증권의 정의를 충족할 경우 증권 감독 규율을 적용하고 있고 일본과 독일의 경우에도 법률상 가상자산이 금융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컨트롤 타워를 조속히 마련해 체계적인 규율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정부는 2017년 이후, 금융위 등 10개 부처가 협의체 형태로 공동참여하면서 국무조정실이 협의체를 주재하는 방식으로 가상자산에 대응해왔다”며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에 관한 정부의 공식입장이 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용하는 부처 간 ‘칸막이’ 현상으로 인해 가상자산 거래의 정보 투명성 확보, 거래피해 방지 및 구제방안 등에 관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특히, 가상화폐 등 가상자산 거래는 자금세탁 방지, 개인정보보호, 과세,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제약 등 여러부처의 소관 업무가 중첩되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명확한 규제보호·대상 및 내용을 시장에 전달하기 위해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가 아닌 부처 간 조율의 체계화를 위한 정부 컨트롤타워의 구축 또는 주무부처의 지정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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