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호남지역을 거점으로 재계 44위까지 도약한 호반그룹(회장 김상열)이 국내 최초 전선회사 대한전선을 인수해 건설업계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에서도 연일 ‘뜨거운 감자’다.

호반그룹은 각종 M&A(기업인수합병)와 계열사간 분할·합병 등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지만, 서울신문(매각)과 전자신문(예정), 대아청과, 삼성금거래소 정도를 제외하면 그간의 M&A는 본업인 건설 분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행보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자산총액 10조원을 넘겨 올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호반그룹은, 자산총액 1조1994억원의 ‘M&A 대어’ 대한전선 인수를 통해 사업 영역을 더욱 확장하려 하고 있다.

왜 대한전선이었을까. 그리고 이번 M&A는 단순히 사업 영역 확장에만 있는 것일까. <뉴스락>이 들여다 봤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뉴스락 편집]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뉴스락 편집]
◆ M&A로 성장한 호반그룹, ‘대어’ 대한전선 품다

호반그룹은 크게 호반건설, 호반프라퍼티, 호반산업을 중심으로 건설업을 주 사업으로 영위하고, 스카이리빙, 호반주택, 티에스주택, 티에스개발, 티에스건설 등 계열사·자회사가 떠받치는 형태다.

1997년 IMF(외환위기) 사태 당시 지역 건설사들이 헐값에 내놓은 부동산을 창업주 김상열 회장이 사들여 ‘호반리젠시빌’이라는 임대아파트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수의 계열사를 통해 주요 사업인 건설업을 영위하면서 사세를 키웠고, 2017년 준대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 지정 전후로 꾸준히 M&A를 진행해 왔다. 호반그룹의 성장에는 M&A가 늘 함께했다.

2018년에는 리솜리조트(現 호반호텔&리조트)를 인수했으며, 이듬해 덕평CC(現 H1클럽)와 서서울CC 등 국내 골프장을 인수해 레저부문 확장을 모색했다.

넉넉한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국내 규모 있는 M&A 매물이 등장할 때마다 유력 인수후보로 거론돼 왔지만, 그 대상은 (당시)금호산업, 대우건설 등 대부분 건설·부동산업과 관련돼 있었다.

실제 실행된 이종업계 M&A도 2019년 서울신문(19.4%)과, 같은 해 농산물 유통업체 대아청과(51%), 삼성금거래소(43%), 최근 진행 중인 전자신문 정도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전선·케이블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M&A 대어’ 대한전선 인수에 나선 것.

1955년 설립된 대한전선은 국내 최초의 종합전선회사로, 정확히는 1937년 설립된 조선제련 시흥전선제작소를 1955년 고(故) 설경동 회장이 인수해 사명을 변경하면서 시작됐다.

전력 케이블과 광통신 케이블을 토대로 국내 전선 시장을 점유하며 2000년대 초반까지 업계 1위 및 재계 4위까지 성장했으나,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따른 출혈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사세가 기울어 이듬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2013년 설경동 회장의 손자 설윤석 사장 등 창업주 일가가 경영권을 포기하고 2015년부터 사모펀드 프라이빗에쿼티(IMM PE)의 손에 운영돼 왔다.

IMM PE 체제에서 대한전선은 부실 자산 정리, 재무구조 개선과 주력 상품인 케이블 설비 및 R&D 확대에 집중했다. 영국, 덴마크 등 유럽 주요국가와 미국, 중동 등에서 수주를 이어가며 글로벌 점유율도 높였다.

그 결과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인 매출 1조6000억원, 영업이익 566억원을 달성했다. IMM PE는 대한전선의 실적 안정화를 이뤄낸 직후인 지난 3월, 보유 지분 40%(최대주주)를 2518억원에 호반그룹 계열사 호반산업에 매각했다.

◆ 김상열 회장의 의지 “신사업 확장”, 조직 개편으로 가속

M&A 인수후보 ‘단골손님’이었던 호반그룹이 대한전선을 실제로 인수하면서 시장은 인수 목적에 관심과 기대를 보이고 있다.

건설과 케이블 산업이 신도시 등에서 사업 시너지를 기대할 순 있지만 그 비중이 낮은데다가, 이미 전선·케이블 등 보급률이 높은 국내 주택시장에선 직접적인 협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 때문이다.

호반그룹은 지난달 25일 대한전선 인수를 공식 발표하는 ‘뉴 대한 인 호반(New TAIHAN in HOBAN)’ 행사를 열고, “대한전선이 케이블과 에너지, 전력 분야에서 강자로 우뚝 솟을 수 있도록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전선의 나형균 사장 역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확대, 생산 현지화 등을 통해 본업인 케이블 사업에서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광통신 등 유망 연관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선 당장의 시너지보다 사업 영역 확장에 무게를 둔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케이블 관련 R&D로는 글로벌 톱 티어 수준인 대한전선의 기술력 등을 끌어올려, 대한전선의 매출 비중이 높은 해외 시장에 향후 호반그룹이 다양한 형태로 함께 진출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대한전선은 피인수와 동시에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해상풍력사업단과 전략제품사업단 등 부서를 신설하고 기존 조직을 에너지 국내·국외 부문으로 재편했으며, 사업 목적에 주택건설업과 부동산개발업 등을 추가하면서 시너지도 예고했다.

사업 영역 확장은 호반그룹의 창업주 김상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행보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전문경영인 김선규 총괄회장을 임명하고, 본인은 신사업 확대를 위한 수주 및 M&A를 전담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 계열분리 가능성도…승계·내부거래 이슈 해소할 복안?

일각에선 이번 M&A가 사업 확장 외 경영적 측면에서 여러 방면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오래 전부터 내부 합병 및 분할을 통해 승계 작업을 이어온 김상열 회장은 2세 경영의 활로를 일찌감치 호반건설, 호반프라퍼티, 호반산업으로 나눠 놓았다.

주력 회사이자 주택사업을 맡은 호반건설은 지분 54.73%로 최대주주인 장남 김대헌 호반건설 기획담당사장이, 리조트부문을 맡은 호반프라퍼티는 지분 30.97%로 개인 최대주주인 장녀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부사장이, 토목사업을 맡은 호반산업은 지분 41.99%로 개인 최대주주인 차남 김민성 호반건설 상무가 향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지분구조가 복잡한 호반건설과, 사업 분야가 다른 호반프라퍼티를 제외하고 차남 지분율이 높은 호반산업이 대한전선을 품자 업계 내에선 계열분리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호반산업은 호반건설이 보유한 지분 11.4%, 호반프라퍼티가 보유한 4.7%만 정리하면 단기간에 계열분리가 가능하다.

김상열 회장 입장으로선 계열분리를 통한 승계 작업과 함께 내부거래에 대한 고민도 일부 해결할 수 있게 된다.

호반건설의 내부거래 비중 현황을 보면 2019년 15.8%에서 지난해 19.4%로 상승했다. 오는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안(규제대상을 상장·비상장 모두 총수일가 지분 20%, 총수일가가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도 포함)이 시행되면 호반그룹은 지난해 기준 규제대상 계열사가 6곳에서 26곳으로 폭증해 내부거래에 대한 감시가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특히 호반산업 역시 지난해 기준 내부거래로 올린 매출액만 2187억원으로 2019년 1206억원 대비 81.4% 증가했다. 내부거래 비중 역시 2019년 22.0%에서 작년 26.1%로 상승했다.

때문에 업계에선 호반그룹이 호반산업 계열분리를 통해 양 집단 간의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려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아가 대한전선 인수의 여파로 올해 자산총액 10조원을 넘겨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상호출자 및 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등)된 만큼 몸집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자산총액 약 2조6000억원의 호반산업이 1조2000억원 규모의 대한전선을 품어 3조8000억원의 규모로 커진 만큼, 호반그룹 입장에선 이들을 계열분리하면 약 6~7조원 규모로 몸집이 줄어 오히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한전선 인수를 통해 자산총액 10조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호반그룹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으로 전망되는 리스크들을 해소해야 할 시점이 올 것”이라면서 “한 차례 기업구조 정리를 한 후 이번 M&A와 유사한 사업 영역 확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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