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단연 점심시간. 학생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오늘의 메뉴.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식판을 들고 만났던 급식 아주머니들이 근무하는 환경이 그렇게 열악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2018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중학교 급식실 조리사가 폐암으로 숨졌다. 그리고 2년 6개월 뒤 산재 승인을 받았다. 2020년 대한민국 최초로 급식실 조리사 중 산재 승인을 받은 사람이 생긴 것이다.

급식실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2020년 최초 산재 승인 이후로 1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많은 급식실 조리사들이 직업성 암으로 산재 신청을 하고 있다. 갑자기 급식실 환경이 안 좋아진 것일까.

<뉴스락>은 급식실 조리사들의 산재 신청 배경과 현실을 알기 위해 노무법인 권익 소속 최용혁 노무사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곧 리모델링 공사 하니 환기시설 망가졌어도 참자

최 노무사는 최근 폐암 산재 승인을 받은 충주의 조리원 H씨의 사례를 맡았다.

H씨는 충북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약 19년간 조리원 업무를 해왔다.

노무법인 권익에 따르면, H씨가 근무하던 급식실은 2015년 경 환기 시설이 고장 났고 2019년까지 환기시설은 그대로 방치됐다. 이런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H씨는 2019년 폐암 진단을 받았고 산재 신청 7개월 만에 전국 두 번째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첫 번째 사례와 H씨의 사례 모두 급식실 환기장치가 고장 난 상태로 1년 넘게 방치됐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튀김·볶음·구이요리 조리과정에서 조리흄이 배출돼 폐암 발생 위험도를 높인다고 발표했고 이미 수년전부터 대한폐암학회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요리 중 발생하는 연기가 폐암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왜 고장 난 환기시설을 수리하지 않은 것일까.

최 노무사는 “학교 측은 환기 시설이 고장 나서 이미 고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출서를 확인해보니 대형후드는 고친 적이 없고 2만원 소형 환풍기를 고친 기록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

또한, 급식실 조리원의 환기 시설 수리 요구에 대해서 학교 측은 ‘조금 있으면 리모델링 공사 하니 참자’라며 수리를 미뤄온 것이라고 했다.

최 노무사는 “조리노동자는 법 대상자에서 예외였다. 최근까지도 조리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이 되지 않았다”며 “법이 규정하고 있지 않은 의무사항에 대해 더 나아가서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전국 학교 급식실 중 안전보건공단의 지침에 맞게 운영하는 곳은 많이 없다”고 말했다.

산안법 안전보건관리체제에 따르면 근로자가 50인 이상인 사업장은 안전관리책임자를 두게 돼있는데 학교 급식실의 경우 대부분 10명 이하로 운영하기 때문에 안전보건관리체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또한 산안법 제3장 26조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에 필요한 교육을 근로자 채용 시 하게 돼있다. 하지만 교육 서비스업 중 초등,중등,고등 교육기관의 조리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산안법 제3장 안전보건교육에서 제외돼 급식실 조리원들은 추후에 폐암이 발병하더라도 근무 환경이 원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최 노무사는 “그동안 조리원 분들에게 폐암이 급식실 환경 탓이라는 것을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신청한다 해도 승인 될지 몰랐기 때문에 신청 자체를 안했었다”며 그동안 급식실 조리원 중 산재 신청 사례가 없었다는 부분을 설명했다.

또한 이번 H씨 사례에 대해서 “이 건도 고민을 많이 하고 하신 거다. 상담만 하시고 승인 받을 자신이 없어서 안하시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초 건도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2020년 1월 이전까지는 적용 대상이 아니었던 급식실 조리원을 대상으로 산안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 노무사는 “법 적용이 늦어 현재까지도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라며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직업성암 산재승인율 0.06%, 해외에 비해 66배 낮은 비율"

승인까지 2년 6개월 걸렸던 첫 번째 승인 사례에 비해 H씨의 경우 7개월로 승인 기간이 감축됐다.

최 노무사는 “업무상 질병은 산재 신청을 하면 직업환경연구원이나 자문기관을 통해서 역학조사를 하는데 보통 역학조사에 들어가면 1~2년 걸린다. 이번 케이스는 이전 사례와 비슷해 역학조사가 축소되면서 기본적인 재해 조사만 진행됐던 경우다”라고 설명했다.

산재는 근무 중 신체 일부분이 다친 업무상 부상과 질병을 유발하는 근무환경에 노출되는 업무상 질병, 두 가지로 나뉜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근무 중 피해 입은 경우이지만, 산재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기까지는 차이가 있다.

H씨는 직업성 폐암으로, 업무상 질병에 해당했다. 때문에 인과관계를 밝히는 역학조사를 진행했다면 1~2년 시간이 걸렸겠지만 앞선 사례와 흡사했기 때문에 역학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업무상 부상은 산재 신청 시 인과관계를 밝히기 수월하지만, 업무상 질병은 부상에 비해 진단일이 늦고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노동 강도, 환경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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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5~10년 잠복기간이 있어서 증거를 찾아내는게 어려워"

최 노무사는 “질병은 5~10년 잠복기간이 있어서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이 사례도 어려웠던 것이 학교 측에서 중간에 리모델링을 했다. 이처럼 시·공간의 변화로 인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업무상 질병이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에 시간이 지연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근로복지공단이 발표한 ‘2020년 업무상질병 심의 및 판정 업무 현황’에 따르면 업무상질병 산재처리에 소요된 기간은 평균 172.4일이었다. 직업성 암은 평균 334.5일이 소요됐다.

산재 승인을 느리게 한다고 해서 승인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신규 암 환자 중 직업성 암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비율은 0.06%. 반면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암 환자 중 직업성 암으로 추정하는 비율은 4%. 우리나라 직업성 암 산재 승인의 66배가 넘어가는 수치다.

최 노무사는 “우리나라의 업무상질병 산재 승인이 지연되고 승인률 자체가 해외에 비해 낮은 이유는 산재 승인 절차들이 많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기조가 있어 산재 승인을 까다롭게 본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유예요인은 제품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이다. 시간이 지나서 이게 정말 유예했다고 알게 되는 것인데 그때가 되면 늦는다. 우리나라는 딱 이것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승인 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산재에 대한 기조를 지적했다.

산재 신청을 한 생계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산재 승인이 늦어지면 치료비를 지불하지 못해 일부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부담이 가중돼 전국 노조는 산재보험 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무상질병 판정 처리기간에 대한 대책으로 추정의 원칙 적용 대상 확대와 선보상후정산제도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추정의 원칙은 업무 기간과 노출량 등에 대한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역학조사를 하지 않고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추정의 원칙은 2017년 산재 발생빈도가 높은 6대 근골격계질환에 도입됐다.

최용혁 노무사. 사진 김재민 기자

"우리나라는 산재 승인률 자체가 낮아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

최 노무사는 학교 급식실 또한 추정의 원칙에 해당될 가능성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추정 잘 안하려고 한다. 지금 두 건 갖고는 추정의 원칙에 해당하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또한 선보상후정산제도에 대해서는 “사고가 발생하는 근로자들은 거의 생계 노동자인데 질병은 산재 승인까지 6개월~2년, 길면 10년까지 걸린다. 근로자의 복지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측면에서는 선보상 후정산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재 승인률 자체가 낮아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일단은 너무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업무상질병의 산재 인정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019년 업무상질병 인정율은 64.6%로 2018년에 비해 증가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17년 추정의 원칙 도입 이후 업무상질병 인정율이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율이 95.8%에 달하는 업무상사고에 비하면 여전히 인정율이 낮은 수준이며 신규 암 환자 중 직업성 암으로 추정하는 비율은 0.06%로, 우리나라의 업무상질병에 대한 인지도는 낮은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 노무사는 “이번 사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급식실 조리원 분들이 업무상질병에 대한 가능성을 알게 돼서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첫 번째 사례는 특수성이지만 두 번째부터는 보편성이기 때문에 몰라서 못했던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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