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임기 5년 동안 문재인 정부의 수많은 정책 중에서도 고용 부문은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특히 장애인 부문이 그랬다. 장애인 고용률은 문 정부 5년 동안 매년 꾸준히 상승했다.

하지만 정부 산하 공기업 영역을 제외한 민간기업의 장애 고용률은 여전히 '의무 고용률'을 하회했다. 

이 중에서도 장애인이 금융사에 취업하는 건 코끼리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만큼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권이 ESG 경영을 강조하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뉴스락>이 문 정부 5년간 금융권의 '장애인 고용' 실태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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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공모전 수상작 '함께 열어요(송재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뉴스락]

금융권, '장애인 의무고용' 회피...126곳, 516억원 고용부담금 납부

금융권 대다수 민간기업들은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장애인 고용 의무를 회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장애인 의무고용 미이행 민간기업 고용부담금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장애인 의무 고용을 지키지 않은 은행·카드사·보험사·증권사는 126곳으로 총 516억원을 부과했다.

업권별로 보면 은행이 298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보험사가 131억원 △증권사 66억원 △카드사 21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장애인 의무 고용을 미이행한 기관 및 기업은 장애인고용법 등에 따라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르면, 50인 이상의 상시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상시근로자의 3.1%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고용부담금은 의무고용률에 따라 고용할 장애인 총수에서 상시 고용하고 있는 장애인 수를 뺀 수에 고용수준별 적용 부담기초액을 곱한 금액의 연간 합계액이다.

고용수준별 부담기초액 및 가산율에 따라 장애인을 한명도 고용하지 않는 경우 기초부담액으로 해당 연도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부담금은 장려금 지급 등 장애인 고용 촉진을 위한 각종 사업에 쓰인다.

뿐만 아니라 일부 기업은 장애인 고용 의무를 상습적으로 미이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장애인 고용 의무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장애인 고용 실적이 저조한 국가·지자체 및 공공기관, 민간기업의 명단을 공표한다. 장애인 고용률이 의무고용률의 50%를 넘기지 못한 기관과 기업이 이에 해당된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르면, 정부는 매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의 민간기업 중 장애인 고용의무를 현저히 불이행한 기관 및 기업의 명단을 공표해야 한다.

<뉴스락>이 최근 4년(2017~2020년)간 '장애인 고용 저조기업 및 기관 명단'을 분석한 결과, 명단에 가장 많은 기업을 올린 금융사는 보험사로 44곳이었다. △은행이 33곳 △증권사 27곳 △카드사 2곳 순이었다.

이 중에서도 4년 동안 세 차례 이상 명단에 포함된 금융사는 20곳이었는데, 보험사가 9곳으로 가장 많았고 은행과 증권사가 각각 7곳과 4곳으로 조사됐다.

보험권부터 살펴보면, 코리안리와 동양생명, 신한생명(현 신한라이프)이 4년 연속 장애인 고용의무를 지키는 데 소홀했다.

코리안리는 보험사가 인수한 계약의 일부를 다른 보험사에 인수시키는 전업 재보험사다.

코리안리는 2019년 말 기준 상시근로자가 359명이고 11명을 장애인 직원으로 고용해야 하지만 4년간 단 한 번도 이행하지 않았다.

외국계 생명보험사인 동양생명은 같은 기간 장애인 근로자 30명(상시근로자가 979명)을 고용해야 하지만, 6명을 고용해 고용률이 0.61%에 그쳤다. 이러한 고용률은 2016년 1.21%에서 2017년 0.92%, 2018년 0.69%로 계속해서 하락했다.

신한라이프의 전신인 신한생명은 같은 기간 38명(상시근로자 38명)을 장애인 근로자로 뽑아야 한다. 하지만 10명을 고용해 고용률 0.80%를 기록했다. 이는 의무 고용률 3.1%의 4분의 1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합작사인 오렌지라이프도 같은 기간 0.4%의 장애인 고용률을 보이며 명단에 올랐다.

이 밖에도 지난 4년간 3번 이상 이름을 올린 보험사는 외국계 보험사인 메트라이프생명·AIG손해보험·ABL생명과 KB생명, 미래에셋생명, GA코리아 등 6곳에 달했다.

특히 미래에셋생명은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대기업임에도 지속적으로 장애인 고용 의무 비율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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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고용노동부 및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뉴스락 편집]

금융권의 변명?..."장애인 고용, 금융업 특성상 한계 있어"

은행권에서도 외국계 은행들이 대체로 장애인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의 경우 홍콩상하이은행, OK저축은행, 씨티은행, SBI저축은행 등이 최근 4년 동안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명단에 올랐다. 

홍콩상하이은행은 2019년 말 기준 상시근로자가 584명이다. 이 중 18명을 장애인 직원으로 고용해야 하지만 고작 1명을 고용하는데 그쳐 고용률이 0.17%에 불과했다.

씨티은행은 같은 기간 106명(상시근로자가 3422명)의 장애인 근로자를 고용해야 하지만 16명을 고용해 고용률 0.47%를 기록했다.

제 2금융권인 OK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 애큐온저축은행도 낮은 장애인 고용률을 보였다.

OK저축은행은 2019년 말 기준 35명(상시근로자가 1149명)을 장애인 근로자로 고용해야 하는데 5명을 고용해 고용률 0.44%를 나타냈고, SBI저축은행도 같은 기간 16명(상시근로자가 521명)의 의무 고용 인원 중 3명을 뽑아 고용률이 0.58%에 그쳤다.

애큐온저축은행은 지난 2016년 HK저축은행 시절부터 최근 4년간 명단에 포함됐다.

애큐온저축은행은 2019년 말 기준 상시근로자가 381명이고 장애인 근로자 11명을 고용해야 하지만, 1명을 고용해 고용률 0.26%를 기록했다. HK저축은행 시절 있던 3명 중 2명이 나가면서 고용률이 대폭 줄었다.

이 외에도 외국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4년 동안 3번 이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증권업권에서는 교보증권이 4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장애인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교보증권은 2019년 말 기준 상시근로자가 923명이고 장애인 근로자 28명을 뽑아야 하지만, 5명을 고용해 고용률이 0.54%에 불과했다.

특히 교보증권은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 계열사로 10년 연속 공표 대상에 포함됐다.

3년 연속 이름을 올린 증권사는 하이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등 3곳이었다.

금융사들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금융업의 특성상 단순 직무가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을 고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서 명시하는 장애인의 기업 채용 시 우대 정책에 따라 매년 공채 및 수시 채용 시 장애인을 우대하면서 채용 전형을 진행했다”며 “‘재보험’이라는 특수 업종을 영위하는 금융사인 점과 업무 또한 일반 기업에 비해 전문성과 특수성이 요구돼, 해당 직무에서 업무 수행이 가능한 인력에 대해서만 채용이 가능한 점 때문에 부득이하게 장애인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장애인고용공단의 도움을 받아 이달 장애인 1명을 채용해 사무지원 등 직무에서 인력을 활용 중”이라며 “공단으로부터 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직무에 대해 컨설팅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한라이프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채용 시 장애인에 대한 가점을 추가로 부여하며 진행해 왔지만 직무에 적합한 채용이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어 관계자는 “채용된 직원은 대부분 본사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며 “본사 근무 후 지점에 순환 배치된 직원도 일부 있다”고 덧붙였다.

답변을 피하거나 익명을 요청하는 기업도 있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노코멘트하겠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업무 특성상 실수가 용납되지 않고 고령층을 상대해야 할 때도 있다”며 “제조업처럼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게 아니고, 단순하다 하더라도 돈과 연관돼 있어 의사소통이나 인지능력이 떨어질 경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관계자는 “현장 영업을 할 때도 많아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직무 수행이 어렵다”며 “채용된 직원은 본사나 백오피스에서 고난이도 금융업이 아닌 직원들을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교보증권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금융사 중에서도 증권사는 특히 전문성이 요구된다”며 “영업 시 수시로 고객을 만나야 하고 활동 영역이 넓어 거동이 불편할 경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장애인 채용 시 우대사항을 적용하고 있고 장애인표준사업장의 서비스나 상품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고용에 대한 의지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명 결여"

이처럼 전 금융권에서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으로 장애인 채용을 대신하려는 것은 물론, 상습적으로 고용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자주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송홍석 고용노동부 통합고용정책국장은 “장애인 고용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공표되지 않도록 제도가 운영되고 있음에도, 명단이 공표됐다는 것은 장애인 고용에 대한 의지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명이 결여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송 국장은 “장애인 고용이 우수한 기관·기업에 대한 지원은 확대하되, 장애인 고용이 저조한 기관·기업에게는 제재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명단 공표는 갑작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매년 1월 고용노동부가 장애인 의무 고용 현황을 조사해 의무고용률 미달 기관을 확인·분석하고, 5월에 공표 대상 기업에게 사전 예고를 한다.

사전 예고 후 6개월 동안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설명회·간담회, 통합고용지원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장애인을 고용토록 조치하는데, 11월까지 신규 채용이나 구인 진행 등 장애인 고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 곳은 공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권에 불고 있는 ESG 바람과는 상반된 모습이라고 전문가는 지적했다.

ESG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말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요소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 역할을 하는 금융권에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상용 보험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ESG 경영의 사회 부분에 해당하는 장애인 고용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과 사회적 공헌과 관련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며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경영활동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 실천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고용시장과 장애인 고용시장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장애인 경제활동 인구가 비장애인에 비해 적은 편이고 장애인 복지대책 등으로 고용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우리나라 장애인 출현율은 5.4%이지만 의무고용율은 3.1%”라며 “금융권과 같이 일정한 역량이 필요한 자리는 지원 자체가 미달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금융사가 업무에 적합한 장애인 인재를 찾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장애가 심하지 않으면서 스펙을 갖춘 지원자는 오히려 장애를 숨기고 지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고 스펙이 상위 20~30%인 지원자는 스스로 장애를 숨기고 취업을 한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금융권에 취업할 역량이 부족한 지원자가 ‘장애’를 스펙으로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금융사는 기존 직무를 쪼게거나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서 장애인 채용을 진행하는데, 통상 사무지원 등 보조적인 업무에 해당된다”며 “금융권에 취업하기 힘든 스펙인 경우 장애인 의무고용에 따른 ‘장애인 고용할당제’를 통해 입사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공단에서 진행하는 맞춤 훈련 혹은 직업능력개발원에서 정보기술(IT) 직업 훈련을 통해 금융사에 입사한다고 관계자는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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