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이라면)늦게 전화하셨군요. 현재 담당자가 부재중이라서 연락처를 남기시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정태영 부회장.

[뉴스락] 지난달 중순, 한 영업 간부의 몰카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 현대라이프생명(대표이사 이재원) 홍보실 관계자는 다소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현대라이프는 2011년 10월 현대차그룹이 녹십자그룹 계열사인 녹십자생명(전신 대신생명) 지분을 인수한 후 이듬해 5월 현대라이프생명보험으로 사명 변경했다. 현재 최대주주는 현대모비스, 현대커머셜 등 현대차그룹 주요계열사가 총 51%를 보유하고 있으며, 2대 주주는 대만 푸본생명이 48.62%를 보유하고 있다.

◇‘아낌없는 지원’에도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현대라이프

현대라이프는 현대차그룹에 인수되기 전부터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카드(캐피탈)-현대차투자증권(증권)-현대라이프(보험)로 이어지는 금융 계통 구도를 완벽하게 구축하려고 계획했지만, 이미 부진의 늪에 깊게 빠진 현대라이프를 ‘금융 초보’인 현대차가 건져 올리기는 녹록치 않았다.

더구나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는 정부의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 제재 강화에 따른 내부 거래 비중이 줄고,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인한 동종업계 경쟁심화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선방을 해온 현대카드·캐피탈마저 실적 하락으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 외, 매각을 진행해오던 현대차투자증권은 지난 9월 사명(HMC투자증권→현대차투자증권)까지 변경해 분위기 쇄신을 꾀하려했지만, 시장 상황이 따라주지 않고 있다.

현대라이프 경우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아낌없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실적 개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라이프는 피인수 된 이후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차투자증권, 기아차 등 현대차그룹 주력계열사들과의 ‘퇴직연금 자산관리보험(DC‧DB)’ 및 ‘개인연금보험’ 등 현재까지 1000억여원의 금융거래 지원을 받았다.

이런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대라이프는 끝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됐다. 지난해 영업이익 -220억원, 194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현대라이프는 올 초 희망퇴직과 함께 지난 7월부터 전국 70여개의 개인영업점포를 모두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일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은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현대라이프의 보험설계사에 대한 불공정 및 갑질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연맹은 현대라이프가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의 70여개가 넘었던 점포를 폐쇄해 2000여명의 설계사가 600여명을 줄어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설계사들뿐만 아니라 현대라이프는 최근까지 3년차 이상 일반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전 직원 450명 중 3분의 1 수준인 120명으로 줄어들었다.

◇몰카 사건, 어수선한 분위기 틈타 문란해진 기강

이런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시점에 현대라이프 직원의 몰카 사건이 터졌다.

현대라이프 및 업계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달 18일 현대라이프 영업부 소속 과장 A씨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한 촬영) 혐의로 조사 중이다.

A씨는 지난 8월 서울 여의도 인근 식당 여자 화장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A씨는 지난 6월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회사 워크샵이나 세미나가 진행되던 리조트 내 여자 화장실에도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으며, 촬영된 영상에서는 회사 여직원들을 비롯 다른 손님들까지 촬영한 것으로 경찰 조사에 드러났다.

사건이 알려지자 현대라이프 여직원들은 A씨를 상대로 고소한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라이프 홍보실 관계자는 지난 1일 <뉴스락>과의 전화통화에서 “담당자가 부재 중이라 연락처를 남기시면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실적 악화에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사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뜬금없는 몰카 사건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 시험 무대에 오른 정태영 부회장의 리더십...올바른 대처방법은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의 총책임자인 정태영 부회장의 리더십 위기라고 분석한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둘째 사위로 14년째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를 이끌며, 부회장에 오르기 전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사장을 맡아 탁월한 경영 감각과 실적으로 업계 유일한 오너 경영인으로서의 신뢰를 보여줬다.

이 공로로 부회장까지 거침없는 승진을 거듭한 정 부회장이지만, 현대라이프 인수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는 모양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카드, 현대라이프 등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이 정태영 부회장 탓으로만 돌리 수 없지만, 그동안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앞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 부회장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얼마 전 S그룹 오너가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계열사 내에서 여직원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공식석상에서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에 노력하겠다고 밝힌 모습은 오너 경영인으로서 직원들에게는 신뢰와 사건을 조기 수습하게 한 올바른 대처방법을 보여줬다”며 “정 부회장은 이번 몰카 사건 경우처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내외부 분위기가 어수선한 틈을 타 흐트러진 내부 기강과 관리 시스템을 바로세우는 데도 신경을 써야만 결국 실적 개선과도 이어질 것”이라며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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