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지주사 전환 압박이 재벌들을 서서히 좁혀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겠다는 노선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들의 지주사 전환과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 지난해 연말까지 1차 데드라인을 제시한데 이어 3월 주총시즌까지의 2차 데드라인을 제시했다.

이에 롯데, 효성, 태광그룹 등의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과 지주사 전환에 나선 가운데 재계 2위의 현대차를 포함한 범현대가(家)의 지주사 전환은 각각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 언제쯤?

현대차그룹(회장 정몽구)은 10대 기업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차는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순환출자 구조에서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0.78%, 현대차가 기아차의 지분 33.88%, 기아차가 현대모비스의 지분 16.88%를 보유하면서 각각 최대주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구조와 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현대제철로 이어지는 구조도 존재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의 지분현황은 정 회장이 현대차 지분 5.2%, 현대모비스 지분 6.95%, 현대제철 지분 11.81% 보유하고 있으며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현대차 지분 2.3%, 기아차 지분 1.7%를 보유하고 있다. 적은 지분으로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가 지배구조 개선에 데드라인을 제시한만큼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현대차그룹은 1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 말을 아꼈다.

재계 전문가들은 현대차 지주사 전환의 관건은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의 지주회사 전환이라고 말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지주사로 전환 될 경우 금산분리 원칙에 의해 현대차 내의 현대캐피탈 등의 금융사들을 매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 부회장의 승계작업은 진행 중이다.

지난 16일 열린 현대제철 주주총회에서 정 부회장은 등기임원으로 선임되면서 정 회장의 등기임원직 수를 넘어섰다. 등기임원은 경영에 참여하고 법적 책임을 지는 실질적 경영인을 말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속도를 붙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관건은 현대엔지니어링의 배당금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비상장사로 정 부회장이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잇다른 악재로 주당 배당을 각각 1000원에서 800원, 1100원에서 600원으로 줄인 가운데 다른 상장사의 배당이 전년 선을 웃돌아 정 부회장이 받을 배당금이 줄어들 전망이다.

공시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작년 3분기 기준 영업이익 4062억, 당기순이익 2644억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각각 19.2%, 18.6% 증가했다. 이러한 상승세로 배당금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이 실적양호에도 배당금을 전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한다면 정 부회장이 받는 배당금은 전년대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정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한 자금마련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현대산업개발, 지주사 전환 ‘청신호’…정몽규 회장의 지배력은?

현대산업개발(회장 정몽규)은 지난해부터 지주사 전환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12월 현대산업개발은 이사회를 열고 HDC와 HDC현대산업개발로 조직을 분할하는 인적분할을 결의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공시를 통해 분할존속회사는 자회사 및 피투자회사 지분의 관리 및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사업부문 및 부동산임대사업부문을 영위하며 투자회사의 역할을 할 예정이고 분할신설회사는 건설사업부문, PC(Precast Concrete)사업부문, 호텔 및 콘도사업부문을 영위하는 사업회사의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존 현대개발산업 주주들은 HDC와 HDC현대산업개발의 지분율대로 주식을 나눠갖게 됐다. 분할비율은 존속회사인 HDC가 42%, 신설회사 HDC현대산업개발이 58%로 나눠졌다.

현대산업개발은 오는 23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거쳐 5월 1일, 지주회사로 출범할 예정이다.

현대산업개발의 지주사 전환은 순항 중이다. 지난 달 현대산업개발의 현금자산규모는 1조 3000억을 돌파했다. 순차입금도 마이너스 6160억으로 전년대비 5050억 감소하는 등 재무상태가 안정되면서 향후 투자에 대한 기대감 또한 높였다.

또한 지난 8일, 지주회사 프로젝트 담당 부사장으로 유병규 전 산업연구원장을 영입했다.

유 부사장은 한국생산성학회 부회장 및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등을 역임했으며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기획재정부 4차산업혁명 전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유 부사장은 이러한 경력을 통해 산업정책과 기업경영을 아우르는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지주사 전환에 있어 정 회장은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을 통해 오너일가 지배력 강화를 꾀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자사주를 대거 매입해 자사주 비중을 2.39%에서 7.03%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정 회장이 오는 23일 열리는 현대산업개발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될지는 미지수다. 자회사 아이콘트롤스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등 공정거래법 위반 논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1999년 설립된 아이콘트롤스는 현대산업개발의 자회사로 홈네트워크 사업, 지능형교통시스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다.

아이콘트롤스는 현대 내부거래로 고속성장을 해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이콘트롤스는 지난해 3분기 매출액 1878억을 기록했다. 이중 현대 내부 계열사로부터의 매출은 1120억 가량. 전체매출 중 내부거래 매출이 약 60%를 차지한다.

이중 현대산업개발은 90%이상의 매출을 책임져주고 있다. 실제로 현대산업개발이 2014년 주택사업 비중을 늘린 시점과 아이콘트롤스의 실적이 고공행진한 시점이 일치한다.

또한 아이콘트롤스는 2012년 현대산업개발이 발주한 서울 지하철 9호선 916공구 승강장 스크린 도어 설치 공사에서 현대엘리베이터, GS네오텍를 들러리로 세우고 투찰가를 합의해 낙찰 받는 등 담합 행위로 공정위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정 회장은 아이콘트롤스의 최대주주(29.8%)로 현대산업개발의 자회사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책임이 사내이사 재선임의 걸림돌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

◇‘압구정의 신화‘ 현대백화점, 순환출자 구조 여전…공정위,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로 압박

정몽근 전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정지선 회장의 현대백화점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대차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다.

현대백화점의 대표적인 순환출자 구조는 현대백화점→현대쇼핑→현대그린푸드→현대백화점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 구조에서 현대백화점은 현대쇼핑 지분 100%, 현대쇼핑은 현대그린푸드 지분 7.8%, 현대그린푸드는 현대백화점 지분 12.0%를 보유해 최대주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지주사 전환에는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압박이 관건이다.

지난달 공정위는 재벌 계열사의 기준을 상장사에 대한 오너일가 지분 기준을 30%이상에서 20%로 낮춰 일감몰아주기 등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현재 정 회장 오너일가의 지분은 총 29.92%로 공정위의 규제 대상이다. 그동안 따라다닌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교묘하게 빠져갔다는 꼬리표에 계열사 현대그린푸드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대그린푸드는 단체급식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로 현대백화점뿐만 아니라 범현대가 주요 기업들에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단체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만큼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논란은 항상 따라다녔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만큼 현대그린푸드는 이번에야 말로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재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공정위의 압박에 정 회장 오너일가의 지분을 20% 이하로 낮추고 핵심 계열사 현대그린푸드의 지주사 전환을 가장 유력한 돌파구로 판단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현대차에 비해 복잡하지 않은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를 해소하는데 드는 비용은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압박이 지주사 전환에 있어 관건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현대중공업, 지주사 체제 1년…승계 작업은?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이미 지주사 체제로 발돋움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월, 인적분할을 시행해 현대중공업, 현대로보틱스,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로 나뉘었고 5월에는 재상장에 성공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배구조 개선에도 속도를 붙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은 계열사 현대오일뱅크 기업공개와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지주사 전환이 올 하반기에 마무리 될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남은 과제로 현대삼호중공업의 현대미포조선 지분 처리를 꼽는다.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를 시작으로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현대삼호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의 지분 42%를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의 지분을 가질 수 없지만 100% 보유는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현대삼호중공업은 보유하고 있는 지분 42%를 매각하거나 나머지 지분 58%를 매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지분 매입과 매각이 모두 불가능 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에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합병, 혹은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합병이 해결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지분을 매각하는 것 보다는 매입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며 “남은 지분을 매입 한다는 것은 미포조선의 상장폐지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다소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아들 정기선씨가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관건은 승계를 위한 실탄과 현대중공업의 실적개선이다.

현행법상 증여세율과 상속세율은 최대 50%로 최대주주 지분 상속 시에는 10%에서 많게는 15%의 세율이 할증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정 이사장이 보유한 현대로보틱스 지분은 420만 2266주로 현금으로 환산 시 1조9200억원으로 추정된다. 최고세율을 적용했을 시 상속세는 최대 1조2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고무적인 것은 현대중공업이 지주사 체제를 갖췄다는 점이다. 정 이사장의 지주사 지분율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며 10.15%에서 25.8%로 확대됐다. 승계를 위한 실탄 마련의 밑그림이 그려진 셈이다. 또한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이 보유하고있던 자사주 13.37%가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지분으로 바뀌면서 의결권도 부활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 4분기 3790억원의 영업손실을 공시했으며 올해 목표매출 또한 13조 6000억원으로 설정했다. 이는 전년대비 약 1조 8000억원 가량 적은 목표매출이다.

또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 1조 2875억원의 유상증가 계획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유상증가 계획이 실적에 대한 불안감에서 초래됐다고 점치고 있다.

승계를 실탄 마련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정기선 부사장이 실적개선 등이 경영승계에 명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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