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보건복지부는 지난 23일 리베이트에 연루된 11개 제약사의 340개 품목에 대한 약가인하 안건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 26일 공시 발표했다.

지난 2월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폐지하는 대신 리베이트 의약품의 약가를 인하하거나 해당 제약사에 과징금을 현행 40%에서 60%까지(최대 100%) 부과하는 방식인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약가인하제)이 통과된 이후 첫 시행사례다.

약 4년 동안 시행돼왔던 리베이트 투아웃제(리베이트가 두 번 이상 적발될 경우 해당 의약품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영구 퇴출하는 제도)는 급여정지 약품이 대체불가한 약품에 해당할 경우 환자가 이를 부담해야 하는 등 기존 취지와 맞지 않는 실효성 논란으로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이에 2009년 이후 9년 만에 부활해 올 9월2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약가인하제’가 23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되면서 사실상 정부가 내세운 새로운 제약정책의 모의평가가 시작됐다.

매년 새로운 정책을 내놓음에도 제약사 리베이트 문제는 여전히 줄지 않아 허울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정부의 제약정책, 이번엔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사진=뉴스락 DB

◆ 받은 자도 처벌받는 쌍벌제 등장, 도덕성 앞세운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

정부가 제약사 리베이트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본격적으로 칼을 빼내든 시점은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가 도입되면서부터다.

과거에는 제약사 리베이트가 적발될 경우 제공자만 처벌을 받았지만, 리베이트 비용으로 인해 약값이 비싸지는 것을 막고 금품을 받는 자에게도 처벌을 해야 한다는 여론을 수렴해 정부는 2010년 11월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했다.

시행 2년이 지난 시점인 2012년 11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제약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1.7%가 쌍벌제 시행 이후 거래처 의약사의 리베이트 요구가 줄었다고 답했으며 97.5%는 자사인 제약사의 리베이트 비용이 줄었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가 2014년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서도 쌍벌제 시행 이후인 2011년 리베이트 적발 건수는 62건, 2012년 42건, 2013년 15건, 2014년 상반기까지 9건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리베이트 쌍벌제와 함께 시행된 리베이트 신고 포상금제로 내부고발자들이 늘어난 현상도 리베이트 발생률을 낮춘 데에 일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쌍벌제 시행은 리베이트와 관련한 법적 제재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영향력이 컸고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국회입법조사처 조사는 제약사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결과”라며 “조사 대상이 내부에 능통한 사람들이라는 판단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직업현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답변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리베이트 적발 건수 자체가 줄어든 것만으로는 리베이트가 근절됐다고 볼 수 없다”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자료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리베이트의 근본적 원인은 부도덕한 거래관계에 앞서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리베이트의 원인은 높은 복제약(오리지널약의 특허가 만료된 이후 동일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값에 의해 확보된 높은 마진에 있는데 복제약값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기관”이라며 “정부가 유지하고 있는 불투명한 약가결정구조가 리베이트의 주범인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대적 복제약값(오리지널약가 대비 복제약값의 비율)은 한국이 0.86에 달한다. 이는 미국 0.16, 영국 0.31, 일본·독일이 0.33인데 비해 높은 수치다.

노 전 협회장에 따르면 이처럼 오리지널약가와 복제약값의 차이가 얼마 나지 않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이미 이윤을 확보한 상태에서 가격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 경쟁력을 가질 방법이 리베이트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노 전 협회장은 이어 “쌍벌제는 약가를 조정해야 할 정부가 도덕성을 앞세워 제약사와 의료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원협회 역시 지난해 3월 약가제도의 전면적인 개정과 리베이트 중대범죄 규정 및 리베이트 쌍벌제의 전면적인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리베이트 쌍벌제 이후에도 약가는 인하되지 않았다며 강력히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리베이트 쌍벌제는 업계 종사자들의 지속적인 반발과 궁극적 목표인 자정적 약가인하를 달성하지 못하고, 이후에도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리베이트를 근절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 문턱 높은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 리베이트 근절 효과는 미미

2012년 3월 도입된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는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신약개발 R&D 역량과 해외 진출 역량이 우수하다고 판단하는 기업을 정부에서 인증하는 제도다.

정부는 해당 제도로 제약기업들에 혜택을 제공하는 한편, 효력기간 중 불법 리베이트 제공 등 인증기준에 미달될 경우 인증이 바로 취소되는 사항도 추가해 리베이트 근절 효과를 동시에 도모하고자 했다.

하지만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받는 절차에 비해 실질적인 지원은 뒤떨어지면서 기업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실제로 제약사들이 제도 내 가장 기대를 하고 있는 조세감면의 경우,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책임전가가 계속되고 있으며 금융 지원 역시 연구개발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 지원되고 있다고 한다.

한 혁신형 제약기업 관계자는 “연구개발비가 1조7천여억원이 빠져 나가지만 이에 대한 지원은 500억원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줄기세포 희귀질환 등 제약사들의 실질적 활동과는 거리가 먼 쪽에 투입된다”며 “인증은 권장하면서 지원이나 혜택은 미미해 사실상 기업 감시도구로 활용된다”고 말했다.

리베이트 근절 효과 역시 기대하기 어려웠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제약사들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받거나 혹은 유지하기 위해 리베이트 건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덮으려는 부작용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를 통한 리베이트 근절 효과를 확대하기 위해 지난 22일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등에 관한 규정’을 고시했다.

개정안에는 제약사 내 비윤리행위로 벌금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시 3년간 인증을 취소하는 규정과, 기존 과징금으로 산정했던 인증취소 기준을 리베이트 500만원 이상 또는 금액과 무관하게 2회 이상 리베이트가 제공된 경우로 변경하는 규정이 수록됐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는 개정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기업선정 그 자체가 갖는 신뢰성과 상징성을 볼 때 단순히 금전적인 부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시장 전체적인 부분에서 좋은 기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 리베이트 투아웃제 폐지와 약가인하제의 재등장…처벌 수위 완화?

다소 강수로 판단됐던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폐지되고 약가인하제가 재도입되면서 처벌 수위가 완화돼 리베이트가 다시 활개를 치지 않겠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실제로 약가인하제는 지난 2009년 도입됐다가 리베이트 근절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리베이트 투아웃제로 대체된 바 있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이번 약가인하제는 1차부터 4차에 걸쳐 인하율 20%, 40%, 60%, 100%의 조치를 취하고 3차 적발부터 업무정지 및 과징금 부과 조치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완화됐다고만 보긴 어렵다”며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9년 만에 부활한 약가인하제가 보완을 거쳐 환자의 의료부담을 덜어줌과 동시에 리베이트 근절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어 “제도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직업 종사자들의 윤리”라며 “제약사는 국민건강을 위해 투명경영을 하고 영업자 개개인도 리베이트 근절에 적극적인 협조를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 역시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리베이트 재발 방지, 환자의 약제선택권 보존 등 보완된 약가인하제를 통해 리베이트 근절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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