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공정거래위원회가 산업 전반에 걸친 고질적인 병폐 ‘대리점 갑질’에 대한 사정 칼날을 치켜들었다.

30일 공정위 및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24일 본사와 대리점주 간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공정한 대리점 거래 질서 확립을 목표로 ‘대리점거래 불공정관행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최근 프랜차이즈 업체가 증가하면서 본사의 대리점에 대한 이른바 ‘갑질’ 논란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는 대리점 분야의 거래 현황 파악을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2017년 8월~12월)하고, 이를 바탕으로 불공정 거래 관행 근절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공정위는 앞서 지난 2015년 시행된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리점법)이 실효성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법 위반 혐의 적발 시스템 강화 ▲불공정 거래 행위 엄중 제재 ▲업종별 거래 관행 개선 유도 ▲대리점 협상력 제고 ▲실질적인 피해 구제 수단 확충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이를 바라보고 적극적인 조사를 통한 엄중한 제재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공정위는 올 하반기 첫 번째 실태조사 대상으로 지난해 분쟁조정 신청이 가장 많았던 의류업을 선정했다.

의류업은 전속거래 형태가 대다수여서 본사에 의한 불공정행위 발생 위험이 큰 업종으로 꼽힌다. 로드샵 형태의 대리점도 많아 본사의 인테리어 개선 강요 행위도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류업이 선정됨과 동시에 의류업 못지않게 분쟁조정 신청기록이 많은 자동차, 화장품, 가구, 유통업계 등은 다음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로 비상이 걸렸다.

이들 중에는 끊임없이 대리점 갑질 논란이 불거졌던 기업이 다수 있는가하면 대리점법 제정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기업도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공정위의 대리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본사에 의한 불공정거래 경험여부가 있다는 응답이 46.2%로 절반에 달했다. 불공정거래 유형에는 '불이익제공'과 '밀어내기'가 가장 많았다/사진=공정위 보도자료

◆ 의류업계 공룡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협력사 갑질 논란

다양한 협력사와의 거래로 지난해 매출 1조7496억원, 영업이익 327억원을 기록하며 의류업계 공룡으로 불리고 있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전 제일모직)’은 한 협력사에 일방적인 반품 요구를 했다는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가방 등을 공급하고 있는 협력사 채니더디자인스튜디오(이하 채니)는 지난해 7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 반품 및 대금 지급을 요구했다”며 불공정거래행위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당시 채니에 따르면, 채니와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 2014년 9월부터 1년간 사업을 진행했는데 계약이 끝난 1년 후인 2016년 9월 삼성물산은 2000여개 제품을 채니에 반품했다. 또 반품에 따른 대금 1억8000만원을 요구하는 세금계산서도 보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재고품의 반품을 요구한 이유는 2016년 6월,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가 채니 제품을 상대로 자사 제품과 흡사해 착각을 불러온다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일부 소비자가 환불을 요구하고, 0.001%라도 문제 있는 것은 대기업 입장에서 판매하지 못한다”며 “패션업계 관례상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 반품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니는 당시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요구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계약서상 반품 사유에서 제외된다고 반박했다.

채니 측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사입’방식으로 제품을 사들였기 때문에 반품 권한이 없다고 덧붙였다. 사입방식은 판매자(삼성물산 패션부문)가 공급자(채니)에게 주문한 제품값을 모두 치르는 방식으로, 판매자는 싸게 제품을 사들일 수 있지만 재고 부담을 안게 된다.

채니 대표는 “디자인도 변경하고 소재 선정까지 관여한 것은 물론 사입 방식으로 사들였는데도 만든 지 2~3년이 넘은 제품의 재고를 넘기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자신들의 관리 소홀로 훼손된 물품까지 포함해 2016년 9월 반품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물산은 지난해 5월 반품에 대한 대금을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지급명령신청을 냈다.

한편 두 회사가 반품에 대한 다툼을 하는 사이 지난해 2월 열린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채니가 생산한 제품이) 에르메스 제품과 일부 형태에 있어 유사성이 인정된다는 사실만으로 공정한 거래 질서 및 자유로운 경쟁 질서를 해쳤다고 보기 힘들다”며 1심 결과를 뒤집었다.

<뉴스락> 취재 결과 현재 양사는 관련 분쟁을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공정위 조정 단계는 공정위가 양사에 신고서를 제출하라는 명령을 내려 당사는 모든 자료를 제출했으나 채니가 추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지난 2월 심사절차가 종료됐다”며 “현재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며 7월에 판결이 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현대차 경정비브랜드 ‘블루핸즈’ 가맹점 갑질 논란

지난 1월부터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대리점 불공정 관행 실태조사의 두 번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는 자사 경정비브랜드 ‘블루핸즈’ 가맹점과의 마찰로 지난 1월부터 공정위 가맹거래과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미 지난 2012년 가맹점주들에게 시설환경개선(리뉴얼)을 강요해 공정위로부터 한 차례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는 현대차는, 지난해 블루핸즈 1400여개의 가맹점 중 29개 가맹점을 계약 해지하는 과정에서 가맹계약 포기 각서를 요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가맹점주에 따르면 현대차는 가맹계약 종료 과정에서 잡음을 없애기 위한 방편으로 각서를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점주들은 “가맹계약 연장 가치가 있으나 시설개선을 실시하지 않은 가맹점들에게는 시설개선 이행 각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현대차는 가맹점에 일부 정비 서비스에 대한 부품비 10%를 미지급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현대차는 지난 2014년 정비 서비스 ‘컴팩트 패키지’를 내놓았다. 해당 패키지는 기존 상품보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가맹점주들에게 전체 부품비의 10%를 지급해야 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사실무근”이라며 “대부분의 블루핸즈 가맹점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간혹 규칙을 어겨 계약 해지가 된 가맹점주들이 악성적으로 현대차에 대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지난 1월 시작된 공정위 조사는 증거자료 검토 등 과정을 밟고 있는 이유로 아직까지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 화장품 대형기업 ‘아모레퍼시픽’ 방판특약점 갑질 사태

LG생활건강에 밀려 2위로 내려앉은 화장품업계 대표기업 아모레퍼시픽은 이미 대리점법 관련 처벌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업계 전체가 크고 작은 대리점 갑질 논란을 빚은 만큼 공정위가 분쟁조정 횟수가 높은 화장품 업계를 들여다볼 가능성은 높다.

아모레퍼시픽은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방판특약점 187곳에서 방문판매원 3600여명을 다른 신규 특약점이나 직영 영업소로 재배정 했다.

공정거래법상 회사가 지위를 이용해 독립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방판특약점 소속 판매원을 해당 점포의 뜻과 달리 다른 영업소에 배치하는 것은 금지된다.

본사에 의해 숙련된 판매원을 뺏긴 187개 점포의 1년 매출 하락 추산액은 중소기업청 산정 기준으로 726억원에 달했다.

검찰은 아모레퍼시픽이 실적이 부진한 특약점과 거래를 종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판단, ‘대리점 갑질’을 한 것으로 봤다.

결국 아모레퍼시픽은 2016년 9월 진행된 1심에 이어 2017년 10월 항소심마저 패하며, 법인에 벌금 5000만원, 갑질을 총괄한 혐의의 이 모 전 상무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후임자인 또 다른 이 모 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1심 선고가 유지됐다.

◆ 가구업계 ‘한샘’, 대리점 직원 배치 과정 갑질 논란

가구업계 1위 한샘은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여직원 성폭행 논란에 이어 대리점 갑질 의혹까지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은 한샘이 대리점 업체를 관리하는데 있어 대리점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한샘이 플래그샵 내 부엌가구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대리점 직원을 직접 선발해 배치하는데, 이때 교육비 명목으로 대리점으로부터 수수료를 챙겼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리점에 판매 목표를 정해 달성하지 못하면 플래그샵 내 영업활동을 제한했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뿐만 아니라 한샘이 전단지 제작과 배포비용을 대리점에 전가하고 카탈로그, 명찰, 사은품 등을 구입하도록 강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 1월 서울 마포구 한샘상암사옥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 조사를 벌였다. 당시 한샘 측은 “대리점에 사은품 등 구입을 강제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현재 조사는 진행 중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대리검거래 불공정관행 근절대책 개정안을 발표한 만큼 추후 가구업계를 비롯한 한샘의 추가 확대조사의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 ‘갑질’로 대리점법 제정의 직접적 기여를 한 ‘남양유업’, 이미지 쇄신은 언제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로 ‘갑의 횡포’를 처음으로 사회적 이슈로 만든 기업이다. 이 사태로 인해 공정위는 2년 뒤인 2015년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리점법)을 제정하게 된다.

지난 2013년 남양유업은 대리점을 상대로 유통기한이 다 된 제품을 강매하는 등 갑질을 했다. 이 과정에서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한 녹취가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에 당시 대표이사 및 임원들은 사과를 하며 대리점주 피해구제를 약속했지만 5년이 지난 현재도 이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더불어 남양유업이 부진의 늪을 제품 브랜드를 가리는 ‘편법’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는 의혹마저 불거지면서 씻을 수 없는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됐다.

실제로 갑질 논란 당시였던 2013년 남양유업의 영업이익은 -175억원, 2014년 -261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2015년 201억원, 2016년 418억원을 기록하며 반등하는 듯 했으나 편법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다시 51억원으로 대폭 하락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번 개정안을 발표한 공정위가 유통업계 중에서도 남양유업을 들여다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업계 관계자 역시 “각종 의혹과 갑질 논란의 시작이었던 남양유업을 공정위가 주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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