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중고차 시장이 올해 요동칠 전망이다. 고금리 시대를 맞아 성장세가 다소 꺾인 듯한 모양새인 가운데, 올 하반기 현대차그룹의 시장 진입으로 파열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수년전부터 중고차 시장문을 노크해왔지만, 매번 좌절했다. 

지난 2013년부터 중고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진출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 얘기가 나올때부터 중소기업들은 중고차 시장마저 현대차의 독식을 우려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의 기조가 바뀌었다.  지난해 4월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가 2023년부터 완성차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했다.

다만 올해 현대차는 올 1월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시범판매를 미뤄 하반기로 늦춘다는 계획이다. 중소기업들의 반발을 예상한 것으로 풀이된다. 

<뉴스락>은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살펴봤다.

서울시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 사진=이윤석 기자 [뉴스락]
서울시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 사진=이윤석 기자 [뉴스락]

중고차 관리는 신차·브랜드 가치 높여... ‘리사이클링 효과’

현대차그룹은 새해벽두부터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췄다.

현대차는 지난 3일 신년회에서 “인증 중고차 사업을 통해 신뢰도 높은 중고차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인증 중고차란 소비자가 구매한 신차 중 일정 기한이나 일정 주행거리 내로 운행한 차량을 완성차업체가 다시 매입해 정밀 점검 후 새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일정 기간동안 A/S, 무상수리, 품질 보증 등을 제공한다.

이미 완성차기업들은 해외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있지만, 국내 시장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에 가로막혀 10년 넘게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중고차&시장 규모와 중고차 시장 전망치. 자료=국토교통부, 삼성증권 제공. [뉴스락편집]
중고차&시장 규모와 중고차 시장 전망치. 자료=국토교통부, 삼성증권 제공. [뉴스락편집]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 등 완성차기업들이 국내 중고차 시장까지 넘보는 이유에 대해 중고차 시장의 높은 성장 가능성에 따른 수익성때문이라고 분석한다. 

1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는 약 380만 대로 신차 규모(약 180만대)의 약 2배다.

다만 중고차 거래 통계가 중고차 이전 등록을 기준으로 해 실제 거래량으로는 260만대 정도 규모(약1.5배)로 추정하고 있다.

중고차 시장을 금액 규모로 보면 지난해 기준 약 3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로선 신차 시장 75조원 규모의 절반이 채 안 되지만 증권가와 중고차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5년래 최소 1.3배에서 2배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 완성차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자사 브랜드의 중고차를 직접 관리해 잔존가치를 높여 신차 경쟁력과 나아가 브랜드 가치까지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완성차업체에 대한 중고차 시장 진입 제한이 없는 미국에서는 한국브랜드와 외국브랜드 중고차 감가율 간의 큰 차이가 없고, 차종에 따라서는 한국브랜드 가격이 오히려 높은 경우도 있다.

품질향상과 현지 수요에 맞는 구성 등과 같은 신차 경쟁력과 더불어 중고차 인증을 통한 잔존가치 향상이 미국 자동차 내수시장 내 한국브랜드의 점유율 상승에 일조했다는 평가다.

반면, 국내의 경우 수입브랜드는 중고차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중고차 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다.

이러한 중고차 인증제 참여 유무에 따라 수입브랜드와 국내브랜드의 중고차 감가율에 차이를 보였다.

2017년식 기준으로 현대차의 제네시스 G80은 2020년 30.7% 떨어진 가격에 거래됐지만 벤츠E클래스는 25.5%, 벤츠GLC는 20.6%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대 쏘나타의 가격은 45.7% 떨어진 반면 BMW3시리즈는 40.9% 떨어진 가격에 거래됐다.

김필수 수출중고차협회 회장(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뉴스락>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이유는) 돈이 되는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될 수도 있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신차와 중고차 간의 리사이클링 효과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고차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 신차 가격하락과 판매량에 영향을 준다”며 “완성차기업이 직접 중고차를 관리해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신차 판매를 원활히 하는 것과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중고차업계 불황에 따른 판매 연기... 문제는 ‘고금리’

현대차 인증 중고차 가상현실(VR) 시승 체험 서비스의 콘셉트 이미지(왼쪽), 기아 인증 중고차 디지털 플랫폼(오른쪽).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뉴스락]
현대차 인증 중고차 가상현실(VR) 시승 체험 서비스의 콘셉트 이미지(왼쪽), 기아 인증 중고차 디지털 플랫폼(오른쪽).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뉴스락]

현재 현대차그룹은 기존 경남 양산 출고 센터를 철거해 인증 중고차 전용 하이테크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또 경기도 안성에 중고차 매매사업을 위한 부지 매입절차도 진행 중이다. 또한 수도권 중고차 매매단지를 중심으로 10개 안팎의 중고차매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현대차는 글로벌인증중고차 사업 전략업무를 담당할 신입사원을, 기아차는 국내 인증 중고차 고객센터 직원을 채용하면서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하지만 중고차 사업 준비에 분주했던 현대차그룹의 시장 진출이 하반기로 미뤄졌다.

중고차 시장은 근래 2년간 반도체 수급난으로 신차 출고가 지연되자 신차가격보다 비싼 중고차 가격이 형성되기도 할 만큼 뜻밖의 활황기를 보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무색하게도 불과 수개월 만에 소비자 발길이 끊기고 중고차 시세는 연일 하락세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승용차 중고 재고차량이 지난해 9월 이후 급격히 쌓이고 있다. 2021년 말 6만 3840대까지 쌓였던 재고 차량이 지난해 8월까지 모두 소비되면서 공급이 못따라가는 상황이었지만, 9월 9631대를 시작으로, 10월 1만2232대, 11월 1만7422대를 기록했다.

주 원인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금리 때문이다. 지난 한 해만 2%포인트 금리가 상승해 3.25%포인트를 기록하고, 새해가 시작되자마자(지난 13일) 0.25%포인트 추가 인상이 이뤄졌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연 2.9%의 할부금리가 1년사이 10%대까지 올랐다. 중고차 평균 대출 금리(36개월 할부 기준)는 약 18%로 법정 최고 금리인 19.9% 육박하는 업체도 있다.

고금리에 신차를 기다리던 소비자들도 줄줄이 계약을 취소하면서 평균 출고 대기기간이 10개월 이상 걸렸던 기간이 3개월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중고차 시장의 활황이 신차 출고지연에 따른 것이 원인인데, 신차 출고가 빨라짐에 따라 중고차의 매력을 잃은 것이다. 특히 신차 할부금리(7~8%)보다 중고차 금리가 2배 이상 높은 것도 한몫했다.

현대차그룹이 재정비를 이유로 인증 중고차 판매를 하반기로 미룬 것도, 현재 중고차 시장의 불황도 고려됐을 것으로 풀이된다. 사업성도 문제지만 시장 진출 시기와 겹쳐 자칫 시장 불황의 원인으로 현대차그룹 진출이 지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 진출, 기대와 우려... ‘대기업 독점’ vs ‘신뢰 회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현대차그룹은 중소벤처기업부의 권고안대로 하반기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권고안을 살펴보면, 시장 진출 이후 현대와 기아차 초기 2년간 판매 대수를 제한했다. 첫 1년간은 현대차가 전체 시장의 2.9%, 기아차가 2.1%를 점유할 수 있고, 이후 각각 4.1%, 2.9%로 조정된다.

중고차 매입 관련해서는 고객이 신차 구매조건으로 자사 브랜드 중고차 매입 요청이 있을 경우만 가능하다.

또한 매입한 중고차 중 인증 중고차로 판매하지 않는 중고차는 경매에 의뢰해야하며, 경매 참여자에 대해서도 중소기업으로 제한하거나 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와 협의해 중고차 경매사업자에게 경매 대상 차량의 50% 이상을 배정해야 한다.

이같은 권고안은 3년간 적용되며, 불이행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형이라는 패널티도 달았다.

현대차그룹은 출고한 지 5년, 누적 주행거리 10만km 이내인 차량을 취급할 계획이다.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 권고안. 자료=중소벤처기업부 [뉴스락]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 권고안. 자료=중소벤처기업부 [뉴스락]

중고차업계에서는 우려를 나타낸다.

연식이 낮고 주행거리가 짧은 인기 차종들을 대기업이 독점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업계에서는 인기물량의 독점이 결국에는 중고차 시장 전체의 가격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소비자들은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가장 큰 이유는 중고차 시장 자체의 신뢰 부족이다. 그동안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이 심한 대표적인 ‘레몬마켓’으로 꼽혔던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하게 되면 소비자 편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서울의 대표적 중고차 매매단지 장안평중고차에서 만난 회사원 A씨(32·남) 는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소식에 환영을 표했다. 

A씨는 "그동안 중고차 시장은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아직도 속아서 구매하거나 강매에 의해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A부터 Z까지 책임져둔다면 소비자로서는 믿고 살수 있을 것이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중소영세업체와 상인들을 위해서 정부와 현대차가 상생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했다. 

실제 <뉴스락>이 만난 중고차 매매업자 B씨는 "고금리와 경기침체에 얼어붙은 중고차 시장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매매업자들은 당장의 불황을 견뎌야하는 것과 함께 현대차 등 대기업 진출에 대한 수익성 방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서울시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 사진=이윤석 기자 [뉴스락]
서울시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 사진=이윤석 기자 [뉴스락]

<뉴스락>은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대표적 중고차 매매단지 장안평중고차시장을 방문해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실제 업자들의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그들은 대기업이 영세업자의 밥그릇까지 노리고 있다며, 고객의 발길마저 끊킨 지금, 현대차까지 생각하면 살 길이 막막하다고 입을 모았다.

중고차 매매업자 B씨는 “(중고차 시장의) 좋은 시절은 다 갔다”며 “일주일에 2~3건 문의가 오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가 영세한 서민들 밥그릇까지 뺏으려는 것 아니냐”며 “지금같이 먹고 살기도 빠듯한 때에 우리보고 죽으라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C씨는 “중고차 시장이 그리 깨끗하지 않은 것은 맞다. 하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도 최대한 투명하게 양심을 가지고 장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지금의 중고차 시장의 이미지가 나빠도 너무 나쁜 것 같다. 유튜브같은 곳에서 허위매물같은 자극적인 것들만 자주 부각돼 지금의 (중고차 시장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과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현대차그룹이 시장 불황을 딛고 잡음없이 중고차업계와 상생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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