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바야흐로 3월 주총 시즌이다. 재계는 코로나 3년의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첫 관문을 맞았다. 새로운 대표이사와 사내외 이사를 선임하거나 신수종 사업을 정관에 추가해 침체된 실적과 분위기를 반등시키려 한다. 

하지만 주총 시즌이 여느 기업에게나 반등의 기회의 장인 것은 아니다. 방어하기에 급급한 시련의 장이 될 수도 있다.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기업들이 그렇다. 막강해진 사모펀드 세력과 소액주주들의 입김에 난감하다. 

특히 국내 대기업들 대부분이 오너형으로, 경영권 분쟁은 곧 오너리스크와 직결돼 있는 경우가 많아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자칫 지배구조까지 위협받는 경우도 있어 우려가 아닐 수 없다. 

다만 과거와 달리 경영권 분쟁을 기업 측면에서는 악재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각종 구설에 올라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오너 기업의 경우, 주주들은 경영권 분쟁을 통한 수장교체로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쇄신 측면에서 도리어 반기는 분위기도 주식 시장에서 감지된다.

<뉴스락>은 3월 주총 시즌을 맞아 과거 그리고 현재 경영권 분쟁이 일었거나 진행 중인 기업 10곳(금호석유화학, 한국타이어, 한진그룹, 고려아연, 성신양회, 남양유업, 오스템임플란트, 한샘, 노루홀딩스, 휴마시스)을 선정해, 이들 기업들의 면면을 분석해봤다.

뉴스락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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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간 경영권 분쟁, 대부분 오너 의지 따라 결판

장남 조현식 고문(좌) 조양래 명예회장(가운데) 조현범 회장(우). [뉴스락].
장남 조현식 고문(좌) 조양래 명예회장(가운데) 조현범 회장(우). [뉴스락].

한국타이어(현 한국앤컴퍼니그룹)는 근래 오너형 기업 중 형제의 난으로 불리며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대표적 기업이다.

지난 2020년 조양래 한국타이어 명예회장이 차남인 조현범 회장에 지분 전량을 매각하면서 시작된 장남 조현식 고문과의 ‘형제의 난’은 차남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당시 조 고문이 19.32%, 조 회장이 19.31%의 근소한 차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조 명예회장의 지분(23.59%) 전량을 차남에게 매각했다는 것은 이미 조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의지가 명확했던 부분이다.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조 명예회장이 온전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판단에 성견후견인 지정 신청을 하고 분쟁이 장기화 국면에 빠지는 듯 했으나, 2021년 돌연 조 고문이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조 고문은 “가족간의 다툼으로 회사가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것을 안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타이어는 차남 조현점 회장 체제로 완전히 굳혀졌다.

하지만 오너리스크는 완전히 끝나진 않았다. 검찰은 최근들어 조 회장에 대한 일감몰아주기·횡령 등 혐의에 대해 전방위 압박수사를 강도높게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도 1년 5개월 만에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지주사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5%에서 6.01%로 늘리고 투자목적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면서 경영권에도 향후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한다. 

왼쪽부터 박준경 사장, 박찬구 회장, 박철완 전 상무. 사진=금호석유화학 제공 [뉴스락]
왼쪽부터 박준경 사장, 박찬구 회장, 박철완 전 상무. 사진=금호석유화학 제공 [뉴스락]

금호석유화학도 있었다.

박찬구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가 경영권에 발을 들이밀며 ‘조카의 난’을 일으켰지만 2021년과 지난해 두 번의 주총 표 대결에서 연패하며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지난해 박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당시 부사장이 사내이사에 선임되면서 경영권 분쟁의 종식을 알리고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3세 경영을 본격화했다.

승계 과정에서 일어난 경영권 분쟁의 경우 오너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

조양래 명예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결정에 따라 분쟁을 무난하게 잠재운 셈이다.

한영재 노루그룹 회장. 사진=노루홀딩스 제공 [뉴스락]
한영재 노루그룹 회장. 사진=노루홀딩스 제공 [뉴스락]

현재 승계 잡음이 들리는 도료전문 기업 노루홀딩스도 조용히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한영재 노루그룹 회장의 장녀 한경원 노루서울디자인스튜지오 실장이 지난해 지주회사이 노루홀딩스 주식을 매입하면서 한 실장의 남동생인 한원석 노루홀딩스 전무와 지분 경쟁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 노루홀딩스 지분은 한 회장이 30.57%, 한 전무가 3.75% 한 실장이 1.61%다. 지분을 늘렸다고는 해도 미미한 수준으로, 한 회장의 지분이 승계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려아연, 분쟁 향배의 키포인트는 '이사회 장악' 

지난 2013년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오른쪽)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오른쪽 사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각 사 제공 [뉴스락]
지난 2013년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오른쪽)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오른쪽 사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각 사 제공 [뉴스락]

경영권 분쟁에 있어 의결권이 있는 이사회 장악력은 빼놓을 수 없는 키포인트다.

장악력이 비등하다면 ‘경영성과’를 앞세운 주주 표심 모으기도 분쟁 향배에 있어 중요하다.

그동안 ‘한 지붕 두 가족’ 살림을 해온 고려아연이 지난해 오너 3세 경영을 시작하면서 잡음이 생겼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이 서로 고려아연 우호 지분 확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4일 재계 및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영풍그룹 핵심 계열사이기도 한 고려아연은 장씨 일가가 31.96%, 최씨 일가가 27.9%의 우호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1년 새 10%가량의 격차가 3%대까지 격차가 좁혀진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경영권 분쟁이 고려아연의 계열분리를 위한 수순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장씨 일가와 서로 우호적이지 않은 현재로선 이사회를 통해 분리할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이사회는 최씨 일가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구성돼 있지만, 이번에 임기가 끝나는 인원이 11명중 6명이나 된다. 이사 과반이 교체되는 만큼 새 이사회 구성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번 주총에서 최 회장 측 사람으로 구성되면 계열분리가 현실화할 수 있으나 장 회장 측이 추천한 후보 등이 구성될 경우 표 대결이 이뤄질 수도 있다.

양측이 이사회 장악에 난항을 겪을 경우 결국 그간 경영성과가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그간 실적 성장세와 더불어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배터리 리사이클 관련 합작인 설립 등 최 회장의 경영성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다.

최씨 일가가 이사회를 다시 장악할 수 있을지, 경영성과를 바탕으로 주주들의 표심을 잡을 수 있을지, 나아가 영풍과의 계열분리가 이뤄질 것인지, 올해 고려아연 주총이 이목을 끄는 이유다.

3월 주총,  사모펀드-소액주주 피바람 예상

올해 주총에서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면 갈 수록 위력을 더해가고 있는 사모펀드 세력과 소액주주들의 입김이다. 

3월 주총, 자칫 피바람이 불 조짐이다. 

특히 최근 ESG경영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부상함에 따라 지배구조가 취약하거나, 오너리스크를 포함한 각종 경영리스크를 가진 기업들은 사모펀드의 행동주의에 명분을 쥐어주고 있다.

과거 사모펀드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우량기업이건 부실기업을 인수하건 목적은 단하나 싸게 매입해 비싸게 매각해 큰 차익을 얻기 위한 세력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우리나라는 7~80년대 경제부흥을 일으킨 창업주 오너 1세대들의 향수와 정이 정서적으로 강한 탓에 사모펀드는 공격은 당연히 방어해야할 '악'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ESG경영 바람 속에 인식의 변화가 생겨났다. 사모펀드의 본질은 변하지 않겠지만, 주주들 입장에서는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판단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2021년 자산 100대 기업 주요주주 지분 변동조사에 따르면 사모펀드 평균지분은 2011년 14.4%에서 10년 사이 21.6%로 7.2% 증가했다.

반면 오너의 평균지분은 10년 사이 43.2%에서 0.4% 하락한 42.8%를 기록했다.

<뉴스락>이 최근 사모펀드 세력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았던 또는 받고있는 기업들의 면면을 분석해본 결과, 대다수가 갑질·횡령·배임·범죄 등 각종 구설에 오른 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는 한진그룹·오스템임플란트·한샘·남양유업·휴마시스 등이 있다.

사모펀드의 공격은 대부분 경영진 쇄신을 명분으로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에서 일어났다.

공격받은 기업들은 우호세력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 방어에 몰두하거나,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비싸진 몸값을 받고 회사를 매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제공 [뉴스락]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제공 [뉴스락]

한진그룹은 2015년부터 땅콩회항을 비롯한 각종 갑질 사실이 세간에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주주들 사이에선 조씨 일가의 경영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모펀드 KCGI(강성부 펀드)가 전면에 공식 등장한 건 2018년 11월이다. KCGI는 한진칼 지분율을 9%로 확대하면서 국민연금을 제치고 2대 주주자리에 오르면서 경영참여 소식을 알렸다.

당시 조씨 일가의 지분율은 28.95%, 국내외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지분율은 33%를 넘어섰기에 충분히 경영권을 위협받는 상황이다.

그러한 와중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이 2019년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경영권 분쟁이라는 과제는 장남 조원태 회장의 손에 넘어갔다.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사장(당시 부사장)이 KCGI, 반도건설과 3자 연합을 구성해 경영권을 위협하는 가운데 조 회장이 정면 돌파에 나섰다.

2020년 11월 산업은행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조건으로 8천억 원의 자금을 지원받고 지분율 10%가 넘는 산업은행이라는 우군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는 사업 확장과 경영권 방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이후 KCGI와 반도그룹이 지분을 매각하고 3자 연합의 경영권 위협도 사라졌지만, KCGI의 지분 전량이 호반그룹에 매각되고 호반그룹에서 한진칼 지분이 팬오션(하림그룹)으로 이동한 것을 보고 IR업계에서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호반과 하림 둘다 항공사업에 관심을 두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경영권을 위협하는 요소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분 변동이 있을 때마다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한진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지난해 3분기 기준) 한진그룹의 지주사 한진칼의 지분구조를 보면  조원태 회장이 5.78%,  조현아 사장 5.73%, 조현민(에밀리 조) 전 부사장  1.32%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명희 고문은 지분율은 3.73%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칼의 주총은 이달 22일이다. 이번 주총에서는 '표 대결'은 없을 것으로 전해지지만, 주총 안건으로 올라온 '정관 일부 변경'에서 분쟁의 불씨는 아직 남아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오스템임플란트도 KCGI의 경영권 공격을 받았다.

지난해 1월 2215억원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던 국내 1위 치과용 임플란트 업체 오스템임플란트는 이미 그해 경영권 매각을 타진했지만 불발된 바 있다.

KCGI로부터 시작된 이번 경영권 분쟁에 오스템임플란트는 결국 사모투자 운용사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와 MBK파트너스(MBK) 컨소시엄의 손에 떨어졌다.

재계 및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UCK와 MBK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공개매수를 진행 중이다.

공개매수가 끝나면 UCK측은 오스템임플란트 창업자 최유옥 회장 측 주식 9.3%도 매수하는 계약도 지난달 21일 체결한 바 있다.

큰 변수가 없는 한 오스템임플란트는 MBK 컨소시엄 측에 인수되고, 최 회장은 인수 대가로 3705억 9000만원 가량을 지급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샘도 마찬가지다.

2017년 사내 성폭력 사건과 2020년 비자금 조성 등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한샘은 IMM PE(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됐다.

특히 성폭력 사건으로 평소 견실한 이미지를 구축했던 한샘의 브랜드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불매 운동까지 일면서 매출에도 문제가 생겼다. 비자금 조성 등의 비리 수사까지 이어져 치명적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 한샘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은 회사의 매각을 결심하고 지난해 자신과 특수관계인 7명의 지분 27.7% 전량을 IMM PE에 넘겼다.

이때 당시 주가가 10만원 안팎이었으나 IMM PE는 주당 22만원에 한샘 주식을 샀다. 조 명예회장 측은 100%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은 1조 4513억원을 매매대금으로 지불받았다.

이를 두고 2대 주주인 테톤 캐피탈은 과한 매각대금으로 대주주의 기업가치 독식이 있었다며 경영권 참여 의사를 밝혔다.

국민연금 등의 기관투자자들과 소액주주들이 테톤을 지지하면서 지난해 1월 IMM PE와의 경영권 분쟁 재점화 소식도 들려왔지만, 테톤의 행보가 ‘경영권 분쟁’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IMM PE와 테톤의 지분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남양유업도 사모펀드에 매각을 진행 중이다.

갑질 논란과 마약 파문, 결정적으로 불가리스 사태 등으로 오랜기간 ‘남양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경영진 사퇴 등의 목소리 또한 거세졌다.

남양유업 오너 홍원식 회장은 지난 2021년 5월 자신과 일가 보유 지분 전량(53.08%)을 한앤코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었으나, 돌연 3개월 후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홍 회장 측은 부당한 경영 간섭, 비밀유지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한앤코는 정상적인 계약이었다며 지난해 8월 소송에 들어갔다.

이에 홍 회장 측도 그해 9월 계약 해지 책임에 따라 310억원을 지급하라는 위약벌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업계에서는 한앤코가 경영권을 둘러싼 법정다툼에서 최근 2심까지 승소하면서 승기가 굳혀져 있다고 보고 당초 진행됐던 매각절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투자업계(IB) 전문가들은 홍 회장 측이 계약 해지 통보한 것이 당시 매각금액이 예상보다 낮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당 82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던 당시 주가는 38만원 대였던 것을 보면 2배가 넘는 금액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당시 주가는 오너리스크로 인해 이미 저평가된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남양유업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이유는 제값을 받고 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바이오 업계도 주총을 앞두고 혹여 경영권을 위협받을까 초긴장 상태다.

최근 코로나 진단키트로 급부상한 휴마시스가 아티스트코스메틱에 인수됐다. 휴마시스는 사모펀드가 아닌 소액주주모임으로부터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구희철씨를 필두로 한 소액주주모임이 지분 5.45%를 보유하면서 경영권 참여를 알렸다. 당시 소액주주들은 차정학 휴마시스 대표가 실적 개선에도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영진 교체를 요구했다.

휴마시스 역시 차 대표를 비롯 특수관계인 포함한 지분율이 7.65%밖에 되지 않아 경영권이 충분히 위협받는 상황이었고, 결과적으로는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관철된 셈이다.

바이오기업들은 타 업종보다 창업자 등의 대주주 지분율이 낮기 때문에 이번 휴마시스 인수를 시작으로 바이오업계가 사모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신약 연구나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면서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지는 회사가 많다”며 “사모펀드는 물론 소액주주들의 움직임에도 쉽게 경영권이 흔들리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소액주주, 사모펀드 지지한다?... "장기적 관점에선 부정적일 수도"

엄태섭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왼쪽)가 서울시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건 관련 피해소액주주 손해배상 청구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엄태섭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왼쪽)가 서울시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건 관련 피해소액주주 손해배상 청구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모펀드의 경영권 공격에는 명분이 있다.

소액주주들의 이익과 권리를 대변한다는 것과 각종 논란과 비리에 휩싸인 경영진들의 쇄신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주주들은 사모펀드의 경영권 공격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재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모펀드의 공격이 기업의 성장을 저해시키고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하락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낸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사모펀드의 공격이) 단기적인 관점에서 기업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하락시킬 수 있다”며 “2000년 초반 미국 헤지펀드 소버린의 공격을 받은 SK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1조원이 넘는 돈을 소진했다”고 지적했다.

방어를 위한 과한 경영자원 소모와 회사 내부의 동요 등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요소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업의 성장을 저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 역시 “사모펀드가 겉으론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경영진 쇄신을 외치지만 본질적으로 기업의 장기적 성장이 아닌 단기적 돈벌이를 주목적으로 한다”며 “기업 가치 상승을 위한(비싼 값에 되팔기위해) 구조조정 등으로 오히려 기업 몸집이 작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움직임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근로자까지 온전히 고려될 수 있는 지 의문”이라며 “돈이 목적인 사모펀드가 몸값을 불려 되팔 때 고용승계 등의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선택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적대적 M&A 경영권 방어... 성신양회 ‘정관’ 변경

김태현 성신양회 회장. 사진=성신양회 홈페이지 [뉴스락 편집]
김태현 성신양회 회장. 사진=성신양회 홈페이지 [뉴스락 편집]

정관은 단체 또는 법인의 조직·활동을 정한 자주적 법규다. 정관을 위반한 행위를 한 때에는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이러한 정관은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활용된다.

시멘트 생산업체 성신양회는 유진그룹 계열사 동양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에 따르면 2021년 12월 동양은 성신양회의 지분 6%가량을 사들이며 2대 주주에 올라서면서 경영권 분쟁의 불씨를 지폈다.

이에 성신양회는 지난해 정기 주총에서 ‘황금낙하산’ 조항을 정관에 신설했다. 황금낙하산 조항은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기업들이 M&A 비용을 높여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수대상 기업 대표이사와 이사가 임기 전에 비자발적으로 해임될 경우 거액의 특별 보상금을 주도록 하는 조항이다.

특히 해당 조항 문구에 ‘임기 중 적대적 M&A로 인해 그 의사에 반하여 해임될 경우’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성신양회는 김태현 회장(13.03%), 김영준 전 회장(11.39%) 등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을 합한 총 지분은 33%를 웃돌고 있다.

다만 소액주주 지분이 60%를 넘기 때문에 6%의 지분율이지만 동양의 움직임을 충분히 의식했던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경영권 방어 조항 100곳 중 8곳만..."국내 기업들 경영권 위협 취약"

지난 2019년 3월 한진칼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중구 한진빌딩 모습.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의 최대주주인 조원태 회장과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사내·사외이사 선임과 정관 변경 등을 놓고 표대결을 벌였다. 
지난 2019년 3월 한진칼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중구 한진빌딩 모습.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의 최대주주인 조원태 회장과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사내·사외이사 선임과 정관 변경 등을 놓고 표대결을 벌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2021년 자산 상위 100대 기업의 정관 분석에 따르면 불과 8곳에서만 경영권 방어 조항을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회사 대부분이 이사진의 임기가 일시에 만료되는 것을 막는 방어 수단인 ‘시차임기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정관에 명시한 기업은 한 곳에 불과했다.

통상 이사 임기는 3년이다. 이에 이사 총원의 3분의 1씩 임기가 만료되도록 구성하면 경영권 공격세력이 주식 과반수를 매수해도 이사진 전체 교체가 어려워진다.

다만 전경련은 이마저도 2006년 헤지펀드의 공격사례를 보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현재 기업들이 정관에 넣을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들은 ▲이사 해임 가중요건 ▲이사 시차 임기제 ▲인수·합병 승인 안건의 의결정족수 가중 규정 ▲황금낙하산주 정도다.

이 수단들 역시 주총에서 안건 가결을 어렵게 하거나 임원진들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것을 막는 정도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해외기업들의 경우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황금주 등 더 적극적인 방어수단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이 같은 방어수단이 결여돼 있다.

한진그룹과 같이 지배구조에 일시적인 균열이 발생했을 때 KCGI의 공격을 당했던 것을 보면 대기업 역시 경영권 방어수단이 부족하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한국은 IMF사태 이후로 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사라졌다”며 “현재 기업들이 사용할 수 수단은 자사주 정도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행동주의 펀드에서 주주권 행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공격과 방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우리나라에도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이 필요하다”며 “해외의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등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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