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김재민·최진호 기자] 14억 인구의 중국 시장은 국내 기업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매력적인 진출지다. 동시에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리스크도 안고 있어 양날의 검으로 여겨져 왔다.

이처럼 위험하면서도 높은 매력도를 갖고 있는 중국 시장이 최근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임기 마지막 해를 보내는 시진핑 체제의 대내외 외교 및 경제 정책이 우리 기업들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는 것.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잇따라 철수하는 모양새다. 해외 총 매출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30대 기업 기준)했던 중국 시장은 어쩌다 우리 기업들에게 칼을 겨누게 됐을까. 우리 기업들은 이대로 중국 시장에서 완전 철수를 해야만 하는 걸까.

<뉴스락>은 우리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 현주소를 코로나19 사태 전후로 비교해보고, 왜 그런 것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인지, 원인과 전망에 대해 진단해보기로 했다.

<뉴스락>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간한 ‘2018-2019 국내기업 해외진출 디렉토리’, ‘2020년 국내기업 해외진출 디렉토리’ 자료를 취합한 결과, 지난 2018~2019년 해외에 진출한 1만 2000여 개 기업 중 2000여 개에 달하는 기업이 코로나19 이후 국내로 돌아오거나 철수했다. 2000여 개의 해외철수 한국기업 중 중국에서 철수한 기업만 1425개에 달했다. [뉴스락 편집]<br>
<뉴스락>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간한 ‘2018-2019 국내기업 해외진출 디렉토리’, ‘2020년 국내기업 해외진출 디렉토리’ 자료를 취합한 결과, 지난 2018~2019년 해외에 진출한 1만 2000여 개 기업 중 2000여 개에 달하는 기업이 코로나19 이후 국내로 돌아오거나 철수했다. 2000여 개의 해외철수 한국기업 중 중국에서 철수한 기업만 1425개에 달했다. [뉴스락 편집]

◆ 미-중 무역분쟁·자체 경쟁력↑…국내 기업 입지 좁아져

우리 기업의 중국 시장 생존이 어려워진 거시적 이유는 미국-중국 무역전쟁, 코로나19 장기화 등 불안한 국제 정세에 따른 중국의 정책 변화 때문이다.

고율 관세 부과로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전쟁으로 시작해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고, 홍콩 보안법을 비판하는 등 정치적 이념까지 개입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휴전과 전쟁을 반복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 불안한 입지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중국 영토 내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에 난처한 환경이 된 것.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지속됨에 따라 글로벌 주요 국가의 자국보호주의 성향도 심화됐다.

시진핑 주석은 올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공동부유(共同富裕: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라는 명목 하에 범국가적인 기업·시장·사회 규제 강화에 나섰다.

중국 사회주의를 표방한다는 의미에서 ‘홍색 규제’로도 불리는 이 정책은 절대 빈곤 해결 및 중산층 사회 진입을 위해 대기업의 소득을 분배하고 게임·연예계 규제, 사교육 시장 제한 등 사회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정풍(整風)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중 지난해 말 알리바바를 시작으로 높아지고 있는 기업 규제 강도는 중국 판호(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 금지 등 우리 기업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번 홍색 규제는 유통·관광 등에 한해 영향을 줬던 지난 2016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사태와 달리, 게임·연예분야를 넘어 핵심 부문인 제조업, 전자·정보통신업 등 전(全) 분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더 크다.

규제 강화와 더불어, 자본을 앞세워 R&D(연구·개발)를 강화해온 중국 자국기업들이 과거 월등하게 앞서있던 국내 기술력·품질의 격차를 좁혀 경쟁력을 확보한 시점이기 때문.

‘가성비’ 제품을 앞세워 삼성전자를 목표로 급성장하고 있는 샤오미와, 글로벌 IT기업으로 몸집을 키운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그 예다.

중국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타국과의 경쟁 또한 만만치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메모리반도체 대(對)중국 수출액은 283.7억 달러로 2018년 400억 달러 대비 29.1% 감소했다. 미국의 중국 무역규제로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한국산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감소한 것이 주 원인이었다.

그러나 전경련은, 같은 기간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자동차, 화장품 등 시장 점유율이 우리와 달리 상승한 점을 들며 중국 시장 업황을 고려하더라도 국내 브랜드 경쟁력이 다소 약화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중국한국상회 조사 결과(중국진출기업의 공급사슬, 경영환경 및 전망과 대응)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매출 감소원인으로 ▲현지 수요 부진(41.9%), ▲현지 경쟁 심화(18.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K-산업의 브랜드 입지가 위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현 시점 강력히 추진되는 공동부유 정책에 따라 향후 규제 심화·자국기업 제품 구매 수요 증가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생존 환경이 더욱 척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對) 아세안 투자 진출 동향. 그래프 KOTRA '2021 동남아대양주 진출전략' 보고서 [뉴스락]
한국의 대(對) 아세안 투자 진출 동향. 그래프 KOTRA '2021 동남아대양주 진출전략' 보고서 [뉴스락]
그래프 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뉴스락]
그래프 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뉴스락]

 

◆ ‘중국 대신 동남아’, 아세안 시장 진출↑

이러한 중국 시장의 업황은 우리 기업의 진출·투자 감소와 더불어 철수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나아가 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 각자도생에 나섰다.

기업들의 우선순위로는 동남아 시장이 꼽히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인건비, 공장설비 등 비용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중국 내 애국 구매 성향으로 2018년 중국 톈진 스마트폰 공장, 지난해 쑤저우 PC공장, 톈진 TV공장 등을 잇따라 중단한 삼성전자는, 현재 베트남 북부 박닌성, 타이응우옌성 스마트폰 공장과 호찌민 TV·가전제품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베트남 하이퐁, 인도네시아 찌비뚱, 땅그랑 지역에서 가전·TV 등을 생산하고 있다. 베트남은 15~29세 사이 노동인구가 많아 삼성과 LG의 가전 공장이 다수 분포돼 있으며, LG디스플레이 역시 하이퐁 지역에 1조6200억원을 투입해 OLED모듈 생산설비를 확충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역시 동남아 요충지로 인도네시아를 꼽고 서부 자바주에 완성차 공장을 지어 내년 1월부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LG에너지솔루션과 손잡고 올 4분기 중 서부 자바주에 1조1000억원 규모 배터리셀 합작공장을 착공할 계획이다.

게임업계에서도 판호를 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중국을 대신해 동남아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3분기 중 ‘진열혈강호’를 태국·베트남에 출시하는 엠게임과, 최근 베트남에 PC MMORPG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출시한 그라비티, 모바일게임 ‘클럽오디션’으로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성공을 거둔 한빛소프트 등이 그 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표한 ‘2021 동남아대양주 진출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 아세안 투자규모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 46.3억 달러로 전년동기 43억 달러 대비 7.1% 증가했다. 증가 추이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신규법인 수 기준(2020년 상반기)으로도 베트남(275건)이 미국(271건), 중국(119건)을 제치고 한국의 투자 진출 대상 1위국으로 떠올랐다.

KOTRA는 보고서를 통해 “동남아는 미-중 통상분쟁의 심화, 코로나19에 따른 GVC(글로벌 가치사슬) 인식 재고 등으로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 생산기지 분산·이전 대체지로 부상하고 있고, 미래의 주력시장으로 매년 급성장 중”이라며 “우리 기업들은 각국 정부의 포스트 코로나 주요 정책, 한국과의 경제협력 현안, 투자 기회 등을 주시하면서 지속가능한 상생협력 관점에서 접근하면 보다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락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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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기할 수 없는 中 시장, “정부 지원 속 기술력 향상 힘써야”

중국의 자국보호중심 정책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철수 또는 이전이라는 우회 방법을 택하고 있지만 이것이 ‘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시장이기에 언제가 됐든 다시 점유율을 회복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무역상대국가로서의 중국은 규모가 큰 중요한 시장인 만큼, 우리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 및 활동에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중국 시장 점유율 회복의 가능성도 중국 정부의 흐름에 밀접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2018년 개헌으로 연임 제한을 폐지하고 내년 10월 세 번째 연임에 도전하는 시진핑 주석은, 그동안 국제사회 주도권을 미국에 내준 것이 아니냐는 내부 비판을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때문에 재계 및 학계에선 시진핑 주석이 미-중 무역전쟁을 계기로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를 재정립해 내부 비판을 잠재우고, 이를 통해 연임까지 성공하기 위해 공동부유 정책을 더욱 강경히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새 인물에 대한 언급도 나오고 있다. 중화권 다수 언론을 통해 시진핑 수석의 후계자로 꼽히고 있는 인물은 왕양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중국공산당 서열 4위)이다.

33세에 안후이성 퉁링시장에 올라 일찍 정계에 입문한 그는, 50대에 당시 국가주석인 후진타오의 지원을 받아 중국 직할시인 충칭시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성(省)인 광둥성의 당서기(1인자)를 맡았다.

광둥성 서기 재임 당시 낙후 산업을 퇴출하고 고부가 가치 첨단 산업에 집중하는 ‘등롱환조(騰籠換鳥, 새장을 비우고 새로운 새를 채워 넣는다)’ 전략을 펼쳐 성공한 그는, 시장 자유 경쟁을 독려하는 ‘케이크 이론’을 주창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장주의 원칙을 고수하는데다 국내 기업과 인연이 있는 지한파(知韓派)로, 국내 기업 입장에선 왕 상무위원이 후계자로 거론되는 것이 반가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의 연임 의지가 확고한데다, 시 주석이 리커창 총리의 후임자로 왕양 상무위원 내정을 고심하고 있다는 여론도 확산돼 중국 정세의 흐름은 내년 10월 당 대회 전후가 돼야 확실한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가운데, 우리 정부 및 기관은 중국 진출기업에 대한 다방면의 지원책을 마련,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정민 KOTRA 아대양주팀 중국PM 부장은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KOTRA 역시 최근 중국의 적색 규제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우리 기업의 기회와 위기요인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준비 중”이라면서 “더불어 11월 1일부로 시행 예정인 중국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 중국 비즈니스를 하는 우리 기업들이 참고해 대응할 수 있도록 핸드북도 제작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년 말에는 ‘국가별 진출전략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올해 말에는 ‘2022년 중국시장진출전략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며, 내년 중국 시장 거시경제 전망과 유망 상품, 투자진출 동향과 유의사항 등 정보를 우리 기업들과 공유하고 있다”면서 “아울러, 중국의 규제 대상이 아니면서 성장이 유망한 분야에 우리 기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마케팅 사업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KOTRA는 중국 규제 대상이 아니면서 성장이 유망한 분야로 ▲반도체, 스마트솔루션 등 신인프라, ▲소비재 온라인마케팅, ▲혁신기술, ▲공중보건체계 구출을 위한 헬스케어, ▲녹색성장에 필요한 친환경설비 및 청정에너지, ▲스마트시티 건설 등에 대한 협력·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다.

또, 중국 정부의 신 SOC(사회기반시설) 육성정책 수혜 분야인 5G,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7대 산업에서 지방정부, 국영기업들과 우리 기업간 협력을 지원하고 있다.

산업계에선 이 같은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국내 기업 역시 자발적으로 기술력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재수 전경련 지역협력팀장은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과거 우리 기업은 중국의 저임금 이점을 활용하고 좋은 품질과 기술력을 토대로 중국 시장에서 많은 이익을 올리고 사업을 확장해왔지만, 현재 미-중 무역분쟁과 더불어 중국 자국 제품 경쟁력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녹록치 않은 업황은 향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럼에도 중국 시장 자체는 워낙 크고 성장 가능성 또한 높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고, 결국 중국 제품보다 한 단계 높은 기술력을 토대로 다시 한 번 차별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어 “기술력 차별화 과정에서 한국의 강점인 4차산업 관련 기술력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으며, 동시에 정부 또한 중국과 긴밀히 접촉·협력해 한중 FTA 2단계 등 마무리되지 못한 교역을 속히 매듭져 국내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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