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산업을 넘어 경제 전반에서 글로벌 규모 악재를 맞닥뜨린 2020년이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범국가적인 타격을 입은 가운데, 산업 중에서도 특히 중공업, 철강업, 자동차산업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모진 풍파로 기억될 2020년 한 해, 중공업 대표 기업들의 생존기(記)는 어땠을까.

<뉴스락>이 키워드를 통해 조명해봤다.

사진 각 사 제공. [뉴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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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여파, 실적 ‘웃고 울고’

코로나19 영향으로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단연 실적이다.

중공업 부문 1위 기업 현대중공업그룹은 2018년 매출 27조2566억원, 영업이익 8614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26조6303억원, 6666억원으로 하락세를 보이던 때 코로나19 악재를 만났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14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9% 줄었다. 누적 영업이익은 –2818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현대글로벌서비스 등 비정유부문 자회사가 이익을 개선하며 분전했지만, 주력 사업인 조선부문과 현대오일뱅크의 정유부문이 불가피한 타격을 입어 적자를 면치 못했다.

다만 현대오일뱅크는 3분기 영업이익 3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7% 감소했음에도, 전분기 대비로는 166.7%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 악조건 속에서도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6년 연속 적자가 예상되는 삼성중공업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 5조1656억원, 누적 영업손실 736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3분기 누적 매출 4조9895억원, 누적 영업손실 4380억원으로 적자폭이 확대됐다.

2015년 저유가에 따른 드릴링 시황 침체로 계약이 취소돼 쭉 재고로 남아있는 드릴십 5기에 대한 손실이 지속돼왔다. 5기의 계약가격 29억9000만 달러(3조240억여원) 중 절반도 되지 않는 10억1000만 달러의 선수금만 받은 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줄어 해양 시추시장이 추가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드릴십의 자산가치 하락분을 2분기 실적에 반영, 적자폭이 확대됐다.

산업은행 관리 하에 구조조정을 이어오다 지난해 1월 인수자 현대중공업그룹을 만난 대우조선해양은 원가 절감에 집중하며 실적 개선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3분기 누적 매출액 5조3654억원, 누적 영업이익 3860억원을 기록했다. 3분기 영업이익은 336억원으로 전년 동기 –2563억원 대비 흑자전환했으며, 자회사 대여금 500억원을 손상 처리해 3분기 당기순이익은 –292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총 부채를 지난해 말 대비 1조원 가량 줄여 부채비율을 200.3%에서 161.4%로 낮췄고, 코로나19 악재 속에서 연말 깜짝 연속 수주로 인해 연 목표액 72억1000만 달러의 70% 가량을 달성하는 등 실적 면에서 긍정적인 2021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 4차 산업혁명·친환경 등 ‘미래 생존 전략’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기업들의 전략은 같은 듯 다른 모양새다. 기계·중공업 부문에서 유사하게 나타났던 움직임은 사업 다각화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 기술, 그리고 친환경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前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부사장을 중심으로 ‘미래위원회’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는 등 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미래 3대 먹거리로 바이오, AI, 수소에너지 등 신사업을 선정했다.

2018년부터 ‘스마트중공업’을 주창한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독자모델 엔진 ‘힘센엔진(HiMSEN)’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해 기존보다 10% 이상 연료비 절감 효과를 내는 선박 운전최적화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지난해 KT와 손잡고 ‘5G 기반 스마트조선소’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바이오사업에선 카카오, 서울아산병원과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AI 기반 의료 빅데이터 사업에 진출했으며, 수소에너지 분야에선 세계 최초로 2만입방미터(㎥)급 상업용 액화수소운반선 인증을 획득하는 등 글로벌 기술력을 맹추격하고 있다.

이밖에 LG전자, LG유플러스, 한국투자증권, 동원그룹 등이 있는 ‘AI원팀’에 참여해 AI 인재 양성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고, 오는 2022년 말까지 판교에 그룹 통합 R&D 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 역시 친환경 선박 생산, 스마트조선소 구축 등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추기 위해 실적난 속에서도 기술개발 및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말 미국 연료전지 제조사 ‘블룸에너지’와 선박용 연료전지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22년까지 LNG선과 셔틀탱커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연료전지 핵심 기술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다.

높은 발전 효율을 가진 연료전지는 기존 내연기관용 선박 추진기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추진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 지난 7월에는 업계 최초로 미국 선급인 ABS와 ‘3D 모델 기반 선박 설계 승인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기존 2D 종이 도면 없이 디지털 형태의 3D 모델 기반으로 설계 검증과 승인 업무가 가능한 프로세스로, 증강현실 및 가상현실(AR/VR)과 쉽게 연동되는 등 업무 전반의 스마트화를 이끌어낸다.

이밖에 최근 저압 엔진(X-DF)용 LNG 재액화 시스템 ‘엑스-렐리’와, 원격자율운항 시스템(SAS)의 해상 실증시연에 성공하는 등 미래가치를 접목한 독자기술 개발에 연이어 성공하고 있다.

2018년 7월 업계 최초로 영국 로이드 선급으로부터 스마트 선박 사이버 보안 상위 등급을 인증 받은 대우조선해양은, 글로벌 엔진 업체들과 디지털 선박 엔진 솔루션 개발을 위한 기술 협약을 연이어 체결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HMM(옛 현대상선)과 협력해 스마트 선박 기술 개발 중이며, 지난 5월에는 독자 개발한 스마트십 솔루션 DS4(DSME Smart Ship Platform)를 HMM의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에 탑재했다.

친환경 선박에 부합하는 연료전지 개발을 위해 지난 9월 한화디펜스와 리튬 배터리 기반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개발에 나섰다.

또, 조선업계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선적작업을 선박 대 선박으로 진행하는 실증 테스트를 전 세계 최초로 시도해 성공했다. 이 과정이 상용화될 경우 화물창 안전성 검증 등을 위한 유류비, 인건비 등 많은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술력을 토대로 연말 초대형LPG운반선,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등 친환경 관련 선박의 수주를 따내는 뒷심을 발휘하며 총 40억6000만 달러(4조4335억여원) 수주, 올해 목표의 56.3%를 달성했다.

# 독자생존? 합종연횡? ‘M&A’ 행보

코로나19 타격을 최소화하고 미래사업을 대비하기 위해 기업들은 독자생존 또는 합종연횡(合從連衡)의 방법을 택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3월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체결한 후 경쟁당국 6곳의 기업결합심사를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 카자흐스탄의 승인을 받은 상태이며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EU(유럽연합)의 승인이 남은 상태다.

다만 이해관계자들의 현장조사가 코로나19 여파로 원활하지 않는 등 EU심사가 올해만 벌써 3차례 유예되고 있어 기업결합이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쟁국들은 양사 합병시 전체 선종에 대한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21%로 확대되고, 주목받고 있는 전 세계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점유율이 약 60%에 달하는 등 독점 여부를 우려하고 있어 판단에 시간이 더욱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현대중공업그룹은 계열사 현대건설기계의 시너지를 위해 최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에 참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기준 현대건설기계는 글로벌 건설장비 시장점유율 1.2%로 22위를 기록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할 경우 점유율이 4.5%로 뛰어 세계 6~7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내년 초 매각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지만, 국내 시장점유율이 약 60%를 넘김에 따라 독점이 우려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가 고비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삼성중공업은 적자 해소를 위해 M&A 없이 독자적인 자구안 실천에 집중했으며,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그룹 피인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실적 개선, 자회사 정리 등 주변 다듬기에 나섰다.

대우조선해양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자회사 신한중공업의 매각공고를 최근 냈다. 당초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외 자회사는 인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데다가 대우조선해양 전체의 부채비율과 몸집을 줄일 필요가 있어 자회사 매각이 시급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회사가 모회사 대우조선해양 매출에 의존하고 있거나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어 녹록치 않았다.

신한중공업 매각주관사로 회계법인 삼성KPMG를 선정한 대우조선해양은, 모회사 산하에 있을 때 투자매력을 앞세워 빠른 시일 내 나머지 자회사(삼우중공업, 대한조선, 대우조선해양산둥유한공사)를 시장에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 젊은·파격vs안정, MZ세대 고려한 ‘조직문화 개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좀 더 ‘젊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파격’ 인사를 단행한 기업이 있는 반면, 코로나19 위기 속 소극적인 인사를 단행한 기업도 존재했다. 조직구조 자체는 전반적으로 유연해졌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선 당초 오너 경영 체제 전환을 위해 광폭 행보를 보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 예상됐지만 불발됐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주요 계열사 사장 등 경영진을 모두 유임시키고, 이들과 함께 내년 경영계획을 조기 확정해 선제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술 인력(연구·설계) 직위 체계는 개편했다. 부장과 차장, 과장 직위를 책임 엔지니어로 통합하고 직급은 기존 부장급, 4급 등을 HL(현대중공업 리더)5~HL1로 변경했다. 다소 딱딱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중공업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삼성중공업은 구원투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내년 초 임기만료되는 남준우 사장을 교체하고, 정진택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코로나19 속 대부분의 기업이 안정을 추구했지만 연속 적자 속 변화가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진택 신임 사장은 내년 흑자전환 달성, 드릴십 재고 5기 처분 등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를 안고 있다.

수장은 교체됐지만 그 밖의 임원인사는 배진한 경영지원실장 부사장 승진, 전무 2명, 상무 3명 승진 등 회사 현황을 고려해 소규모로 실시됐다.

2018년 말 실시한 2019 임원인사에서 이성근 사장을 내정하고 부서장급 35%를 교체한 대우조선해양은 이듬해 연말 인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올해 말 실시하는 내년 인사도 아예 진행되지 않거나 소규모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과의 M&A가 현재 진행 중인데다가, 수주 잔량 축소에도 선박 수주가 올해 선방했고 코로나19라는 외부 요인이 작용한 점 등을 고려하면 기존 임원들의 유임을 통해 안정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조직체계는 수직적인 문화에서 탈피하고자 개편했다. 기존 6단계(4을 사원-4갑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로 운영되던 사무기술직 직위·호칭을 3단계(사원-선임-책임)로 간소화했다.

지속되는 고(高)직급화 현상에 따른 조직 활력을 회복하고 직위가 아닌 능력과 역할에 맞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겠다는 경영적 판단에서 비롯된 이번 개편은, 직위 제약 없이 후배 직원들에게 좀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과감히 부여해 향후 젊은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동시에 인사평가체계는 직위별 승격률에 따라 승격 여부를 정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승격에 해당하지 않는 책임 직위는 인사평가등급을 점수화해 누적된 결과로 보상하는 방식으로 정비했다. 인사평가 공정성 및 성과주의를 통해 동기부여를 강화하겠다는 목적이다.

업계에선 수직적인 문화라는 인식이 강했던 조선업의 이 같은 변화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른바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인재들과 융화되기 위한 유연한 움직임이라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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