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지난해 건설업계는 분양 시장 활황에 힘입어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다. 올해 역시 이러한 흐름과 함께 해외 건설수주 회복세로 전망이 밝다.

쾌조의 시작이지만 올해 건설업계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눈앞에 다가온 것.

이에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CSO(Chief Safety Officer, 최고안전책임자) 선임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를 통해 “CSO가 선임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CEO 등)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럼에도 이같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건설업계의 이러한 변화는 건설현장 근로자 사망사고 감소에 기여할 수 있을까.

건설기계·장비 및 동절기 붕괴 사망사고 사례. 고용노동부 제공 [뉴스락]
건설기계·장비 및 동절기 붕괴 사망사고 사례. 고용노동부 제공 [뉴스락]

 

‘사업주 처벌’ 강력 조항, 대형건설사 중심 안전조직 개편•CSO 선임 잇따라

상위 100대 건설사 사망사고 발생 현황. 국토교통부 제공. [뉴스락]
상위 100대 건설사 사망사고 발생 현황. 국토교통부 제공. [뉴스락]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발생시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로, 상시근로자 수가 500명 이상이거나 시공능력평가 200위 이내 건설사업자는 사망자가 1명 발생하거나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이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에 걸쳐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CSO를 선임하고 안전보건 조직 체계를 개편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종전 2개팀이던 안전환경실을 안전보건실로 확대하고, 산하에 안전보건 정책팀•운영팀•지원팀, 그리고 환경팀 및 3개 사업부별 안전보건팀 등 모두 7개팀으로 늘렸다.

특히 안전보건실로 하여금 전사적인 안전•보건 정책 수립부터 이행까지 담당하게 했으며, 독립적인 인사•예산•평가 권한을 가진 CSO를 신규 선임했다. 부사장급인 CSO는 안전•보건 업무를 총괄한다.

현대건설 역시 경영지원본부 산하 안전지원실을 안전관리본부로 격상하고 기존 안전관리본부장을 CSO로 임명했으며, GS건설은 CEO 직속으로 CSO를 배치해 CSO가 전사 안전보건 총괄 책임자로서 안전•보건 분야 관련 최종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도록 했다.

DL이앤씨는 준법경영실 산하 안전관리 조직인 품질경영실을 경영위원회 직속 안전지원센터로 재편했다. 토목·건축·플랜트 부문별로 안전관리 조직을 구축하고, 경영위원회 직속 안전지원센터가 관리하는 형태다. 각 사업본부장은 해당 본부의 CSO 역할을 맡도록 했다.

포스코건설은 3년 전 산하 부서 2개였던 안전보건센터를 올해 5개 부서로 키우고, 종전 안전보건센터장(CSO)을 직급과 관계없이 직책상 본부장급에 해당하는 지위로 격상했다.

이밖에 대우건설은 대표 직속 품질안전실을 안전혁신본부로 격상해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했으며, HDC현대산업개발도 안전경영실을 신설하고 상무급 임원이 이를 담당하도록 재편했다. 현대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 역시 CSO를 두고 있다.

10대 건설사 중 7개 이상의 건설사가 CSO를 선임했거나 지위를 격상시키고, 그밖의 건설사에서도 CSO 선임을 검토•고려 중이다.

건설사들은 회사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CEO가 안전보건체계를 완벽히 담당하기에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데다, 안전보건체계 강화의 일환으로 CSO를 선임한다는 목적이다. 실제로도 안전보건 총괄 책임자는 그간 건설업계에서 필수 인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CSO 선임이 유독 잦아지고 있고, 이에 고용노동부가 직접 “CSO가 선임돼 있다고 하더라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CEO 등)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공언했음에도 이 같은 움직임이 지속해 나타나는 데에는, 중대재해처벌법령의 모호한 해석에 따라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건설업계에서도 인지하고 있다는 대목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래서 경영책임자가 누구야"...모호한 법령에 해석 각각

지난 6월 10일 정몽규 HDC 회장이 광주 붕괴 참사와 관련해 사과하는 모습. 사진 광주광역시청 제공 [뉴스락]
지난 6월 10일 정몽규 HDC 회장이 광주 붕괴 참사와 관련해 사과하는 모습. 사진 광주광역시청 제공 [뉴스락]

근본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시행되는 것이지만, 사업주 처벌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동반하기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도 사업주 즉,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주목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에 따르면, ‘경영책임자등’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말하며, ‘공공기관·지자체의 장’ 또한 포함된다.

업계에선 정부가 CSO 선임을 통한 책임회피에 철저히 선을 긋고 있으면서도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결국 CSO에 해당할 수 있어 향후 다툼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CSO 선임이 꼼수라는 일각의 비판에도 업계에서 이를 철회할 수 없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고용노동부가 사업 또는 사업장 전반의 안전·보건에 관한 조직, 인력, 예산에 관한 총괄 관리 및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어야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건설업계 측에서 안전보건관리 기구가 CSO를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관리돼 왔다고 주장·증명하려 한다면 이 부분에서 또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책임자등에 포함되는 공공기관·지자체의 장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공공기관 발주 수행사업에서 총 244명의 근로자가 숨졌다. 공공기관 발주 현장 사망사고는 지난해 전체 현장 사망사고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적지 않은 비중이다.

그러나 정작 공공기관은 원청이 하도급을 맡기는 외주처 개념이 아닌 발주처로서 그 책임이 제한돼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전력 하청 근로자가 전기 연결작업을 하다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한전은 특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발주처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적절하게 행사하겠다고 밝혀 유족들로부터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뉴스락>이 남긴 "공공기관의 장 역시 예외없이 경영책임자로 지정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론 포함되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을 지배·운영·관리’하는 것은 발주처로부터 수주를 따낸 시공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이는 당초 원안에 기재된 ‘발주처까지 안전의무를 진다’는 조항을 고용노동부가 과잉이라며 삭제한 데 따라 빚어진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장이 발주처로서 중대재해처벌법의 범위에서 벗어나게 될 경우, 건설현장 사망사고를 줄이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근본적인 목적이 퇴색될 뿐만 아니라 건설업계 내부에서 ‘기업 죽이기’라는 볼멘소리와 CSO 선임을 인정하라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건설업계 울상, 업계 줄소송 우려도...“타협점 찾아야”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본사 사옥에서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가운데), 김준호 노조위원장(왼쪽), 김형진 대아이앤씨 대표가 함께 노사합동 중대재해 근절 협약식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건설 제공. [뉴스락]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본사 사옥에서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가운데), 김준호 노조위원장(왼쪽), 김형진 대아이앤씨 대표가 함께 노사합동 중대재해 근절 협약식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건설 제공. [뉴스락]

대형건설사에선 CSO를 선임하고 대형 로펌에 자문을 구하는 등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일부 중견건설사들과 중소건설업체들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대비한 안전관리자 고용·안전보건 의무 확대 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중견건설업계에선 아예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거나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상수 한림건설 회장, 최은상 요진건설산업 부회장, 태기전 한신공영 부회장, 권민석 아이에스동서 사장 등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구축됐다.

중견건설업계에선 오너가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모든 직무가 사실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표 부재 및 공백의 시기에 안전에 대한 우려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어, 해당 법이 책임회피가 아닌 안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지도록 현실적인 부분에서 업계-정부간 타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규모 사업장, 중소건설업계에선 이러한 대비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이상 기업 31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인 이상 100인 미만 기업의 77.3%가 비용 문제를 주된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 준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정부가 2024년 1월까지라는 추가 유예기간을 부여했지만, 당장의 자금력이 부족한 이들 기업이 2년 사이 충분한 대비를 하기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이러한 건설업계 동향과 현실을 종합해볼 때 기업규모를 막론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2022년 올해는 줄소송이 이어지지 않겠냐는 우려가 잇따른다.

다소 혼동이 있을 수 있는 법령의 해석과, 아직까지 관련 판례가 전무하기 때문에 ‘일단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사례가 이어질 것이란 시각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해석, 안전보건 의무의 범위, 인과관계 등을 놓고 업계와 정부간 중대재해처벌법 해석이 상이할 수 있어 재판부에서도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판례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방향성이 완전히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소송으로 비화될 만한 내용에 대해 업계와 정부가 심도있는 대화와 타협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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