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68년의 역사를 지닌 SUV명가 쌍용차동자가 신형 엔진을 달았다.  

긴 세월 동안 격정적이고도 암울한 긴 터널을 달려온 쌍용차가 최근 KG그룹에 인수되면서 18년만에 다시 국산 완성차기업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동안 이리저리 주인을 찾아 헤매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 쌍용차가 과거 SUV명가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이목을 끈다.

현재 국내외 자동차 시장은 혼돈이다. 국내는 현대와 기아차 중심에서 글로벌 완성차의 공격적인 진입으로 인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세계 무대에서는 수소, 전기차 등까지 가세하면서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쌍용차는 과연 옛 영광을 되찾고, 글로벌 무대로 진출할 수 있을까.  

<뉴스락>이 쌍용차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3회에 걸쳐 집중 조명해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제공. 

 

‘드럼통 버스’에서 태어난 쌍용자동차

연대별 대표 차종 및 배경 하동환자동차공업(주) 구로구 공장 전경. 쌍용차 자료 제공 [뉴스락 편집]

쌍용차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곳엔 ‘드럼통 버스’가 있다.

1954년과 1955년 쌍용차의 모태가 됐던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와 ‘신진공업사’가 설립된다. 두 회사의 창업스토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버스제작으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쌍용차의 전신이라 불리는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의 고(故) 하동환 한원그룹 회장이 일군 창업신화는 업계에선 이미 유명한 일화다.

자동차수리공장에서 일하던 당시 25살의 하동환 회장은 1954년 서울 마포구 창천동의 집 앞마당에 천막 공장을 짓고 ‘하동환 자동차제작소’를 설립했다.

하 회장은 물자가 부족한 전후 당시 미군이 철수하면서 버려두고 간 폐차에서 나온 엔진·변속기·차축 등 부품과 드럼통을 망치로 두드려 펴 겉을 씌워 ‘드럼통 버스’를 만들었다.

신진공업사도 미군 폐차의 섀시를 재생해 버스를 만들며 시작했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이 끝나고 전후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물려 망가진 경제와 인프라를 복구하기 위한 움직임들로 분주할 때였다. 이에 버스의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두 회사 모두 당시 시장수요를 재빠르게 읽고 나선 것이다.

SUV명가 쌍용차의 근간 신진과의 만남

버스 판매로 회사의 기반을 마련한 두 회사는 가는 길이 달랐다. 신진은 승용차 제작에도 눈을 돌렸지만 하동환 회장은 버스에 몰두했다.

먼저 하동환 자동차제작소는 회사설립 10년이 채 안 된 1963년 합병을 통해 동방자동차공업(주)로 상호를 바꿨다. 이후 1975년 주식 상장을 거쳐 1977년 동아자동차(주)로 상호를 변경했다.

같은 시기 신진공업사는 1966년 신진자동차공업(주)로 상호를 변경하고 1974년 AMC합작으로 신진지프자동차공업(주)를 계열사로 설립한다.

이 신진지프자동차공업이 지금의 SUV명가 쌍용차를 탄생시킨 실제 근간이다.

신진지프자동차공업은 1979년 ㈜신진자동차 상호를 거쳐 1981년 ㈜거화로 거듭난다. 거화는 동아자동차에 인수되기 전년도인 1983년에 지금의 쌍용차의 대표적인 브랜드 ‘코란도’를 만들었다.

특히 신진에서는 1969년 국내 최초 민간 지프차량을 만들어 판매했고 이를 전문적으로 기술개발·경영하기 위해 계열사(신진지프)로 빼냈으나 1984년 동아자동차에서 인수한 것이다.

이후 쌍용그룹에 동아자동차를 매각해 쌍용자동차의 탄생에 이르렀다.

하동환 자동차史 끝... 쌍용의 이름을 달다

연대별 대표 차종 및 배경 쌍용차 평택 공장 전경. 쌍용차 자료 제공 [뉴스락 편집]

1960년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버스의 70%가 하동환 회장의 회사에서 제작한 것이었을 정도로 시내버스 시장에선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마냥 평탄한 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1967년 상공부의 자동차 산업 계열화 정책으로 신진자동차의 계열사로 편입돼 신진이 생산하던 토요타 버스를 위탁생산 했다. 이 때문에 자체 모델 버스 생산은 중단됐고 시내버스 시장을 당시 새한자동차나 현대자동차 등에 내줘야했다. 이 기간만 무려 11년이다.

신진 계열사에서 독립해 동아자동차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미 높아진 시내버스시장 진입장벽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하동환 회장은 고속버스시장으로 눈을 돌려 활로를 찾았다.

하 회장은 거화(신진지프)를 인수한 후 인수 전부터 개발에 들어갔던 ‘코란도 훼미리’에 350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5공 정부의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에 의해 정부의 불허로 출시를 못하자 자금난에 시달려 결국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1986년 11월 동아자동차는 쌍용그룹에 200억원이 넘는 금액에 매각됐다.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쌍용그룹은 곧바로 1987년 영국 소규모 스포츠카 기업 팬더 웨스트윈즈를 인수했다. 기술연구소를 세우고 이듬해 공식적으로 쌍용자동차의 이름을 알렸다.

거화 시절부터 개발했던 코란도 훼미리가 쌍용의 품에서 6년만(1988)에 출시돼 실적을 올리나 싶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91년 현대정공에서 코란도와 유사한 모델인 갤로퍼를 출시해 코란도에 큰 타격을 입혔고, 쌍용의 시장 점유율은 1.6%에 불과했다.

당시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은 코란도가 시장에서 힘을 잃어가자 SUV가 아닌 승용차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92년 앞서 인수했던 영국 팬더 기업을 활용해 스포츠카 칼리스타를 출시하고, 밴츠와 기술제휴를 맺고 최고급 대형 세단 체어맨 개발에 나섰다.

쌍용차는 갤로퍼에 밀려 코란도의 부진한 실적으로 이어진 적자와 체어맨의 개발비 약 4500억까지 더해지면서 3조4000억원의 부채를 안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1997년 IMF가 터지자 당시 재계 6위 쌍용그룹은 공중분해 된다.

주인 잃고 팔려다니는 쌍용차... 국산완성차기업으로 돌아오다

쌍용차는 부채를 각각 반씩 부담하기로 합의하는 내용으로 대우그룹에 매각을 결정한다.

주인을 잃고 여기저기 팔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 이 때부터 시작이었을까.

1998년 1월 대우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했지만 1년만인 1999년 유동성 위기로 그룹이 해체되면서 쌍용차는 다시 주인을 잃어버렸다.

이후 2004년까지 약 5년의 워크아웃 기간을 견디며 상하이자동차그룹에 매각, 외제차(?)가 돼 버렸다.

상하이차에 인수된 쌍용차는 로디우스, 카이런, 액티언 등 출시하는 모델마다 모두 처참한 결과를 낸다. 특히 상하이차로부터 제대로 된 기술개발 투자를 받기는커녕 기술유출 사태만 벌어졌다.

불어나는 적자 탓에 쌍용차는 다시 자금난에 빠지게 되고 결정적으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발 세계금융위기가 닥쳐와 2009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쌍용차는 2년간의 법정관리 끝에 인도 마힌드라에 2011년 인수됐다.

이후 매출 증가와 적자폭 개선을 보여줬지만 2017년부터 1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에 더욱 적자폭이 커져 2020년 6월 마힌드라마저 끝내 경영권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쌍용차는 또 다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지난 3월 에디슨모터스가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인수대금 잔금을 납입하지 못해 무산됐다.

이후 지난달 KG그룹을 주축으로 한 KG컨소시엄이 인수대금 3655억원을 완납하고, 법원의 회생계획안 승인, 공정위의 기업결합 승인, 관계인집회 회생계획안 인가 등 쌍용차의 인수를 끝마친 상태다.

이로써 쌍용차는 18년만에 국산 완성차기업으로 돌아오게 된 셈이다.

쌍용차는 지난 7월 출시한 신형 SUV 토레스가 2개월 만에 6만대 이상 계약이라는 결과를 내면서, 이번 KG그룹의 인수와 함께 사업정상화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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