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관대함과 자비를 뜻하는 리니언시(Leniency;자진신고자 제재 감면)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20년을 넘었다. 지난 1997년 첫 도입된 이 제도는 담합 사건 등을 단속하기 위해 등장했다. 초창기만해도 ‘부당한 공동행위 자진신고자는 시정조치와 과징금을 감경 또는 면제해줄 수 있다’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례가 늘고 사건 자체도 복잡해지면서 현재는 2순위 신고자 과징금 50% 감경과 1순위 신고자 고발 면제 등으로 혜택이 강력해졌다. 적발이 어려운 사건에 적합한 제도로 인식돼 부동산 실거래가 단속에 이용되고 있으며 일명 ‘사무장병원’ 단속에도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해 담합 주도자가 제재를 감경받아 단순 가담자만 ‘뒤통수’를 맞는 부작용은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뉴스락>이 리니언시 제도에 대한 명과 암을 3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리니언시는 담합 적발에 매우 효과적이다.

담합사건은 피해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단서를 추적하기 찾기 어렵고 수법이 교묘하며 증거도 범행 직후 폐기되는 경우가 많아 적발이 무척 어렵다.

지난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된 담합사건 45건 중 27건(60%)이 리니언시를 통한 사건일 정도다.

그러나 리니언시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범죄 행위자에게 처벌을 면제해준다는 점에서 ‘정의에 반한다’는 것이다.

◇ 리니언시, 긍정 효과도 있지만  악용 사례도 늘어 

최근에 논란이 된 것은 유한킴벌리 사건이다.

유한킴벌리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23개 대리점과 함께 조달청 등 14개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한 마스크, 종이타월 등 41건의 위생용품 입찰을 담합해 지난 2월 공정위에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해 유한킴벌리 본사에 2억1100만원, 23개 대리점에 총 3억9400만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하지만 유한킴벌리 본사가 실제 납부할 과징금은 0원이다. 리니언시 때문이다.

유한킴벌리 본사는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해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스스로 신고했다.

대리점주들은 “본사가 정보를 준 것으로만 알았지 법률적으로 담합에 해당하는지 몰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특히 갑-을 관계인 대기업과 대리점 중 갑인 대기업이 사건을 주도해놓고도 자진신고로 제재를 피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컸다.

유한킴벌리는 “깊이 반성한다”며 “안타깝게도 당시 공정거래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알지 못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호남고속철도 입찰 담합도 주도자가 처벌을 피한 경우다. 이 사건은 국내 건설업계 담합사건 중 사상 최대 규모 과징금(4355억원)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 사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삼성물산은 아무런 제재도 입지 않았다. 나머지 업체들이 3천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내고 검찰 고발까지 당했지만 삼성물산은 ‘배신’으로 무탈했다.

가격 담합을 저지른 뒤 과징금을 면제받으려는 목적으로 리니언시까지 담합한 업체들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 2015년 10월 노래방 반주기업체인 금영과 TJ미디어에 과징금 48억95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앞선 2011년 두 업체가 노래방 반주기와 신곡 가격 등을 담합했다고 발표했지만 금영은 과징금을 100% 면제해줬고 TJ미디어는 절반인 7억7800만원만 부과한 바 있다. 자진신고 덕분이었다.

그러나 재조사 결과 두 업체는 가격에 이어 리니언시까지 담합한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과징금도 서로 나눠 내기로 합의했다. 이후 금영은 공정위에 가격담합을 자진신고했고 TJ미디어도 열흘 뒤 자수했다.

리니언시로 감면된 과징금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담합 기업들이 리니언시(자진신고자감면제)를 통해 감면받은 과징금이 5년간 8000억원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 6월까지 리니언시를 적용해 기업들이 감면받은 과징금은 8709억원에 달했다.

연도별 과징금 감면액은 2012년 1406억원, 2013년 1684억원에서 2014년 3551억원으로 크게 늘었다가 2015년 1204억원, 2016년 상반기까지는 864억원으로 집계됐다.

◇ 공정위, 리니언시 제도 개선 필요성 인정 

김상조 공정위원장도 리니언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법 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최종보고서’를 발표하며 리니언시 제도 개선에 대해 “검찰과의 협업체계에서 논의할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며 “면책을 어디까지 부여할 것이냐, 경쟁당국과 검찰 사이에서 어떻게 협업을 할 것인가를 현실을 감안해 선택할 문제”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리니언시 제도에 담합사건 적발을 너무 의존한다는 비판도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체 담합사건 중 리니언시를 이용해 적발한 사건은 10% 수준이었지만 2009년 이후 매년 절반 이상은 리니언시에 의존돼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담합 과징금으로 부과한 8819억원 가운데 무려 7492억원(80%)이 리니언시를 이용한 결과였다.

유의동 의원은 “리니언시가 시장점유율이 높은 담합 주범들에게 면죄부로 악용되고 있다”며 “리니언시 이외 담합 적발을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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