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1999년, 사촌형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양보한 정몽규 현(現)HDC그룹 회장이 현대산업개발로 왔을 때만 해도 “자동차 만들던 사람이 건설을 잘 할 수 있겠느냐”란 우려가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정몽규 회장은 ‘디자인 경영’을 중심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10위권 대형건설사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그런 정 회장에게는 또다른 꿈이 있었다. 사업 다각화를 통해 항공-호텔-유통-건설 등을 잇는 '종합 모빌리티그룹'으로 도약시키는 것.

이를 위해 최근 몇 년간 M&A(기업인수합병) 광폭 행보를 보여 왔고, 그 종착역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등 돌발 악재 파고를 넘지 못하고 끝내 좌초되고 말았다. 

더욱이 호텔, 면세, 유통, 악기 등 그의 손이 닿은 신사업의 업황이 녹록치 않은 가운데, 본업인 건설마저도 그리 밝지 않아 한때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 정 회장은 이제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오명을 쓸 위기에 놓였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사진 뉴스락 DB.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사진 뉴스락 DB.
◆ 호텔·면세·유통 등…종합 기업 위한 장기 계획, 항공 인수 건 좌초 ‘흔들’

현대산업개발 시절부터 일찌감치 사업 다각화에 관심을 보였던 정 회장은 2005년 호텔아이파크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파크 하얏트 서울’을 개관하며 호텔업에 뛰어들었다.

2011년 아이파크콘도 위탁 운영에 이어 2013년 ‘파크 하얏트 부산’까지 개관하며 업력을 쌓은 뒤 2018년 지주사 개편 과정에서 사명을 ‘호텔HDC’로 변경했다.

지난해 9월 지난해 9월 글로벌 그룹 하얏트 럭셔리 브랜드 ‘안다즈 서울 강남’을 압구정동에 위탁 운영 형태로 개관했다.

오랜 기간 영위해온 호텔업을 토대로 리조트 사업까지 확장했다. 지난 2017년 계열사 아이서비스(現 HDC아이서비스)를 통해 금호리조트가 보유하고 있던 충남 아산 ‘아산스파비스’를 400억원에 인수하고, 지난해에는 한솔 오크밸리를 인수해 HDC리조트로 탈바꿈했다.

백화점 사업은 2004년 시공을 맡았던 용산역 민자역사 쇼핑몰 ‘스페이스 9’가 손님몰이에 실패하자 이를 넘겨받아 2006년 현대아이파크몰(現 HDC아이파크몰)로 탈바꿈한 것이 시작이었다.

현대아이파크몰은 국내 1세대 복합몰이라는 상징성과 용산 재개발 프로젝트 등으로 성장세를 보였다.

2015년에는 면세 특허를 따낸 HDC그룹이 호텔신라와 50대50 비율로 HDC신라면세점(합작법인)을 만들어 아이파크몰에 입점하면서 유통-면세 라인의 시너지를 발생시켰다.

이밖에도 2006년 인수한 영창악기를 지주사 개편 과정에서 HDC영창으로 탈바꿈하고, 2018년 ‘부동산114’를 인수해 계열사로 두며 프롭테크(Prop Tech: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 시장에 진출하는 등 사업 다각화는 꾸준히 지속됐다.

그 후 정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이라는 최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하반기 M&A 시장에 나타난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2위 항공사라는 장점을 토대로 시장 내에서도 ‘올해 최대 매물’로 평가를 받았지만, 인수대금 약 2조원과 더불어 (당시 기준)부채 7조원, 부채비율 658.5% 등 막대한 비용이 예상돼 소위 ‘양날의 검’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으로 항공업이 불황이었던 점도 악재라면 악재였다.

그러나 정 회장은 2015년 선포한 ‘비전 2020(면세점 사업 진출, 글로벌 콘텐츠 강화, 국내 2호점 출점, 해외시장 진출 등)’을 토대로 유통-면세-호텔·리조트 사업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에는 항공업만한 게 없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HDC현대산업개발은 애경그룹, 사모펀드 KCGI 등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인 매각가를 써내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데 성공했다.

뉴스락DB
◆ 코로나19 악재, 정 회장 손닿은 사업 연쇄 영향…본업 부담 가중

항공업을 통해 다각화한 사업 전체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자 했던 정 회장의 꿈은 인수 결렬로 물거품이 됐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아시아나항공 인수 건은 물론, 그동안 펼쳐온 사업 모두에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주고 있다.

당초 지난 4월 유상증자 일정을 진행하고자 했던 HDC현대산업개발은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고 인수조건 재협의를 요청했다. 주식매매계약(SPA) 시점 대비 악화된 재무조건과 아시아나항공 측의 인수 가치 훼손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당시 부채비율 600~800% 수준이었던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4274억원의 영업손실과 함께 부채비율이 1386%까지 뛰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여파가 올해 1월부터 항공업계를 강타했다. 최근 국내 재확산 조짐과 해외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항공업의 전망은 올해만 어두우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이 몸집을 줄이고 화물운송 등 수익성에 집중해 올해 2분기 영업이익 1151억원으로 흑자전환하는 데 성공했지만,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4.7%나 줄었다. 부채비율은 2365.96%까지 치솟았다.

이에 최근까지만해도 인수 의지를 드러낸 정 회장 입장에서도 결국 인수 조건을 재점검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달 말 정 회장과 직접 만나 인수 대금 1조원 가량을 줄여주는 조건을 제안했지만, 지난 2일 현대산업개발이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역대급 M&A’가 사실상 결렬 수순을 밟았다. 

이밖에 정 회장이 오랜 기간 애착을 갖고 진행해온 호텔업도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녹록치 않은 상태다.

올해 4월 공시 기준 호텔HDC는 2019년 매출액 685억9770만원을 기록하며 전년 매출액 627억4872만원 대비 9% 가량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이 9억4268만원으로 전년 20억5321만원 대비 2배 이상 줄었다. 당기순이익도 7억7113만원으로 전년 18억1856만원 대비 2배 이상 줄었다.

유통·면세업을 담당하는 HDC아이파크몰과 HDC신라면세점은 2019년 영업이익이 각각 382억원, 107억원으로 2018년 대비 소폭 상승하거나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호텔롯데, 호텔신라 등 업계 상위기업들이 줄줄이 2분기 적자를 기록하면서 이들 기업에도 큰 후폭풍이 예상되고 있다.

신영증권은 리서치 자료를 통해 “HDC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여부와 별개로 HDC아이파크몰과 HDC신라면세점이 코로나19 여파로 실적 타격이 예상되고 있어 회복까지 일정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악기 사업을 영위하는 HDC영창마저 지난해 영업이익 10억6251만원을 기록하며 2018년 24억385만원 대비 2배 이상 줄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1억1874억원, 전년 2분기 6억2733만원 대비 81% 감소했다.

HDC영창 실적이 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나, 그동안 그룹이 유상증자 참여, 회사채 매수 등을 통해 수백억원을 지원한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이 가운데 본업인 현대산업개발의 상황도 만만치는 않다.

현대산업개발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조9580억원, 영업이익은 2824억원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0%, 영업이익은 4.4% 감소했다.

지난해 분양 목표 1만5900여 세대 중 6392세대 분양에 그친 현대산업개발은, 올해 상반기 분양 목표치 역시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대산업개발의 올해 7월까지 분양 실적은 4800~5000여 세대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올해 목표 1만9644세대의 24.4% 정도다.

분양 목표 달성의 열쇠로 여겨졌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사업(총 1만2032세대 중 현대산업개발 2742세대)의 분양 일정이 조합 내 갈등 등으로 기약이 없어지면서 초조함을 더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데다가 이로 인한 주택경기 위축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둔촌아파트 재건축 분양 일정이 올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준비로 지난해 대비 약 2배의 현금성 자산(2분기 기준 2조2760억원)을 보유하면서 단기차입금(2분기 8228억원), 부채비율(2분기 111.4%) 등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러한 변화가 회사에 당장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수 있으나, 본업 업황 불황과 다각화한 사업이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연쇄적인 재무부담으로 이어질 우려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올해 초 ‘HDC그룹 미래전략 워크숍’에서 “가보지 않은 길은 늘 낯설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 훈련을 하다 보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목표를 갖고 장기간 사업 다각화를 구상해왔던 그의 계획은 대내외적인 악재 속에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렬과 코로나19라는 큰 악재를 뚫고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오명을 떨쳐낼 수 있을까.

재계 비상한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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