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AI가 제약·바이오 산업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전 산업으로 확산된 AI 기술이 신약개발 과정에도 스며들며, 연구개발(R&D)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바꿔놓았다.
이재명 정부는 '글로벌 5대 바이오 강국 도약'을 국정 비전으로 내세우며, 바이오·AI 융합 산업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주요 제약사들 역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체 AI 시스템 고도화에 속도를 내며 기술 역량 강화에 나섰다.
정부의 투자 확대와 산업계의 전담조직 신설도 맞물리며, 제약 분야의 인공지능 기반 연구 전환이 본격화되는 흐름이다.
장밋빛 기대와 달리 세계무대와의 격차는 뚜렷하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AI를 임상 설계와 후보물질 검증 단계까지 확장하며 혁신을 앞당기는 동안, 국내 제약사들은 데이터 표준화 미흡, 임상 연계 인프라 부족 등으로 발목이 잡혀 있다.
격차는 단순한 기술 수준의 문제를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과제로 이어지고 있다. AI를 실험실의 기술에서 산업의 경쟁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토대는 여전히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AI 신약개발이 혁신의 도약대가 될지, 미완의 과제로 남을지 <뉴스락>이 현주소를 짚어봤다.

AI, 신약개발의 '시간과 비용' 전쟁 속 생존 전략으로
신약개발 시장이 '시간과 비용의 싸움'으로 바뀌면서 AI는 제약·바이오 업계의 생존 전략으로 부상했다.
AI는 후보물질 설계, 임상시험 효율화, 환자 맞춤형 치료 등 신약개발 전 과정에 적용돼 개발 기간을 줄이고 성공률을 높이는 핵심 기술로 평가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신약개발에는 평균 15년 이상이 걸리며, 1만여 개 후보물질 중 단 1개만이 성공한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보고서는 개발비용을 2~3조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시간'과 '비용'이 과중한 산업 구조 속에서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후보물질을 예측·검증하는 현실적 혁신 도구로 부상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는 생성형 AI 기반 신약개발이 연간 600억~1100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블록버스터 특허 만료와 임상 성공률 하락이 겹치며, R&D 생산성 제고를 위한 AI 도입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김화종 K-MELLODDY 사업단장이 '연합학습 기반 신약개발 가속화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을 받는 모습. 사진=심우민 기자 [뉴스락]](https://cdn.newslock.co.kr/news/photo/202510/117972_106907_5938.jpg)
정부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부터 2028년까지 총 348억 원을 투입하는 'K-멜로디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AI 신약개발을 국가 전략 R&D 모델로 육성하고 있다.
주요 과제는 후보물질 발굴과 데이터 표준화, 연합학습 플랫폼 구축으로, AI를 '연구 효율의 인프라'로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다. 정책적 지원을 기반으로 AI 신약개발은 기술 실험 단계를 넘어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으로 확산하고 있다.
AI가 '게임체인저'로 주목받는 이유는, 더 이상 혁신의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시장 생존의 필연성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윤희정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원은 "인공지능은 신약개발에 대한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개발 가속화와 신속한 규제 승인 등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며 "높은 성공률의 최적화된 제약개발을 위해 인공지능 접목이 필수적인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 AI 신약개발 전면전… 조직 신설·플랫폼 고도화 잇따라
![국내 주요 제약사 AI 신약개발 조직 및 플랫폼 현황. [뉴스락 편집]](https://cdn.newslock.co.kr/news/photo/202510/117972_107136_1815.jpg)
국내 제약업계는 AI를 신약개발의 핵심 경쟁력으로 삼으며, 조직 신설과 플랫폼 구축, 산학협력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AI가 더 이상 실험적 기술이 아니라, 연구개발(R&D) 효율을 높이고 임상 성공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최근 대형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AI 전담조직 신설이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회장 서정진)은 올해 상반기 신약연구본부 산하에 'AI 부트캠프'를 신설하며 자체 AI 신약개발 역량 강화에 나섰다.
'AI 부트캠프'는 AI를 활용한 신약 타겟 발굴 및 검증, 신약후보물질 도출 및 최적화, 의료·바이오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통한 제품 개발 지원 등을 담당한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체계를 구축하고 연구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대표 존 림)도 지난 상반기 'AI랩'을 신설하고, 인공지능 기반 신약개발 기업 스탠다임의 공동창립자였던 김진한 전 대표를 상무로 영입했다.
김 상무는 서울대 응용생물화학과와 컴퓨터공학 석사를 거쳐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AI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로, AI랩을 이끌며 위탁개발생산(CDMO) 공정 효율화와 데이터 기반 연구 고도화 등을 총괄할 것으로 보인다.
AI 플랫폼을 선제적으로 구축한 기업들은 고도화 단계에 진입했다.
대웅제약(대표 이창재)은 지난해 2월부터 자체 AI 신약개발 시스템 '데이지'를 기반으로 후보물질 발굴 속도를 높이고 있다.
데이지는 신약개발에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주요 화합물 8억 종의 분자 모델을 전처리를 거쳐 자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재료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내는 AI 신약개발 시스템이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4월 고려대 안암병원과 정밀 의료데이터 기반 AI 신약개발 협약을 체결하며 산학 협력 생태계도 확대하고 있다.
JW중외제약(대표 신영섭)은 지난해 8월 AI기반 통합 플랫폼 '제이웨이브'를 본격 가동했다.
제이웨이브는 JW중외제약이 자체 구축한 AI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기존에 운영하던 빅데이터 기반 약물 탐색 시스템인 '주얼리'와 '클로버'를 통합하고, AI 모델의 적용 범위를 대폭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박찬희 JW중외제약 CTO는 "앞으로 제이웨이브 가동을 통해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다양한 표적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대표 박재현)은 자체 보유한 AI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인 'HARP'를 통해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로 HARP를 활용해 개발 중인 비만치료제 후보 HM17321은 현재 미국 FDA에 임상 1상 진입을 위한 임상시험계획 신청을 마친 상태다.
동아에스티(대표 정재훈)는 산학협력 중심의 AI 연구 생태계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첨단융합학부와의 협약을 통해 AI 기반 신약개발과 연구데이터 디지털 전환을 공동 추진하며, 연구 인턴십과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정재훈 동아에스티 사장은 "AI는 신약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핵심 기술이다"라며 "서울대와의 협업을 통해 AI 기반 신약개발 속도를 높이고,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혁신 신약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의 AI 전략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조직과 플랫폼, 데이터를 아우르는 통합형 R&D 체계로 발전하고 있다.
각 사는 AI를 단순한 분석 도구가 아닌 R&D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개발 효율 개선과 비용 절감 효과를 가시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들은 고유한 기술력과 전략을 바탕으로 AI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있다"며 "연구개발부터 기술이전까지 연계 가능한 종합 체계를 점차 확보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AI 신약개발, 산업 기반은 여전히 불안정… 제도·인력 과제 산적

AI 신약개발이 글로벌 제약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가운데, 국내 현실은 여전히 세계 무대와 뚜렷한 간극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해외 주요국이 데이터 표준화, 전문인력 양성, 제도 정비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며 AI를 산업 인프라로 편입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기술 성과에 비해 산업 생태계의 기반이 미성숙하다고 진단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의약품평가연구센터는 지난해 제약사의 AI 활용을 단일 위원회가 관리하도록 감독 체계를 일원화했다. 올해 1월에는 '의약품 개발을 위한 AI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규제 의사결정에 활용되는 AI 데이터의 검증 절차와 품질 기준을 구체화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임상시험과 행정 절차를 전면 디지털화하며, AI 기반 임상 설계와 데이터 분석이 제약 없이 이뤄질 수 있는 제도 환경을 구축했다.
반면 국내 제약·바이오 데이터는 기관별로 흩어져 있고 형식도 파편화돼 있어, AI 학습에 필요한 표준화된 데이터 환경을 구축하기 어렵다. 개인정보 보호 규제와 검증 시스템 미비로 인한 실증 연구와 산업 전환 속도 역시 더딘 편이다.
이 때문에 국내 AI 신약개발은 개별 기업 중심의 제한적 연구에 머물러 있으며,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크다는 평가다.
김화종 K-멜로디 사업단장은 "향후 우리나라 신약개발의 핵심 동력 역할을 할 '신약 바이오 데이터 이니셔티브(DBDI)'를 설립해 제약사, 의료기관, 연구소 등이 보유한 민감한 바이오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공유·활용할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K-멜로디 프로젝트’와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가 348억 원을 투입해 추진 중인 'K-멜로디 프로젝트'는 연합학습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과 데이터 품질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국민 100만 명의 임상·유전체 데이터를 통합하는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과 연계해 운영되며 AI 신약개발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의 방향성은 긍정적이지만, 데이터 접근성과 규제 환경 개선의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의료데이터 활용에 여전히 규제 장벽이 높아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전문인력 부족 역시 AI 신약개발 확산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로 꼽힌다.
AI 신약개발을 위해서는 생명과학·화학·데이터사이언스가 융합된 전문 인력이 필수지만, 국내 연구 환경은 여전히 단일 전공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으며, 산·학·연 간 협력 생태계도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이다.
한편, 미국과 유럽은 인공지능 혁신 정책 기조에 힘입어 빅테크와 빅파마 중심의 AI 신약개발이 빠르게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화이자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해 AI 플랫폼 '복스(VOX)'를 구축하고 19개의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일라이 릴리는 오픈AI와 손잡고 항생제 내성(AMR) 극복을 위한 신규 항균제 개발에 나서며, AI를 신약 실험 전 과정에 적용하고 있다.
결국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사람과 제도의 전환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 한국 AI 신약개발의 가장 큰 족쇄로 지적된다.
김민석 한국보건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AI 활용 신약개발을 위한 데이터 협력 구조 마련 등 국가 차원의 제도적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며 "바이오·IT 융합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실질적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