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공교육의 주춧돌이어야 할 교과서가 사교육 현장에서는 불법 편집물의 원천이 되고 있다.
중·고등 교육의 기반이 되는 검정교과서가 민간 출판사의 고액 저작권료에 묶이면서, 중소 학원이나 에듀테크 기업은 합법적인 교재 제작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에 놓여 있다.
그 사이 비공식 교재는 관행이 됐고, 정부의 관리·감독은 비어있다.
학생들은 저작권 이용 허가 없이 제작된 자료로 수업을 듣는 상황이 반복되고, 학부모는 이를 교재비 명목으로 부담하는 왜곡된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교과서를 토대로 한 교재 제작이 일상화됐지만 법적 기준은 모호하고 관리 체계도 없다.
공공재인 교과서가 시장 논리에 갇히면서 그 충격은 고스란히 학습권과 공정경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뉴스락>이 그 실상을 들여다봤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여의도고등학교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 [뉴스락 편집]](https://cdn.newslock.co.kr/news/photo/202511/119831_108632_1857.png)
현장은 '사각지대'... 불법인지도 모르는 교재 제작 관행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전경. 사진=김상우 기자 [뉴스락]](https://cdn.newslock.co.kr/news/photo/202511/119831_108625_2032.png)
"이게 불법이라고요?"
서울 양천구의 한 학원 강사가 이렇게 되물었다. 내신 대비용 교재를 만들기 위해 교과서 내용을 요약하거나 편집해 사용하는 행위가 저작권 침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교과서를 기반으로 교재를 만드는 행위가 불법인지 몰랐고, 정부 기관으로부터 관련 안내나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강사 B씨도 "과목마다 차이는 있지만 내신 대비는 교과서를 바탕으로 문제를 제작하는 것이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겨져 왔다"며 "이게 저작권 침해라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교과서를 요약·편집한 교재 제작은 일상적이지만, 저작권 규정에 대한 안내 부재가 '모르는 불법'을 고착시키고 있었다.
학생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 군포시 고등학생 C양은 "선생님들이 나눠주신 유인물이 단순 요약 정리물이라고만 생각했다"며 "그게 불법인지 생각 해본적은 없다"고 말했다. 교재의 출처가 합법인지 여부를 따져볼 이유조차 없었다는 이야기다.
현장의 혼란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올해 7월 실시한 '2025 사교육 시장 내 저작권 침해 인식 수준조사'에서 학원 강사들은 저작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로 ▲ 관련 지식 부족(41.7%)과 ▲내가 사용하는 자료는 문제없다고 생각해서(37.5%)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학생들은 저작권 규정에 무관심한 이유로 ▲실제 피해나 처벌 사례를 본 적이 없어서(44.4%)와 ▲관심 둘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44.4%)를 가장 큰 이유로 지목했다.
강사와 학생 모두 '저작권 규정 자체를 모르거나', '현실적 필요에 밀려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과 제도적 사각지대가 맞물리며 더 심화되고 있다.
현행 저작권법 제25조는 '학교 수업 등 공교육 목적'에 한정해 교과서 활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사교육기관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는 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규정을 안내·관리하는 체계가 없어 사교육 현장 전체가 사실상 '무규제 영역'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또한, 대학 입시에서 내신이 결정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는 사교육 현장에서 교과서 활용이 더욱 필요해지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4학년도 4년제 대학 전체 모집 인원의 79.0%가 수시였고 정시는 21.0% 수준이었다. 오는 2027학년도에는 수시 비율이 80.3%까지 오를 전망이다.
내신 경쟁이 심화될수록 학생·학부모는 내신 관리를 위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학원들은 교과서 기반의 '내신 대비 교재'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정식 저작권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 구조는 이러한 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결국 비공식·불법 편집물의 반복적이고 무분별한 사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천만원대 장벽이 낳은 '합법의 실종'
설령 규정을 알고 있어도 현실적 장벽은 더 높다.
교과서 저작권을 가진 민간출판사들이 한 종당 수천만~억 원대의 연간 사용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정식 저작권 계약을 체결해 교재를 제작할 수 있는 곳은 매출 규모가 수천억 원대인 대형 교육기업에 한정된다.
따라서 중소 규모의 학원이나 개인 교습소는 접근이 어려워 교과서를 요약하거나 문제를 변형한 비공식 교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구조는 자본력에 따라 합법적인 교육 자료 접근권이 차별화된다는 점에서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료 부담이 가능한 대형 학원은 합법적이고 고품질의 교재를 제공하는 반면, 영세 학원은 법적 위험을 감수하며 비공식 자료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교육업계 관계자는 "영세 학원의 매출 규모를 보면 출판사가 요구하는 저작권료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며 "작은 학원은 합법적인 교재 제작을 시도하기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3개년 국내 사교율 참여율 및 총액. 출처=통계청 [뉴스락 편집]](https://cdn.newslock.co.kr/news/photo/202511/119831_108624_1848.png)
우리나라 교육이 사교육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사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교재 제작 문제는 학생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 은평구의 한 고등학교 교사 F씨는 "과거와 달리 사교육 의존도가 뚜렷하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현장에서 체감된다"며 "방과후 학교 참여 학생 수나 자율학습 인원이 예전보다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천억 원, 고등학생 기준 월평균 사교육비는 52만 원에 달한다.
참여율은 초등 87.7%, 중학교 78.0%, 고등학교 67.3%로 학습의 상당 부분이 사교육에서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의 핵심 자료인 교과서가 폐쇄적인 저작권 구조에 묶여 사교육 현장에서 불법 편집물로 소비되는 현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지적한다.
교과서 데이터에 대한 공식적인 접근이 차단되면 교육 콘텐츠의 다양성은 줄고, 비공식 자료는 품질 검증이나 책임 주체가 불명확해 교육 현장에 부담을 남긴다.
이는 단순한 시장 문제를 넘어 미래세대의 학습권과 교육의 공공성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교과서는 국가 교육의 핵심 기반이다. 현행 저작권 체계가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한채로 지속된다먄, 교육 자료 접근권은 자본력에 따라 나뉘고, 다양한 창작·교육 콘텐츠가 성장할 토양도 사라진다.
미래세대에게 더 넓은 선택지와 신뢰할 수 있는 학습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교과서 저작권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 교육업계 관계자는 "교과서 기반 창작물의 생산·유통이 제도적으로 가로막히면 학습권 침해와 자료 다양성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