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필사즉생(必死則生)'. 해마다 입시철이 다가오면, 이 말은 극단적 경쟁 속에서 버티는 학생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정시보다 내신 중심의 수시 비중이 꾸준히 확대되면서, 학생들은 내신 관리와 비교과 준비까지 떠안아야 하는 복잡한 전형 체계 속에서 과도한 학습 부담에 놓여 있다.

이런 가운데 입시 체제의 기반인 공교육 교과서 시장에서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1950년대 정부의 제작·배포 역량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검정교과서 제도'는 교육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명분 아래 민간 출판사의 참여를 크게 늘려왔다.

그 결과 오늘날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대부분이 민간 검정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공공재 성격이 강한 교과서 시장에 민간 출판사가 깊숙이 개입하면서, 교육의 공공성과 시장 논리가 충돌하는 구조적 한계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소수 출판사의 독·과점 구조가 심화되면서 실제 교육 현장에도 왜곡과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뉴스락>은 공공재인 교과서 시장에 민간 출판사가 참여하면서 발생한 구조적 한계와 그로 인해 제기되는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 [뉴스락 편집]

'공공재' 교과서 저작권, 어떻게 민간에 귀속됐나

최근 3년간 서울시교육청에서 들인 교과서 무상지원 예산 추이 그래프. [뉴스락 편집]

학생들의 창의성과 교육의 다양성을 확대하겠다며 도입된 검정교과서 제도가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검정교과서는 국가가 직접 집필·발행하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민간 출판사가 제작한 교과서 가운데 교육부 장관의 검정을 통과해 사용이 승인된 교재를 말한다.

문제는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 검정교과서의 저작권이 오롯이 해당 교과서를 제작한 민간 출판사에 귀속된다는 점이다.

일반 민간 저작물이라면 출판사 소유가 자연스럽지만, 검정교과서는 국고가 투입되는 공교육 교재라는 점에서 순수한 상업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교과서 무상지원을 위해 최근 3년간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왔다. 편성 내역을 보면 ▲2023년 167억 원 ▲2024년 183억 원 ▲2025년 225억 원으로 매년 지원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다만 전국의 예산집행 내역은 알 수 없었다. <뉴스락>이 교육부에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단위 예산을 질의했지만 "취합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교육부가 수행하는 검정 절차 과정에도 국고가 들어간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검정 심사 운영비만 7억 3800만 원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세금이 포함된 검정교과서의 저작권료는 민간기업이 임의로 책정하는 구조다.

이는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와 사교육비 상승으로 이어지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교습소ㆍ학원ㆍ에듀테크 기업 등 학생들의 내신 대비를 지원하는 중소 교육업체는 검정교과서를 활용한 콘텐츠나 2차 저작물을 제작하려면 반드시 출판사로부터 이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교과서 한 권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저작권 이용료가 요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처럼 과도한 비용 구조는 학원가와 에듀테크 업계에 ▲불법 교재 제작·판매 ▲학습 콘텐츠 다양성 제한 ▲교재비·학원비 상승 등 복합적인 문제를 낳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되고 있다.

최봉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국가유산관리학과 교수는 "출판사가 제시하는 터무니없는 교과서 저작권료는 학생들의 학습 다양성, 사교육비 상승, 시장의 공정 경쟁을 모두 저해시키는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부처 모두 '침묵'... 검정교과서 시장, 사실상 '무정부'

검정교과서 파생 문제에 대한 정부 부처별 입장. [뉴스락 편집]
검정교과서 파생 문제에 대한 정부 부처별 입장. [뉴스락 편집]

검정교과서 제작을 민간 출판사에 맡긴 이후 수십 년간 누적된 문제들에 대해 정부와 관련 부처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어느 기관도 구조적 문제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거나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우선 교육부는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과 교육 다양성 확대를 핵심 책무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교육비 경감과 에듀테크 생태계 조성이 필수지만, 검정교과서의 과도한 저작권료는 교육업체의 콘텐츠 제작 비용을 높여 학원비ㆍ교재비 인상으로 직결된다.

지난해 교육부가 '공교육-에듀테크 선순환' 모델 구축을 정책 과제로 내세웠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고비용 구조가 신규 업체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검정교과서 저작권료가 대형 출판사 중심의 독점 구조를 강화하고 있음에도, 교육부는 그 심각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해당 사안은 아직 교육부가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부분으로, 출판사별로 책정한 저작권료가 다르기 때문에 적정성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교육부는 현재 저작권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 권한이 없으며, 재산권 관련 공적 규제가 필요하다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법률 개정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교과서 저작권 관리·감독을 책임져야 할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현장 대응에 한계를 보인다.

문체부 광고·저작권 보호과는 불법 참고서 유통 실태를 파악하고 단속해야 하는 기관이지만, 전국 학원을 대상으로 한 실질적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문체부 관계자는 <뉴스락>에 "무단 복제된 참고서 유통을 일일이 적발하기 어렵고, 학원에 예고 없이 들어가 캐비넷을 조사하는 등 강제 조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사교육 현장에서 무단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돼 실태조사 필요성이 공식 제기됐지만, 조사는 올해 하반기에야 뒤늦게 실시됐다.

문체부 산하 한국저작권보호원은 올해 처음으로 사교육 시장의 저작권 이용실태를 조사했고 이번달 초 ‘사교육 시장 내 저작권 침해 인식 수준 조사’ 보고서를 발행했다.

보호원 관계자는 <뉴스락>에 "해당 보고서는 향후 저작권 전반에 대한 제도 개선 및 정책 마련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교과서 저작권료가 대형 출판사 중심의 '독과점 시장 구조'를 만들고 있음에도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 출판사가 제시하는 이용료가 시장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로 인해 형성된 독점적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분석되지 않은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뉴스락>에 "교육 시장에 대한 충분한 시장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단계라 어떤 분석이 필요한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다만 특정 기업의 독점력이 강화될 경우, 규제 개선이나 진입장벽 완화 등으로 시장 구조를 조정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의 성장과 보호를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도 마찬가지로 해당 사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검정교과서의 높은 저작권료 문제는 중기부가 다루는 불공정거래 범위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며 "관련 사안을 담당하는 부서 역시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과서 저작권료가 중소 교육업체의 사업 진입을 막는 명백한 장벽임에도 중기부는 이를 '자기 부처 이슈'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유관 부처의 장기적 방치와 부처 간 책임 공백이 검정교과서 시장의 구조적 왜곡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은 60년 전에 정비했는데… 한국만 멈춘 검정교과서 제도

한국과 일본의 검정교과서 저작권 이용 구조 비교표. 출처 : '국내 교과서 저작권료의 추정과 정책적 시사점' 논문 [뉴스락 편집]

검정교과서 제도는 도입 이후 수십 년 동안 여러 차례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정부와 유관 부처가 이를 체계적으로 점검하거나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못하면서 모순이 고착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교육의 핵심 교재를 민간 기업에 위탁할 당시부터 충분히 예견될 수 있었던 저작권 분쟁과 시장 독점 위험을 정부가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외 제도와 비교하면 대응 속도와 정책 완성도에서 큰 차이가 드러난다.

일본은 1965년 교과서 저작권 침해 실태를 확인한 직후, 정부 주도로 '일본교과서저작권협회(JATEXT)'를 설립해 체계를 신속히 정비했다.

협회는 각 발행사의 교과서 저작권을 신탁받아 통합 관리하며, 참고서·시청각교재 등 2차 제작물을 만들려는 업체에 합리적인 이용료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이용 허가를 내준다.

실제 이용료 체계도 한국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국내 교과서 발행사가 요구하는 저작권 이용료는 11.5~21.5% 수준으로 추정되는 반면, 일본은 4~7% 수준에 불과하다.

최소 2.3배, 많게는 4.7배까지 국내가 더 비싸다는 의미다. 일본은 여기에 더해 교과서 이용료의 상·하한선을 명확히 설정해 누구나 일정한 비용으로 교과서 기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도화해 왔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일본의 참고서·문제집 시장은 다양성과 경쟁이 유지되며, 이는 곧 학생들의 선택권 확대와 콘텐츠 품질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검정교과서 제도 도입 후 나타난 문제들을 정부가 제때 후속조치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왜곡이 누적돼 왔다.

출판사의 저작권 독점 구도가 굳어지고, 교육업체의 합법적 콘텐츠 제작은 갈수록 어려워졌으며, 그 결과 학생·학부모의 부담은 더 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초기 대응 부재가 누적되며 이제는 구조 개선 없이는 시장 왜곡을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며 "정부 차원의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미니 인터뷰] 최봉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국가유산관리학과 교수

저작권 독점 깨고 보상금 제도 도입해 시장 정상화해야

최봉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국가유산관리학과 교수.

최봉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국가유산관리학과 교수('국내 교과서 저작권료의 추정과 정책적 시사점' 저자)는 우리나라 검정교과서 제도의 본질적 한계를 '민간 출판사 중심의 저작권 독점 구조'로 규정했다.

그는 교과서 채택 과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특정 대형 출판사 중심의 과점으로 수렴되고, 이 과정에서 교과서 기반 파생산업까지 독점화되는 현상이 고착화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다른 출판사나 에듀테크 기업은 참고서·문제집 제작을 위해 반드시 이용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출판사가 과도한 사용료를 요구하거나 허락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가 많아 신규 사업자 진입이 사실상 봉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과서 발행사 또는 그 자회사가 만든 참고서가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게 되고, 학생들은 '선택권 축소'와 '품질 저하'라는 이중의 피해를 겪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교과서 제작 과정에 적용되는 '보상금 제도'가 오히려 역설적 모순을 만들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출판사는 외부 저작물을 교과서에 사용할 때 규정에 따라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에 보상금만 내면 되지만, 정작 그 교과서를 사용하는 외부 업체에는 자신들이 지불한 금액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이용료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공익성을 이유로 저작물을 저가로 사용하면서, 외부에는 고가의 이용료를 책정하는 불균형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구조는 온라인 강의 시장에도 그대로 전가된다.

대형 교육업체가 교과서 기반 강의를 개설하려면 출판사가 요구하는 수십억 원대의 사용료를 부담해야 하고, 이로 인해 매년 법적 분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적정 사용료를 산정하기 어려워 양측에 합의를 권고하지만, 출판사의 요구가 과도해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고 그 부담은 결국 학부모와 학생에게 전가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최 교수는 일본 사례를 들며 "한국은 개별 출판사에 저작권이 집중돼 시장 왜곡이 심각한 반면, 일본은 국가가 이용료를 표준화해 누구나 합리적인 비용으로 교과서를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근본적 해결책은 저작권법 개정이며, 교과서의 공익적 성격을 명확히 반영해 교과서 이용에도 '보상금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게 되면 독점이 완화되고 다양한 참고서ㆍ문제집이 시장에 다시 등장하며 교육 현장의 선택권과 콘텐츠 품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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