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재계가 연말을 맞아 정기 임원인사에 한창이다.

3년차 코로나 팬데믹, 4차 산업혁명으로의 대전환 등 내년 굵직한 과제가 상존해 있는 가운데,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예년보다 빠르게 내년을 함께할 구성원을 물색하면서도 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다음해 전략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예고편’ 연말 임원인사. 각 기업은 어떤 전략을 구상했을지 키워드를 통해 알아본다.

이재용 부회장. 삼성전자 제공. [뉴스락 편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 제공. [뉴스락 편집]

삼성전자…‘뉴 삼성’, ‘인사 혁신’, ‘이재용 체제’

이르면 12월 1일 정기 임원인사가 예고돼 있는 삼성그룹은 올해 괄목할 만한 실적을 냈음에도 ‘뉴 삼성’을 위한 인사 혁신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발표한 인사제도 혁신안을 통해 ‘부사장, 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하고,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을 폐지하는 등 나이와 관계없이 젊은 경영진을 조기 육성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또, ‘사내 FA(Free-Agent) 제도’를 통해 타 부서 이직을 공식화하고, 국내 및 해외법인 인력간 상호 교환근무, 주요 거점 공유 오피스 설치, 절대평가·수시 피드백 등 성과관리체제를 도입해 성장하는 인재양성에 본격 나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이 같은 혁신안은 올해 사상 최대 매출 경신이 유력함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축보다는 조직 쇄신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미국 출장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니 마음이 무겁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 측근이자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된 김기남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부회장, 김현석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고동진 IT·모바일(IM)부문 사장 등이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실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기 때문에 큰 틀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석방자 신분인 이 부회장이 공식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수장 교체까지 단행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장급 인사 규모는 작년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젊고 우수한 인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사장급을 포함한 부사장급, 임원급에서 얼마든지 파격 인사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연말 임원인사에선 인적 쇄신 외에도 사업부문별로 나뉘어진 사업지원(삼성전자), 금융경쟁력 제고(삼성생명), EPC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3개 TF(태스크포스)를 통합한 ‘콘트롤타워’ 신설도 논의되고 있으나, 자칫 과거 ‘미래전략실’의 부활로 오인될 수 있어 신중한 상태다.

재계는 삼성의 본격적인 인사 혁신의 시기를 내년 상반기 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의 완전 석방 시기가 그쯤인데다, 최근 발표한 인사제도 혁신안이 자리잡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그러면서도 미중 무역갈등, 글로벌 반도체 1위 대만 TSMC의 사업 확장 등 글로벌 업황이 치열하고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년 말이 아닌 상반기를 기점으로 한 차례 인적 쇄신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현대차그룹…‘안정감’, ‘능력 중심’, ‘신사업’

12월 초중순께 연말 임원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이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정의선 회장이 취임 이후 임원 대거 교체, 조직 개편을 시행해왔기에 올해 대규모 인적 쇄신은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시 정 회장은 부회장단 규모를 축소하고, 장재훈 사장 등 본인이 신임하는 인력을 대표이사진에 배치하는 등 임원급에 한 차례 메스를 댄 바 있다. 올해는 기술력 또는 능력 위주의 실무진 선임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주요 임원 중에선 유일한 MK세대(정몽구 명예회장 측근)인 윤여철 정책개발담당 부회장의 거취와, 현대차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을 만들어 성공한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 사장이 그룹 최초 외국인 부회장이 될 수 있을지 등이 관심사다.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기아의 송호성 사장과, 현대제철의 안동일 사장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돼 이들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조직 개편 또한 현대차그룹이 그간 정기 임원인사와 관계없이 상시적으로 단행해오고 있어 크게 점쳐지는 것은 없다.

지난 19일 현대차그룹은 수소연료전지담당 부서를 신설하고 기존 연구개발본부 부본부장인 박정국 사장을 연료전지 개발의 최고 사령탑을 임명했다. 기존 연료전지사업부는 개발과 사업 조직으로 나눠 각각 김세훈 부사장, 임태원 전무에게 맡겼다.

재계 관계자는 “성과를 중시하는 정 회장 특성상 미래차와 관련된 인력의 능력 위주 배치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SK그룹…‘ESG’, ‘최재원 복귀’, ‘미래 맞춤 조직 개편’

그간 12월 첫째주 목요일 연말 임원인사를 단행해온 SK그룹의 인사 예정일은 내달 2일이다.

올해부터 SK그룹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의 일환으로 각 계열사 이사회에 CEO(최고경영자)의 평가 및 보상 권한을 부여해 계열사별 임원인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대규모 인적 쇄신은 거론되지 않고 있으나, 이사회 평가에 따라 CEO 교체도 단행될 수 있다.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둔 CEO가 소속된 계열사는 SKC, SK케미칼,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이다.

이번 인사에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이자 지난달 말 취업제한이 풀린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경영복귀 여부가 가장 큰 관심이다.

최 부회장은 2014년 계열사 펀드 출자금을 선물옵션 투자에 유용한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6년 가석방돼 5년간 취업제한 조치를 받았고, 최근 해제됐다.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를 겸하고 있어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고, 최 부회장의 그룹의 주요 신사업인 배터리, LNG(액화천연가스) 등 분야의 전문가였음을 감안하면 이번 인사에서 복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분석이다.

최 부회장은 취업제한 기간 동안 지주사 ㈜SK와 에너지·가스 계열사 SK E&S에 미등기임원으로만 등록돼 있었다. 때문에 복귀하게 된다면 계열사로는 SK E&S가 유력한 상태이며 SK이노베이션도 거론되고 있다.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의 자녀이자 최태원 회장의 조카인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의 승진 여부도 관심이다. 최신원 전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사임을 결정함에 따라 조기 경영승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큰 그림’, 조직 개편도 기대를 모은다. SK는 최근 SK텔레콤 분할을 마무리하고 유영상 CEO의 사장 승진 및 분할회사 SK스퀘어 인사를 선제적으로 단행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 SK온과, SK머티리얼즈 분할합병 등 신성장사업에 발맞춘 조직 개편도 진행 중이거나 마친 상태다.

최태원 회장은 글로벌 현지 이해관계자들의 공감을 얻는 ‘윈윈(win-win)형’ 사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글로벌 스토리’를 강조해왔는데, 이러한 방향에 따라 최 회장이 주력하고 있는 북미 지역을 포함한 글로벌 사업 총괄 본부 신설의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LG그룹…‘젊음’, ‘최대 규모’, ‘변화와 안정’

LG그룹은 재계 5대 그룹 중 가장 빠른 지난 25일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변화와 안정을 동시에 꾀하기 위한 대규모 젊은 인력 확보’로 요약된다.

그룹 2인자인 권영수 부회장이 LG에너지솔루션 CEO라는 중책을 맡으면서, 권봉석 LG전자 사장이 부회장 승진과 함께 ㈜LG COO(최고운영책임자)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로써 LG그룹은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함께 4인의 부회장단을 구성했다.

LG전자 CSO(최고전략책임자)를 맡아온 조주완 부사장이 사장 승진 및 CEO로, S&I코퍼레이션은 이동언 부사장을 CEO로, LG스포츠는 김인석 부사장을 CEO로 임명하는 등 3곳의 계열사 CEO가 교체됐다. 나머지 계열사 CEO는 모두 유임됐다.

LG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신규 임원 132명을 포함해 총 179명을 승진시켰다. 내년 취임 4주년을 맞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체제에서 가장 많은 숫자인 만큼, 안정 속에서도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상무, 전무, 부사장 등 실무진에선 신규 임원 중 40대가 82명(62%)을 차지하며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었다.

1980년생으로 최연소 임원인 신정은 LG전자 신임 상무는 차량용 5세대 이동통신 텔레매틱스를 선행 개발해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했다. 이밖에도 여성 임원인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와, 글로벌 기업 P&G 출신 김효은 상무를 영입하는 등 외부 인력도 과감히 영입했다.

성과주의에 입각해 각 계열사의 독립경영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구 회장은 그룹 콘트롤타워인 ㈜LG의 역할을 확대하는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LG COO 산하에 미래성장동력 사업을 발굴하는 경영전략부문과, 경영관리체계 고도화를 맡을 경영지원부문을 신설해 각각 홍범식 사장(LG 경영전략팀장), 하범종 CFO(최고재무책임자, 사장 승진)에게 맡겼다.

재계 관계자는 “지주사가 그룹의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M&A(인수합병) 및 투자처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조직 개편”이라며 “동시에 혁신을 이끈 유능한 젊은 실무진에게 승진이라는 보상을 내려, 내년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유연한 대처를 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뉴스락 DB

롯데그룹…‘파격’, ‘조직 대개편’, ‘순혈주의 타파’

롯데그룹 역시 LG그룹과 동일한 25일 오후, 롯데지주를 포함해 계열사 38개 각 이사회를 열고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순혈주의 원칙을 깨고, 조직 개편과 그에 맞는 외부 인재 영입에 집중한 것으로 요약된다.

먼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체제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사업 부문(BU·Business Unit) 조직을 폐지하고, 헤드쿼터(HQ·HeadQuarter) 체제를 도입했다.

유통/화학/식품/호텔·서비스 등 4개로 나뉘었던 BU 조직은, 전체 사업을 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 등 6개 유형으로 분류해 이 중 주요 사업군인 식품/쇼핑/호텔/화학 사업군의 HQ 조직을 갖춰 1인 총괄대표가 이끌도록 했다.

HQ는 기존 BU 대비 실행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사업군별, 계열사별로 시너지 및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총괄대표 중심으로 운영돼 보고체계 간소화 및 빠른 의사결정을 도모한다.

각 HQ별 자율경영,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재무와 인사 기능도 보강해 통합시너지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

롯데지주는 그룹 전체 포트폴리오 고도화, 미래 신사업 추진 등 지주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도록 하고, 지주사-HQ-계열사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 산하 사업지원팀을 신설했다.

조직 개편과 함께 각 분야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재를 적극 영입했다.

글로벌 기업 P&G에 이어 홈플러스 부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는 김상현 대표를 신임 유통군 총괄대표(롯데쇼핑)로 영입했다. 국내외에서 쌓은 전문성과 이커머스 경험 등을 바탕으로 위기에 놓인 롯데그룹의 유통부문 재건을 도모하고 있다. 유통군 총괄에 ‘롯데맨’이 아닌 외부 인사가 임명된 것은 1979년 롯데쇼핑 출범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신임 호텔군 총괄대표(호텔롯데)로는 안세진 전 놀부 대표이사가 영입됐다. 안 신임 대표는 LG그룹, LS그룹 등에서 신사업을 이끌어온 전력이 있다. 기존 유통, 호텔BU장이었던 강희태 부회장과 이봉철 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밖에도 신세계 출신이자 2019년 롯데GFP 대표를 맡은 바 있는 정준호 대표에게 신임 백화점 사업부 대표를, 이베이코리아 출신의 나영호 부사장에게 이커머스 사업부 총괄을 맡겼다. 식품군 총괄대표는 식품BU장이었던 이영구 사장이 맡게 됐다.

화학군 총괄대표에는 코로나 팬데믹에도 실적을 회복한 김교현 사장이 부회장 승진과 함께 내정됐고, 롯데지주 대표를 맡은 이동우 사장 역시 그룹 신성장동력 발굴 능력을 인정받아 부회장 승진했다.

롯데그룹은 성과주의 기조에 따라 혁신을 위해 신규 임원 및 승진 임원 규모를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늘렸다. 5대 그룹 중 상대적으로 변화가 늦다는 외부 지적에 따라, 신동빈 회장이 내년을 반등의 해로 삼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그룹 측은 “파격적이고 전방위적인 인재 영입과 성과주의 원칙에 입각한 승진 인사”라며 “조직 개편도 단행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그룹 경영관리 체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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