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한국의 숙원 사업이던 핵추진 잠수함 보유에 청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경주 APEC 정상회담에서 핵잠 연료 공급을 요청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루 만에 전격 승인하면서다.

하지만 '자주국방'의 꿈이 실현된다는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잠은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는 조건을 내걸면서다.

이번 합의가 그의 국정 과제인 '미국 조선업 부활(MASGA)'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핵잠 프로젝트는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휩싸였다.

<뉴스락>은 한미 정상의 전격적인 합의 배경과 각국의 복잡한 셈법을 짚어봤다.

챗GPT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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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핵추진잠수함 도입 '청신호'...건조 장소 놓고 韓美 셈법 엇갈려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경주 APEC 정상회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뉴스락]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경주 APEC 정상회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뉴스락]

한국의 숙원 사업이던 핵추진 잠수함(핵잠) 보유가 마침내 가시권에 들어왔다.

지난달 29일 경주 APEC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핵잠 연료 공급을 요청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루 만에 전격 승인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건조 장소로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를 지목하면서 양국 간 미묘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이번 합의는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핵연료 공급을 공식 요청하며 급물살을 탔다.

이 대통령은 "기존 디젤 잠수함은 잦은 부상으로 수중 작전 시간이 제약되고 소음 문제가 커, 은밀한 감시·추적 임무 수행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국의 기술력으로 핵잠을 건조하는 것이 동북아에서 미군의 방어 부담을 덜어주는 상호 이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한국은 핵추진 잠수함을 바로 여기 훌륭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는 그의 핵심 국정 과제인 '미국 조선업의 부활(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정책과 맞닿아 있다.

지난 4일 열린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합의 내용을 재확인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이번 합의를 "역사적 거래"라고 평가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한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군 당국에서 최선을 다해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핵잠 보유를 위한 양국 간 협의는 공식적으로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교수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미국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확실한 실익과 명분을 챙겼다"면서 "우리 역시 '에너지 안보'라는 실리와 국가 안보를 함께 보장받게 된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필리조선소' 카드, 韓 핵잠 건조의 '독이 든 성배' 될까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 한화필리조선소를 방문한 주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화그룹 제공 [뉴스락]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 한화필리조선소를 방문한 주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화그룹 제공 [뉴스락]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필리조선소 건조' 방안은 현실적인 난관에 직면해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필리조선소의 법적 지위와 실질적 역량 문제다.

현재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이 지분을 보유한 필리조선소는 상선 등을 건조하는 일반 조선소로, 방위사업체가 아니다.​

핵잠을 건조하려면 미국 정부로부터 방위사업체 지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미 연방정부와 의회의 강력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이는 한화의 경영권 행사를 제약하고, 핵잠의 주요 설계나 원자로 탑재 구조 결정 등 핵심 과정마다 미국 측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상 '한국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미국 기술에 종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필리조선소의 잠수함 건조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현재 미국 내에서 핵잠을 실제로 설계하고 건조할 수 있는 업체는 '제너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와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 두 곳뿐이다.

WSJ와 필라델피아투데이 등 미국 언론들은 필리조선소가 현재 구식 선박을 건조하고 있어 최첨단 핵잠 건조에는 부적합하며, 실제 건조에는 수십 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는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핵잠수함 건조 시설은 일반 상선이나 수상함 건조 공장과도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며 "원자력 시설을 포함해 사실상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하는데, 여기에만 3~4년이 소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산업체 지정도 받지 않았고, 방사능 유출 우려 때문에 원자로 모듈 제작 등 과정이 복잡해 인허가 절차도 까다롭다"며 "미국 표준을 모두 따라야 하므로 실제 건조까지 10년가량 걸린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덧붙였다.

강동길 해군참모총장 역시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잠수함을 건조하려면 수천 톤을 견디는 강화 콘크리트 기반과 은닉형 대형 건조물이 필요한데 필리조선소는 그런 시설이 없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했다.

반면, 국내 조선소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잠수함 건조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부터 3000톤급 잠수함(장보고-Ⅲ)을 독자적으로 건조했으며, 국산화율은 76%에 달한다.

장보고-Ⅲ 배치-Ⅱ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공기불요추진장치(AIP)를 함께 장착해 3주 넘게 잠수한 채 작전을 수행할 수 있고, 최대 7000해리(약 1만2900㎞)를 항해할 수 있다.​

한국은 잠수함 선체 제작기술, 소형 원자로 설계 능력, 발사체와 잠수함과의 체계통합 기술을 모두 갖췄다.

최근 진수식을 한 장보고Ⅲ 배치Ⅱ 1번함(장영실함)은 3600t급인데, 이를 개량해 4000t급 이상으로 만들고 원자력 추진 체계를 탑재한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강동길 해군참모총장은 "(건조) 결정이 난다면 10여 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2030년대 중반 이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핵잠 건조 '선미후한' 방식 부상...조선업계, 국책사업 참여 검토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뉴스락]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뉴스락]

트럼프 대통령의 '필라델피아 조선소 건조' 제안이 현실적 벽에 부딪히면서, 한미 간 새로운 합의점 찾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의 요구에 응하면서도 국내 기술 자립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선미후한(先美後韓)' 방식이 떠오르는 이유다.

선도함은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해 트럼프 행정부의 명분을 살려주되, 후속함은 기술 이전을 통해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건조하는 방안이다.

선도함은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미국 기술 지원 하에 건조해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명분을 살리되, 후속함은 기술 이전을 통해 한국이 독자적으로 건조하는 방식이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교수는 "6000톤급 4척 도입 시 선도함 2척은 필라에서, 나머지 2척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미국과 한국의 국익 간 균형을 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계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사업 참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방식은 미국 내 건조 잠수함을 한국이 구매하는 형태로 이해한다"면서도 "단일 조선소의 기술력과 인력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대규모 프로젝트인 만큼 국책 사업 형태의 참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국내 건조 원칙을 더욱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원자력추진잠수함은 반드시 우리 조선소에서, 우리 기술로 건조돼야 한다"며 "이미 확보된 국내 기술을 이용해 저농축 우라늄 기반 핵잠을 국내 건조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협상이 이제 막 초기 단계에 접어든 만큼, 우리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교수는 "쉽지 않겠지만, 한미 협의 등 핵잠 건조 사업을 전담할 국책사업단을 서둘러 발족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미국과 기술 이전 수준, 핵심 설계 주도권 등 상세한 내용을 논의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제 ABC(초기) 단계"라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용 능력, 건조 방식 등 전반적인 내용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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