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건설업계가 고금리·고물가 장기화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정원주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은 신년사에서 “주택건설인의 한사람으로서 2025년을 맞는 마음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습니다”라고 언급하며, 업계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했다.

정부는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의 안전진단 면제와 재건축 절차 간소화 등 규제 완화 카드를 연이어 내놓고 있지만, 건설사들은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며 일부 사업장에서 발을 빼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올해 건설업계는 1.9%, 내년에는 1.2% 역성장이 예상되는 등 업황 부진이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26개 건설사가 파산을 신청했고, 건축허가 건수도 전년 대비 12.6% 감소하며 업계 전반이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의 도시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신반포4지구의 경우 GS건설이 4,859억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조합과 마찰을 빚고 있다.

<뉴스락>은 침체된 재개발·재건축 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건설업계의 생존 전략과 향후 시장 전망을 심층 분석한다.

주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현황. [뉴스락 편집]
주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현황. [뉴스락 편집]

 

건설업계 '최대 위기'..."구조적 문제"

건설투자 순환변동 추이.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제공 [뉴스락]
건설투자 순환변동 추이.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제공 [뉴스락]

건설업계가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대형 건설사들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시공능력평가 58위 신동아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은 업계 전반에 충격을 줬다. 이어 전북 향토건설사 제일건설 부도, 최근엔 시공능력 71위의 삼부토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업계 전반에 암울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올해도 대형 건설사들의 실적 하락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주요 건설사들은 물가상승과 원자재가 급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으며, 특히 업계 2위 현대건설은 23년 만에 처음으로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업계를 긴장시켰다.

국내 '빅5' 건설사들의 올해 사업 전망도 어둡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매출 목표를 전년보다 2조7550억원(14.8%) 낮춘 15조900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현대건설 역시 2조3107억원(7.1%) 감소한 30조3837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대우건설의 목표치는 전년 대비 2조1036억원(20%) 줄어든 8조4000억원이다. DL이앤씨와 GS건설도 각각 5184억원(6.2%), 2638억원(2.1%) 내려 잡았다. 

5대 건설사의 올해 매출 목표 총액은 전년보다 약 8조원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공사비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고급 특화설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사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대표적으로 잠실 진주아파트의 경우 총 공사비가 1조3,818억원으로 588억원 증액됐으며, 3.3㎡당 공사비는 847만원까지 치솟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위기를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진단하고 있다.

전국 미분양 주택 현황. 국토부 제공 [뉴스락]

2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70,173호로 전월 대비 7.7% 증가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준공 후 미분양이 21,480호로 급증했다는 점이다.

이는 2014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건설사들의 자금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에도 건설경기가 건설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폐업 신고 건수는 2019년 이래 최대치(641건)를 기록했으며, 건설업 취업자 수는 2024년 5~12월까지 7개월 연속 감소해 3년 7개월래 최저치(201.1만명)를 기록했다.

건설업계는 생존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으나, 중견 건설사들의 연쇄 도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업계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는 내수부진 지속으로 국내 경제지표의 단기적 개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미국 대선, 중동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 에너지 위기, 국가부채 등 위협 요인들의 영향이 심화될 것"이라며 "건설사들은 재무안전성 강화와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선택과 집중' 나선 건설업계, 수도권 재건축이 '구원투수' 되나

주요 건설사 도시정비사업 수주 실적 변화. [뉴스락 편집]

한파 속 건설업계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구원투수'로 낙점했다.

서울 핵심 지역에서 초고층 아파트 건립이 허용되면서 도시정비시장이 새로운 활로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도시정비시장은 초고층 재건축과 대규모 프로젝트 중심으로 활기를 띨 전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체제에서 35층 제한이었던 건축물 높이 규제가 폐지되면서 압구정, 여의도, 목동 등 주요 지역에서 50~70층 규모의 초고층 아파트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압구정2구역은 최고 70층 재건축을 시작했고,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목화아파트도 각각 65층과 60층 규모로 재건축을 계획 중이다.

건설사들은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각자의 강점을 내세우며 입지 강화에 나서고 있다. 첨단 기술, 고급화 전략, 브랜드 가치 등 차별화된 접근법으로 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하는 모습이다.

삼성물산은 한남4구역 재개발(1조 6,000억 원 규모)에서 현대건설을 제치고 시공권을 확보하며 도시정비사업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신반포4차 재건축과 방화6구역 수의계약 등 강남권 주요 사업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올해 도시정비사업 수주 목표를 5조 원으로 설정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대건설은 광주 광천동 재개발(1조 7,000억 원 규모)과 흑석9구역 재개발(4,490억 원 규모)을 연이어 수주하며 지난해 누적 수주액 6조 612억 원으로 업계 선두권에 올랐다.

부산 에코델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형 도시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서며 스마트 건설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왼쪽)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성남 은행주공’ 현장서 진두지휘하는 모습. (오른쪽) 이정환 두산건설 대표가 '성남 은행주공' 현장서 진두지휘하는 모습. 각 사 제공 [뉴스락 편집]
(왼쪽)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성남 은행주공’ 현장서 진두지휘하는 모습. (오른쪽) 이정환 두산건설 대표가 '성남 은행주공' 현장서 진두지휘하는 모습. 각 사 제공 [뉴스락 편집]

포스코이앤씨는 성남 은행주공 재건축(1조 3천억 원 규모)에서 조합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외에도 잠실우성4차와 도곡개포한신 재건축 등에서 성공적인 수주를 이어가며 지난해 도시정비사업 수주액 4조 7,191억 원으로 업계 2위를 기록했다.

대우건설은 한남2구역과 여의도 워크아파트 재건축 등에서 성공적인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

안정적인 자금력(2조 2천억 원 현금 보유)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써밋’ 브랜드를 활용해 고급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강동구 삼익맨숀 재건축(5,278억 원 규모)을 포함해 지난해 총 7개의 도시정비사업 시공사로 선정되며 공사비 누계 2조 9,823억 원을 기록했다.

DL이앤씨는 한남5구역과 압구정2구역 등 사업성이 높은 지역 위주의 선별 수주 전략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적 설계 그룹과 협업해 고급 주거 단지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연희2구역 공공재개발에서도 단독 입찰로 시공사 선정이 유력하다.

롯데건설은 용산 산호아파트 재건축(3,135억 원 규모)에서 한강 조망 특화 설계를 내세워 시공권을 확보했다.

AI 기반 품질 관리 프로그램 개발 등 디지털 전환에도 박차를 가하며 도시정비사업에서 총 1조 9,571억 원의 수주액을 기록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장안동 현대아파트 재건축(2,742억 원 규모)을 포함해 지난해 도시정비사업 누적 수주액 1조 3,332억원을 기록했다. 리조트형 조경과 호텔식 로비 같은 고급화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하며 대전 가양동1구역 재개발 등에서도 성과를 냈다.

2025년에도 압구정2구역(1조9000억원), 개포주공6·7단지(1조3000억원), 여의도 시범아파트(1조4000억원) 등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예정돼 있어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이승민 한국도시정비협회 회장은 <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올해는 서울시에서 경쟁력 있는 현장들은 나름 시공사들의 관심을 모을 것이지만, 경쟁력이 없는 곳들은 외면을 받을 것"이라며 선별적 수주 경향이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진단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신호탄...건설업계 '내실 다지기' 총력

삼성물산 한남4구역 제안 조감도. 삼성물산 제공 [뉴스락]
삼성물산 한남4구역 제안 조감도. 삼성물산 제공 [뉴스락]

전문가들은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혁신적인 제도 개선으로 올해 재개발·재건축 시장이 새로운 도약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사업 기간 단축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핵심 과제로 남아있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도 업무계획을 통해 재개발·재건축 사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대표적으로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재건축진단’ 제도를 통해 사업 기간이 약 3년 단축될 것으로 보이며, 조합 설립 동의율은 기존 75%에서 70%로 완화된다.

상가 동의율 역시 1/2에서 1/3로 낮아지며, 사업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

서울시는 재개발 사업의 주민 동의 산정 방식을 전면 개편해 패스트트랙 적용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이를 통해 사전·중복 징구를 차단하고, 찬반 동의서 제출 기한을 통일해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공사비 검증 제도도 대폭 강화된다. ‘재개발·재건축 촉진에 관한 특례법’에는 시공자가 공사비 증액을 요청할 경우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분쟁 발생 시 분쟁조정단 파견 등의 해결 방안이 포함됐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 지자체들이 공사비 검증기관을 확대하고 있어 실질적인 공사비 조정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건설경기 회복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올해 공공기관 역대 최대 수준인 19조1000억원 규모로 공사·용역 신규 발주를 추진한다.

이는 지난해 발주 실적보다 약 1조3000억원 늘어난 금액으로, 수도권에 전체의 69%(약 13조2000억원)가 집중되며 3기 신도시 관련 발주가 약 3조5000억원에 달한다.

LH, 2025년 공종별 발주 계획. LH 제공 [뉴스락]
LH, 2025년 공종별 발주 계획. LH 제공 [뉴스락]

대다수 건설사들은 올해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적 접근을 강화할 방침이다. 

박상신 DL이앤씨 대표는 신년사에서 “모든 사업 추진은 현금흐름(Cash Flow)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불요불급한 투자는 과감히 중단하고, 고정비 지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보현 대우건설 대표도 “올해는 앞으로 3년 중 가장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는 내실 경영에 집중하자”고 당부했다.

동시에 해외시장 개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정부는 300억 원 규모의 PIS 펀드 조성과 원전 수출 지원 강화 등을 통해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업계는 2025년 해외 수주 300억 달러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심 내 주택 공급 확대라는 국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인허가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규제를 과감히 혁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승민 한국도시정비협회 회장은 "속도가 필요하다"며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평균 소요기간이 10년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고 평균 15년이 맞다"고 지적했다.

그는 "50세에 시작해서 65세, 60세에 시작하면 75세가 된다"며 "국민을 위하고 주거 공급을 위해서 한다면 규제 완화 말고는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노후 계획법을 보면 평균 10년 안에 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기대 일정만큼 될지는 지켜봐야 될 일"이라며 "공사 기간은 30층 기준으로 3년 반, 길어야 4년으로 물리적으로 5년을 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절차와 인허가를 놀랄 정도로 파격적으로 단축시켜야 평균 10년이 가능할 것"이라며 "현재 패스트트랙 등을 실행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될 만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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