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국내 건설업계의 맏형 격인 현대건설이 초유의 경영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1조2209억원이라는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23년 만에 적자 전환한 현대건설은 그간 쌓아온 '건설명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 프로젝트 손실이 모회사 발목을 잡으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봉착했다.
부채비율 급등세도 심각하다. 2022년 말 110.7%에서 2025년 1분기 현재 173.4%로 치솟았다.
전사적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에 나섰지만 시장 신뢰는 이미 크게 훼손된 상태다.
여기에 부실시공 논란과 안전사고까지 겹치면서 ESG 경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9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으며, 입주 아파트들에서는 수만 건의 하자가 접수되는 등 품질관리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23년 만의 적자 쇼크와 함께 출범한 이한우 신임 대표체제가 위기 돌파의 열쇠를 쥐고 있다.
<뉴스락>은 총체적 위기에 빠진 현대건설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재기 가능성을 조명한다.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 현대건설 제공 [뉴스락 편집]](https://cdn.newslock.co.kr/news/photo/202506/109925_98621_3710.png)
23년 만의 '적자전환'...현대엔지니어링發 해외리스크 폭탄
![현대건설 매출 및 영업이익. 전자공시시스템 제공 [뉴스락 편집]](https://cdn.newslock.co.kr/news/photo/202506/109925_98622_3722.png)
업계 2위 현대건설이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 프로젝트 대규모 손실로 23년 만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01년 워크아웃 이후 최대 규모의 손실로, 건설업계 전반의 위기가 대형사까지 덮친 모습이다.
5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2024년 연결 기준 매출 32조6944억원으로 전년 대비 10.3% 증가했지만, 영업손실 1조2209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영업이익 7854억원에서 약 2조원 규모의 적자전환이다. 연간 영업적자는 2001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당시 이후 처음이다.
특히 4분기에만 1조7334억원의 영업손실이 집중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1910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4분기에만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손실의 핵심은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이 수행 중인 두 해외 프로젝트다.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 프로젝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가스전 사업에서 1조원을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발릭파판 프로젝트는 2019-2020년 현대엔지니어링이 연이어 수주한 약 4조2000억원 규모의 대형 사업이다.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 페르타미나가 발주한 이 프로젝트는 당초 협업 수주의 성과로 평가받았지만, 본격 시공 시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악재가 시작됐다.
자푸라 가스플랜트는 2021년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동 수주한 2조원대 규모 프로젝트로, 현대엔지니어링 지분만 1조1000억원에 달한다. 러-우 전쟁과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가 사업 여건을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규모 손실에 대해 이른바 '빅배스(Big Bath)'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신임 경영진이 전임자 시절의 누적 손실을 한 번에 정리해 향후 실적 개선 효과를 노리는 전략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임원 인사를 통해 현대건설에 이한우 대표이사를, 현대엔지니어링에 주우정 대표이사를 각각 신규 선임했다. 이들이 첫 경영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해외 사업 잠재 손실을 선제적으로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손실로 현대건설의 재무 상황도 급격히 악화됐다. 연결 부채비율은 3분기 132%에서 4분기 180%대로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신용평가는 즉각 현대엔지니어링의 장기신용등급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미래 발생 가능한 잠재 손실을 미리 반영한 것"이라며 "발주처와 협의를 계속하고 있어 상황이 개선되면 손실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고 해명했다.
다만, 올해 1분기에는 영업이익 2137억원, 당기순이익 1667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했다.
12조 PF폭탄에 부채비율 급등...'이중고' 현실화
![한국기업평가 제공. [뉴스락]](https://cdn.newslock.co.kr/news/photo/202506/109925_98654_4617.png)
현대건설이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의 대규모 해외사업 손실로 신용등급 하락과 부채비율 급등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1분기 흑자전환에도 불구하고 12조원에 달하는 PF(프로젝파이낸싱) 대출 리스크와 5.6조원의 미수금이 여전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부채비율이 2022년 말 82.4%에서 2025년 1분기 225.5%로 3년새 143.1%p 급등했다. 10대 건설사 중 가장 가파른 증가세다.
부채비율 급등의 직접적 원인은 지난해 4분기 대규모 영업손실로 인한 자본 감소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23년 255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2024년 1조24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같은 기간 부채는 4조1909억원에서 6조6682억원으로 59.2% 늘었고, 자본은 3조8811억원에서 2조7629억원으로 28.8% 줄었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은 2023년 말 108.0%에서 2024년 말 241.3%로 급등한 뒤, 2025년 1분기에도 225.5%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부채비율도 2022년 말 110.7%에서 2025년 1분기 173.4%로 62.7%p 상승했다.
연결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적자 전환이 2024년 말 부채비율 급등으로 이어진 영향이다.
현대건설의 단기 지급능력을 보여주는 유동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44.7%로 전년 말 179.72%에서 하락하며 적정 수준인 200% 이상을 밑돌았다.
다만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5조3964억원, 순현금이 2조1498억원으로 단기적 손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평가기관들은 현대엔지니어링에 대한 등급 전망을 잇달아 하향 조정했다.
한국기업평가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나이스신용평가도 현대엔지니어링을 장기신용등급 하향 검토 감시 대상에 올린 뒤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특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신용평가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기존 AA 등급에서 BBB+로 세 단계 강등됐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은 HUG 보증 이용 시 보증료가 기존보다 상향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신용도가 떨어지면 보증발급에 있어 보증료가 높아질 확률이 크다"고 분석했다.
현대건설은 국내 건설사 중 가장 많은 12조원 이상의 PF 대출 관련 보증금액을 보유하고 있다.
대규모 복합개발 등 주요 현장의 본PF 전환으로 브릿지론 보증규모는 감소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지난해 미수액 규모도 4조9099억원을 기록하며 10대 건설사 중 1위를 차지했다.
미청구공사와 공사미수금이 크게 늘면서 현금 유입이 줄어 영업활동현금흐름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신용평가기관들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사업 및 재무안정성 회복까지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전반적인 사업경쟁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10대 건설사 중 4곳이 부채비율 200%를 넘어서는 등 건설업계 전반의 재무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보고 있다.
현대건설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2137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당분간 부채비율 관리와 PF 리스크 통제가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건설의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익명을 요청한 신용평가기관 관계자는 "현대건설의 수익창출력과 유동성 대응능력이 우수한 점을 감안했다"면서도 "향후 연결실체의 사업 및 재무안정성을 지속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이은 안전사고에 가덕도 포기까지...위기의 '건설 1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업계 최다 사망사고를 기록한 현대건설이 올해도 연이은 안전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10조원 규모 가덕도신공항 공사마저 포기하면서 국내 최대 건설사로서의 위상에 금이 가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해 3월까지 8건의 사망사고로 업계 최다 사망사고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망자의 80%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 밝혀져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들어서도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동대문구 장위동 아파트 신축 현장과 파주시 건설현장에서 각각 사망자가 나왔고, 4월에는 파주시 주상복합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50대 근로자가 숨졌다.
설상가상으로 현대건설은 지난달 30일 10조 5300억원 규모의 가덕도신공항 매립공사 참여 포기를 선언했다.
정부가 요구한 84개월 공기를 현대건설이 안전과 품질 확보를 위해 108개월이 필요하다고 맞서면서 결국 사업에서 손을 뗀 것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서울 남산 3배 규모의 절취량과 여의도 2.3배 규모의 부지조성을 수반하는 난공사"라며 "250여명의 전문가와 600억원을 투입한 기본설계 검토 결과 적정 공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과 품질 확보가 불가능한 일정으로는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산시와 시민단체들은 사업 지연을 위한 꼼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현대건설의 대표 브랜드인 힐스테이트에서도 잇따른 하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평택 세교동 힐스테이트 1차 아파트의 경우 법원이 "설계도면에 따라 시공해야 할 부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며 현대건설의 책임을 인정, 22억원의 하자보수금 지급을 명령했다.
대구 힐스테이트 대구역 오페라는 하자 건수가 6만 건을 넘어 입주예정자들이 준공 승인을 거부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5년간(2019-2024) 하자 판정 현황에서도 현대건설은 208건으로 14위에 올랐다.
이 같은 안전과 품질 문제는 ESG 평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ESG기준원은 지난해 평가에서 현대건설의 사회(S) 부문 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올해 1월 취임한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는 연이은 악재로 경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상징성이 큰 한남4구역 재개발 수주전에서 삼성물산에 340표 차이로 패배하며 자존심까지 구겼다.
이 대표는 올 초 주주총회 자리에서 "체질 개선을 통한 경쟁력 회복과 지속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안전관리 시스템 전면 개편과 품질 관리 강화,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삼중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국내 최대 건설사로서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단기적 성과보다는 안전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